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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히어로물

토니스타크는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 달 전쯤에 페북에 어벤져스4 결말에 대한 예상을 썰처럼 풀었던 적이 있다.

이전의 글이 캡틴아메리카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면, 이번에는 토니 스타크의 관점에서 접근해보려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마블 팬으로서 그냥 재미로 써보는 썰이기에 틀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토니스타크의 캐릭터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고자 강박증적으로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토니스타크는 시리즈를 반복할수록 성장하는 캐릭터이고, 다소 고지식한 모습을 보여주는 캡틴아메리카에 비해 친근하고 정이 가는 캐릭터이다. (이 점은 캡틴과 대비된다. 캡틴은 '수많은 시련과 고뇌에도 불구하고 강박증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인물'에 가깝다.)




아이언맨이 되기 전 토니스타크는 군수산업의 수장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개발한 무기가 테러단체에 넘어가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활용된다는 점을 깨닫고 난 뒤, 군수산업에 손을 뗀다. 대신 자신의 과오를 씻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아이언맨을 만든다. 그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강박증적으로 집착하는지는 <아이언맨3>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잠도 자지 않은 채 미친 듯이 아이언맨 슈트를 만들어댄다.


문제는 토니스타크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세상을 구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려다 세상을 위협에 빠뜨리는 모순이다. 토니스타크는 <어벤져스>에서 쉴드와 함께 우주에서 온 인피니티스톤 중 하나인 테서렉트를 연구하고, 이를 지구를 지킬 무기로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로키에게 이 테서렉트가 털리면서 로키가 치타우리 부대를 지구로 불러들인다. 게다가 이 무기로 인해 쉴드의 충실한 요원 중 하나가 사망하자 괴로워한다.


<어벤져스:에이지오브울트론>에서도 마찬가지다. 토니스타크는 누군가 지구를 침공할 것을 알고 있었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울트론을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울트론이 세상을 멸망으로 몰아넣었다.




캡틴아메리카는 이런 토니스타크에게 매우 정확한 팩폭을 했다. 캡틴은 토니를 향해 “너는 너 자신을 위해 싸울 뿐이야.”라고 말했다. 토니스타크가 세상을 구하려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너 자신의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싸우는 거 아니냐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또 캡틴은 토니가 울트론을 만들려고 할 때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을 이기려고 할 때마다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다”고 비판했다. 세상을 구하려는 토니가 반복해서 세상을 위협하는 모순을 정확히 지적한 말이다.


이 지점에서 토니가 겪고 있는 ‘지식의 저주’가 등장한다. <어벤져스:인피티니워> 후반부에 타노스와 아이언맨이 1대1로 맞붙은 장면이 있다. 타노스는 토니에게 “너만 지식의 저주에 걸린 게 아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거칠게 정리하면 지식의저주란, 자신이 아는 걸 남들도 안다고 생각해 남을 설득하지 못하고 혼자 답답해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타노스는 지식의저주에 걸려 있다. 타노스는 자원 분배, 인구조절에 실패한 탓에 자신의 고향 타이탄이 멸망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인구와 자원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남녀노소 빈부계급을 막론하고 절반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무도 타노스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타이탄은 멸망했다. 타노스는 그 이후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행성의 절반을 파괴하고 다니지만 당연히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급기야 인피니티스톤을 모두 모아 우주 절반을 먼지로 날려버리기에 이른다.


토니에게도 지식의 저주가 있다. <에이지오브울트론>에서 완다의 환영에 걸린 토니는 외계인에 의해 지구가,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이 모두 죽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뒤로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어벤져스>의 뉴욕 전투가 끝난 상황임에도 홀로 지구로 쳐들어올 위협에 대비해 미친 듯이 기술을 개발하고, 울트론까지 만들었다. 모두가 토니를 이해하지 못한 채 토니를 뜯어말렸다.


토니가 알고 있는 지식이란 ‘언젠가 외계인의 침공으로 세상이 멸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토니가 걸려버린 지식의저주는, 언젠가 세상이 멸망함에도 아무도 그걸 알지 못해 본인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우주가 멸망할 것이라는 점을 혼자 깨닫고. 본인 혼자 힘으로 우주의 균형을 맞추려 했던 타노스와 비슷하다.


토니가 걸린 저주는 한 가지 더 있다. 홀로 세상을 지키려 했던 토니가 반복해서 세상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노스도 이런 의도치 않은 비극을 겪는다. 타노스는 우주의균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일하게 사랑하는 딸 가모라를 희생시켜야 했다. 우주의 절반을 날려버린 뒤 환영 속에서 만난 가모라는 그에게 "목표를 이룬 대가가 무엇이었나?"라고 묻는다. 타노스는 "모두 다..."라고 답한다. 절반을 구하기 위해 자신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모순이다. 우주의 관점에서는 숫자로 계산해 절반을 날리는 게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어도 개개인에게는 그 한 명 한 명이 우주와 같다는, 타노스식 논리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토니는 이 저주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그가 매번 선택하는 방법은 또 자신이 혼자 책임지는 것이다. 자신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늘 스스로를 희생하는 방법을 택한다. <어벤져스>에서 그는 핵폭탄을 들고 홀로 우주로 날아간다. <인피니티워>에서는 타임스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 했다. 스파이더맨이 우주로 따라오자 불같이 화를 낸 이유도 그는 다른 사람의 희생을 눈앞에서 보는 것을 가장 괴로워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쉴드의 국장 닉퓨리는 언젠가(어느 영화인지 기억이;;) 토니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에게 있어 최악은 다 죽고 너만 안 죽는 거지.” 그리고 토니는 이미 완다의 환영에 걸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죽어가고, 세상이 멸망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끔찍하게도 환영 속에서 캡틴이 토니에게 “네가 우리를 구할 수 있었어.”라고 말한다.


정리하자면 토니는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세상을 구하려 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세상을 위협하고 나아가 자신만 살아남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인피니티워의 결말은 토니 입장에서 가장 끔찍한 결말이다. 타노스가 지구로 쳐들어올 거란 것을 토니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막으려 발버둥을 쳤으나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세상을 위협했고, 결국 함께 타이탄에서 함께 싸웠던 동료들이 모두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자신만 남았다. (타이탄 전투 멤버들 중 스파이더맨 등이 모두 사망하고, 토니가 가장 최근에 만나 가장 친분이 없는 네뷸라만 살아남았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네뷸라가 어벤져스4에서 토니를 살리고 죽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벤져스4에서 토니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어벤져스4에서 토니가 사망할 거란 예측은 주요한 가설 중 하나다. 하지만 난 토니가 희생하는 식으로 결말이 지어질 것 같지 않다. 그 방식은 앞선 영화에서 늘 실패해 왔기 때문이다. 마블이 그런 식상한 결말을 택할까? (물론 토니가 죽을 수도 있다. 다만 죽더라도 모든 걸 짊어지고 죽는 방식은 아닐 거란 뜻이다.)


토니의 가장 큰 패착은 늘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한다는 점이다. 지식의저주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나의 눈이 아니라 남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즉 다른 이들과 함께 힘을 합치는 것이다.


3시간에 달하는 인피니티워에서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하나 있다. 이 과제는 인피니티워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인피니티워에서 캡틴과 토니는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시빌워에서 갈라진 이후, 둘은 화해하지 못했다.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다, 결국 타노스에게 모두 패배했다.


어벤져스4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토니와 캡틴이 다시 만나는 장면이 될 것이다. 그리고 토니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구하려 했던 '지식의저주'에서도 벗어날 것이다. 그것이 홀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의 절반을 날려버린 타노스에 맞서, 이 게임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