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블로그에 '어벤져스4'의 주인공은 캡틴아메리카가 될 것이란(될 수밖에 없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번엔 본격적으로 캡틴아메리카에 대한 팬질 글을 써볼까 한다. (* 구체적인 대사는 나무위키 캡틴아메리카 편을 참조하였습니다.)
캡틴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는 겉으로 보기엔 미국의 애국주의와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보인다. 코스튬도 그렇고, '캡틴아메리카'라는 이름도 그렇다.
하지만 캡틴이 상징하는 건 미국이 아니라 미국의 사상, 가치, 이념이다. 캡틴은 누구보다도 자유를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자유를 지키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투사다. 바로 이 'Gap'이 캡틴아메리카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자유주의자 캡틴아메리카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윈터솔져>다. 1940년대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70년 만에 깨어난 캡틴이 발견한 건 쉴드가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인사이트'였다. 프로젝트 인사이트는 그야말로 대국민감시프로젝트. 헬리캐리어들을 띄워서 미 전역을 감시한 다음, 미국 정부에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을 미리 제거한다는 계획. 이 계획을 알게 된 캡틴은 강하게 반발하며 이렇게 말한다.
"처벌은 범죄 그 이후에 따르는 것입니다."
범죄라는 구체적 행위가 등장하기 전의 시민의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자유주의자 캡틴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다. 쉴드의 국장 닉 퓨리는 캡틴을 설득하려 하지만, 캡틴은 끝까지 반대하며 이렇게 답한다. "저는 가끔 현실과 타협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타협을 한 이유는 시민의 자유를 위해서였습니다. 이건 자유가 아니라 공포에요."
캡틴의 우려대로 쉴드의 이 계획은 쉴드 안에 잠입해 있던 하이드라(빌런 집단)의 음모였다. 이를 알아챈 캡틴은 홀로 쉴드 본부에 침입한다. 그리고 이미 지도부를 장악한 하이드라에 맞서 쉴드의 요원들에게 함께 싸우자고 설득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이 무리한 요구임을 안다. 하지만 항상 그래왔듯 자유의 대가는 크다. 그리고 난 그 큰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 나 혼자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결국 자유주의자 캡틴의 선동에 동화된 쉴드 요원들이 싸움에 동참하면서 하이드라는 패배한다. 캡틴에게 국가는 시민의 자유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미국의 국기를 몸에 걸고, 이름에 '아메리카'를 달고 있지만 캡틴이 지키고자 하는 건 미국이 지켜야할 가치, 자유다.
<시빌워>에서도 캡틴의 이런 행보는 이어진다. 히어로가 법에 등록된 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소코비아 협정'. 히어로 진영은 협정을 따라야 한다는 '아이언맨' 파와 이에 반대하는 캡틴 파로 나뉘어진다. 히어로등록법을 거부한 캡틴의 근거도 '자유'였다.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법과 조직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건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는 길이다." 캡틴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미국 정부 전체와 싸우고, 수배자가 된다. 그는 미국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조국과도 싸우는 히어로다.
누가 봐도 고지식한 이런 면모 때문에 캡틴은 <시빌워> 이후 안티가 급증했다. 히어로들의 활동에 어느정도는 제약이 가해져야 함에도 캡틴이 대책없이 반대만 한다는 시선 때문이었다. 일견 이해가 가는 이야기지만 영화의 맥락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캡틴은 법률 수정을 통해 히어로등록법에 찬성하려는 입장을 취했었다. 하지만 법에 반대하는 입장인 스칼렛위치가 아이언맨에 의해 감금되었다는 사실, 즉 히어로등록법이 시작도 되기 전부터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는 법을 거부했다. 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다.
<시빌워>에서 캡틴이 욕을 배부르게 먹었던 또 다른 이유는 캡틴이 친구인 버키 반즈를 구하기 위해 또 다른 친구 토니 스타크(아이언 맨)을 공격했다는 점에 있다. 버키 반즈는 윈터 솔져로 활동하며 수많은 요인들을 암살했고, 심지어 토니의 아버지까지 살해했다. 캡틴은 그런 버키를 구하기 위해 토니를 배신했다.
하지만 자유주의자 캡틴에게 이는 당연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버키 반즈는 하이드라에게 세뇌당해 자신의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암살자 노릇을 했다. 캡틴은 아무리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자유의지에 따라 저지른 일이 아닌 이상 온전히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우며, 그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캡틴이 생각하는 자유다. (물론 토니 입장에선 그가 배신자인 건 당연하고, 버키반즈를 죽이고 싶은 것도 당연하다.)
캡틴의 자유주의자로써의 면모는 동료 시민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1940년대에 살다가 70년 만에 깨어난 백인이지만 흑인인 닉 퓨리가 쉴드 국장으로 자신에게 명령한다는 점에 한 번도 차별적인 시선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돕는 흑인 군인 샘 윌슨(팔콘)을 대할 때도 이런 태도가 전혀 없다. 194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대단한 태도인지 알 수 있다.
혹자는 "그냥 설정 오류 아니야?"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아니다. 설정 오류가 아니라, 캡틴의 이런 태도는 그의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설정이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계속 군인 시험을 보는 그에게 면접관이 묻는다. "왜 그렇게 독일인들과 싸우고 싶어하지?" 그러자 스티브 로저스(캡틴)가 답한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관심 없습니다. 그저 억압에 맞서 싸우고자 할 뿐입니다." 그는 이미 1940년대에 살 때부터 '억압에 맞서는 모든 시민은 동료'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유라는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는 데 있어 한치도 망설이지 않는다.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상대가 억압을 일삼는 자,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자라면 끝까지 맞서 싸운다. 그리고 그에게는 억압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다. <퍼스트 어벤져>에서 적에게 끊임없이 얻어터지던 스티브 로저스가 계속 일어나면서 한 말이 있다. "i can do this all day." 포기하지 않는 자유주의자 캡틴아메리카가 어벤져스4에서 극강의 공리주의자 타노스를 물리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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