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거 글/미디어스 칼럼

종북이라서 사상검증 하는 거야, 아니면 사상검증 하고 싶어서 종북으로 만드는 거야?

경향신문의 단독보도로 ‘종북’이 다시 한 번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경향신문의 4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28일 국정원이 북한을 찬양하는 게시물이나 웹사이트 등을 국정원에 신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초청행사를 열었고, 행사에 변희재 빅뉴스 대표가 강사로 참여했다. 이날 변 대표는 박원순. 이정희. 낸시 랭. 공지영 등이 대표적인 종북주의자라고 주장했다.[각주:1] 

경향신문의 보도 이후 CBS 시사자키가 낸시랭을 인터뷰했고, 낸시랭이 인터뷰에서 변희재를 조롱하면서 ‘종북’ 논란은 더욱 확산되었다. 그러자 변희재는 고발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낸시랭을 종북주의자로 지목한 적이 없다며 경향신문 보도는 오보라고 주장했다.[각주:2]

‘광의의 종북 개념’, 종북은 과연 무엇인가

그렇다면 과연 종북은 무엇인가? 우파들은 늘 진보좌파들을 향해 종북의 칼을 겨누고, 진보좌파들은 자신이 종북이 아니라는 점을 해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고발뉴스에 실린 변희재 인터뷰에 종북이 무엇인지, 그 개념에 대한 소개가 등장한다. “가장 협의의 종북은 ‘간첩과 이적 단체’를 말하는 것이다. 반면 가장 극단적인 광의의 개념으로 가게 되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인간의 질이 낮은 사람'까지를 말할 수도 있다. 북한 김씨 일가는 현명한 판단을 못하도록 북한 주민들의 인간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종북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인간의 질이 낮은 사람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김씨 일가도 그렇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공통점 때문에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종북이 된다. 이런 논리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은 전두환 정권 시절 발생한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다. “알리하고 포먼하고 권투시합을 하는데 김일성이 알리 편을 들었을 때 피고인도 알리 편을 들었다면 그것도 이적행위냐.” (이 말을 들은 최병국 검사는 “북괴를 찬양하는 발언을 자제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검사도 ‘광의의 종북 개념’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A와 B가 가진 공통점 혹은 유사성 때문에 A와 B가 똑같다고, A가 B를 추종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일성이 알리를 응원하고 나도 알리를 응원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김일성과 내가 같은 편이 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김씨 일가가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또 나도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내가 북한의 김씨 일가를 ‘따르는’ 종북이 될 수는 없다. 또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주관적인 기준이 아닐까? 내 눈에는 아무한테나 종북 딱지를 붙이는 자들이야말로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같은데, 그렇다면 그 자들도 ‘종북’이란 말인가?



종북이라는 이름의 사상검증

문제는 이러한 넓은 의미의 종북을 근거로 사상검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낸시랭이나 공지영, 박원순이 간첩 행위를 한 종북세력이라는 이유로 법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종북이라고 낙인찍힌 진보좌파들이 모두 법적인 처벌을 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종북’ 개념은 이들에게 사상검증의 잣대로 기능한다.

수구꼴통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자신들이 싫어하는 집단이나 인물에 대해 전부 다 ‘종북’ 딱지를 붙인다. 종북 페미니스트, 종북 학생회, 종북 동성애자 등등. 그런데 왜 하필 자신이 싫어하는 집단이나 인물에게 붙이는 칭호가 ‘종북’인 걸까?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멍청이, 바보, 찌질이라고 불러도 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종북’이라는 단어를 쓴다. 종북 세력을 축출하자고 주장하는 우파 논객들은 아무한테나 종북 딱지를 붙일 의도가 없다고 말한다. 의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넓은 의미의 종북 개념이 인터넷 상이나 정치의 영역에서 사상검증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종북 낙인찍기는 찌질한 넷우익들의 장난질 수준을 넘어섰다. 국정원 직원 김씨는 4대강이나 무상보육 철회,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두둔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치켜세우는 글을 작성했다. 야당 인사를 비판하고 박근혜를 띄우는 활동을 하고, 야당 후보를 칭찬하는 글에는 반대를 눌렀다. 국정원은 이런 직원의 활동을 ‘대북심리전’이라 칭하고, 종북세력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고 야당 인사를 비판하는 게 종북주의랑 대체 무슨 상관인 걸까? 국가 정책에 반대하면 북한 편이라는 걸까? 국방부가 나꼼수를 ‘종북 앱’으로 규정한 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방부는 나꼼수 등 정부 비방 팟캐스트를 듣는 군인들의 스마트폰을 조사하고, 삭제 조치했다.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 곧 종북이란 말인가?

국정원이 시민단체인 환경연합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했다가 환경연합의 항의를 받고 사과를 하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8월 6일, 4대강에서 녹조가 발생하자 환경연합은 ‘4대강으로 남조류 발생’ ‘녹조 오염 물고기, 물놀이로 독소 노출’이라는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2주 후인 8월 20일 북한의 <우리민족끼리>가 ‘녹조는 이상기후 아니라 보 때문’ ‘녹조오염 물고기 섭취도 치명적’이라는 논평을 냈다. 국정원은 둘이 똑같은 주장을 한다며 환경연합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했다. 동아일보는 국정원의 주장을 인용해 <‘한쪽이 정부비판하면 바로 옳소'>, <‘북한-종북 단체들, 온라인선전 2만건 글 보니’>라는 기사까지 썼다. 국정원과 동아일보는 a와 b 사이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a와 b가 똑같으며 a가 b를 추종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일보는 통합진보당 대의원들이 이름표를 들어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이 북한과 닮았다고 지적했고, 넷우익들의 사이트에는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북한 글꼴로 피켓 문구를 작성했다며 종북 운운했다. 넓은 의미의 종북 개념을 학습한 이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진보좌파들이 ‘종북’ 낙인에 맞서야 하는 이유

이런 사상검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반대파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개객끼 해봐.” “너 종북이지?”와 같은 물음 속에서 진보좌파들은 항상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 자신의 사상이 북한과 관계없다는 것을 밝히는 수세적인 입장에 내몰린다. 이런 사상검증이 판을 치는 이상 합리적인 토론은 불가능하고, 표현의 자유도 억압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특히 진보좌파들에게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합리적인 문제제기나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종북세력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고자 어떤 진보좌파들은 우파들처럼 ‘종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종북이라는 단어는 진보진영 내에서 탄생했다. 2001년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간에 논쟁이 있었을 때 사회당 인사들이 종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당하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탈당파들이 민주노동당 당권파를 ‘종북’이라고 불렀다. 조선일보는 탈당파 인사였던 조승수를 인터뷰하여 “진보진영 내에 종북세력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고, 그 뒤로 보수언론과 우파들은 친북보다 종북이라는 단어를 더 즐겨 사용한다.

진보좌파들이 종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종북세력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서다. 자신들은 북한을 지지하는 종북세력과 다른 ‘좌파’라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언론과 사상검증으로 혈안이 된 우파들 눈에는 언제나 ‘그놈이 그놈’이 될 수 있다. ‘종북세력’의 주장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진보좌파들은 언제나 종북세력으로 몰릴 수 있다. 종북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낙인찍고 사상검증을 시도하는 이상 그 칼날은 언제든지 종북이 아닌 좌파들에게도 되돌아올 수 있다. 진보좌파들에게 “우리는 종북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 이상의 대응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1. 경향신문, <국정원 강연서 “박원순·공지영…낸시 랭도 종북주의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3040600145&code=940202 [본문으로]
  2. 고발뉴스, <변희재 “낸시랭은 종북세력에 속하지 않아”>,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9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