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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기타 칼럼 기고

헤드라인은 ‘스티커 메시지’로 구성하라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958

한 교수가 수업시간에 열심히 정치학 이론에 관해 이야기한다. 정당에는 어떤 유형이 있고, 또 권력이란 무엇이고…. 2시 수업이라 그런지 교수의 침 튀기는 설명에도 학생들은 꾸벅꾸벅 존다. 열심히 말하던 교수가 갑자기 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참, 내가 예전에 어떤 정치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시험 기간이 다가왔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수업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교수가 수업시간에 이야기한 ‘딴소리’는 기가 막히게 잘 기억난다.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다른 친구들에게 떠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다. 수많은 학생이 겪는 미스터리다. “왜 수업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교수님이 한 농담은 몇 년이 지나도 뇌리에 남아 있는 걸까?”

그 이유는 교수의 농담과 여담이 ‘스티커 메시지’, 즉 뇌리에 1초 만에 딱 달라붙는 메시지기 때문이다. 기사에서 스티커 메시지란 헤드라인이다. 수업에 치이고 과제에 치이고 아르바이트에 치이는 서울대 학생 중 『대학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과방이나 학교 곳곳에 쌓여 있는 『대학신문』을 보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기사 헤드라인이다. 헤드라인이 스티커처럼 달라붙어야 신문을 계속 읽어 내려갈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대학신문』 1959호의 기사 헤드라인을 보자. ‘의대 A교수 윤리문제 제기하는 문건 공개돼’ ‘본부점거 주도 학생 징계 취소 요구, 본부는 난색 표해’ ‘학내에서 벌어지는 교수의 인권침해, 실효적 대책은?’ ‘차등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단과대 학생회 연합 기자회견 열려’ 등등. 기사 제목이 너무 정직하다. 달라붙지 않고 스쳐 지나가 버린다.

무작정 자극적인 제목을 뽑으라는 게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기사 제목들이 육하원칙에 지나치게 충실하단 것이다. 기사 제목만 읽었을 뿐인데 모든 걸 다 읽은 기분이 든다.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들지 않는다. 육하원칙 대신 ‘스토리’가 머리에 남아야 한다. 교수의 농담이 잘 기억나는 이유는 그 농담에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1면 톱기사 제목은 ‘의료계 미투? 성희롱만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면 ‘교수 채용까지 개입? 의대 A교수 문건 파문’이라는 식으로 달 수 있다. 언론에는 성희롱 사건으로만 알려졌지만 문건 내용을 더 보면 그렇지 않다는 내용으로 궁금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실 『대학신문』이 왜 이렇게 정직한 제목을 달았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다. 학교를 대표하는 신문이니만큼 객관성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고, 따라서 제목을 드라이하게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이해한다. 그러나 헤드라인에 대한 고민은 한 번 더 해봤으면 한다. 여러분들이 쓰는 그 기사들이 사람들 뇌리에 남아야, 결국 그 이슈가 사람들 입을 타고 돌아다닐 수 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독자를 움직이고 학교를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일 강력한 한 줄, 여러분들도 만들 수 있다.

조윤호
전 미디어오늘 기자

대학신문  snupress@sn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