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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2030잠금해제

교육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

대형 입시업체 메가스터디의 ‘우정파괴’ 광고가 인터넷 세상을 들썩였다. 2013년 새 학기를 앞두고 메가스터디가 시내버스 등에 게재한 광고가 인터넷에 올라오며 논란이 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넌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 거야. 그럴 때마다 네가 계획한 공부는 하루하루 뒤로 밀리겠지, 근데 어쩌지? 수능 날짜는 뒤로 밀리지 않아. 벌써부터 흔들리지 마.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

  많은 네티즌들과 언론은 이 광고에 대해 “시험 잘 보려고 친구를 버리라는 말이냐.”며 메가스터디가 비도덕적이고 비교육적인 내용을 선전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우리는 메가스터디에 대한 비난을 넘어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우정 혹은 친구 간의 인간관계와 같은 가치들과 ‘공부’를 대립 항으로 설정하는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라는 말은 사실 이미 교육현장에서 많은 교사들이 해왔던 말이 아닌가? 고등학교 때 교사들이 전교생을 강당에 집합시킨 적이 있다. 그 때 교사들은 좋은 대학에 가려면 연애도 하면 안 되고 쉬는 시간에 애들이랑 잡담도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럴 시간에 수학문제 하나라도 더 풀고 영어단어 한 개라도 더 외우라는 말이었다. 고3때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밖에 나가 농구를 하자 학생주임이 와서 혼쭐을 냈다. “고3이 무슨 농구를 하느냐, 공부나 더 해라.” 야자 시간에 잠깐 밖에 나와 친구들하고 잡담을 했는데 담임이 나를 따로 불렀다. “너 그렇게 애들이랑 어울리다 성적 떨어진다.”

  인간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살아가기 위한 훌륭한 공부가 아닌가? 왜 선생들은 교실에 짱 박혀 문제 푸는 것 외에는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한국의 교실에서는 친구들끼리 협동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공부로, 교육의 일환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 불만을 가지면 어른들은 “대학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가? 학점을 잘 받으려면 서로 경쟁해야 되고 좁은 취직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해야 한다.

  나는 이러한 현실이 20대가 정치.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20대에게는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공동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게 아닐까? 개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취업이나 알바 등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것이다. 우리가 좀 더 쉽게 살아가려면 ‘함께’ 요구함으로써 이 사회를 바꿔야 하는 데도 말이다.

  한국사회는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 때부터 학생들에게 나 혼자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친다. ‘공부’는 홀로 자기계발을 하거나 문제집을 푸는 좁은 의미로 한정된다. 메가스터디의 광고가 표현하고 있는 우리 교육의 현실은 이처럼 개개인이 갈기갈기 찢겨진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이를 통해 개인들은 정치. 사회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에만 몰두하게 된 것이 아닐까?

  공동체는 공동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개인들을 통해 성립할 수 있다. 개인들이 더 이상 공동체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면 공동체는 재생산에 실패하고, 파편화된 개인들만 남는다. 이것이 우리가 교육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한겨레>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