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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2030잠금해제

도서정가제에 던지는 질문

도서정가제에 던지는 질문

나는 책을 몇 권 쓴 ‘저자’다. 내가 첫번째 책을 썼을 때 인세로 책 정가의 10%를 받았다. 출판사 편집자는 “나머지 90%를 출판사가 다 가져가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출판업계의 유통구조가 복잡하다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의 ‘도서정가제’ 논란을 보니 단순히 유통구조가 복잡한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책이 정가가 아니라 할인된 가격으로 팔리다 보니 저자의 인세 비율을 높게 책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최근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도서정가제는 책의 판매가격을 정해놓는 제도다. 이는 대형 유통업체와 달리 박리다매로 책을 팔지 못하는 영세 서점들과, 책을 만들어내고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영세 출판사들을 살리기 위해 도입되었다. 그 내용은 발행 1년 이내의 간행물(신간)에 대하여 정가제를 적용하고, 인터넷을 통하여 판매되는 경우 10%까지만 할인판매를 허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 대상이 워낙 많을뿐더러, ‘신간’의 규정이 발행한 지 18개월로 범위가 넓어지면서 도서정가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이에 따라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이를 둘러싸고 출판업계와 유통업계가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은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고 소비자들의 반대서명을 받았다. 책을 싸게 살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에 출판업계는 책은 일반적인 소비재로 보기 힘들며, 영세 출판업계의 도산과 출판시장의 다양성이 침해되는-정가제 대상이 아닌 할인율 높은 도서만 판매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급기야 도서출판 창비가 알라딘에 책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나는 출판업계의 입장에 더 공감한다. 도서정가제로 인해 출판시장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건 사실이다. 또한 책이 싸게 팔리는 게 꼭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다. 출판사가 할인 가격을 고려해 책의 정가를 높게 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사리 한쪽 편을 들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첫째, 도서정가제의 혜택을 본 건 알라딘 같은 유통업체뿐인가? 출판사들도 도서정가제의 혜택을 본 건 아닌가? 영세 출판사들이야 손해를 보았다지만, 대형 출판사들도 그럴까? 홈쇼핑을 틀면 대형 출판사의 책들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되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책을 싼 가격에 팔 수 없는 영세 출판사들은 도산하고 대형 출판사들이 파이를 독식하는 사태가 온 건 아닌가? 도서정가제를 통해 출판시장의 ‘갑’이 된 건 유통업체뿐일까?

둘째, 도서정가제를 실시한다고 동네 서점과 영세 출판사가 살아날 수 있을까?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와도 비슷한 맥락이다. 전통시장을 위해 기업형 슈퍼를 막아야 하지만, 기업형 슈퍼가 없다고 전통시장이 살아나는 건 아니다. 전국의 책값이 모두 똑같다고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을 찾던 이들이 동네 책방을 찾을까?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더욱이 도서정가제가 없어진다고 영세 출판사들이 살아날 것 같지도 않다. 실용서나 참고서 외의 책은 잘 읽지 않는 현실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독서 인구를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노동시간은 길지만 책은 보지 않는, 교육열은 높지만 책은 읽지 않는 사회가 한국이다. 공공도서관은 10만명당 한 곳에 불과하다. 책 읽는 문화가 발달해야 도서정가제 강화가 출판시장의 활기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도서정가제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윤호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저자

 

<한겨레>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