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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논문 및 레포트

한국군 PKO 참여와 해외파병 : 다자협력과 양자협력의 차별적(discriminative) 대외파병 정책을 중심으로

안보토론대회를 위해 썼던 논문

 

한국군 PKO 참여와 해외파병 : 다자협력과 양자협력의 차별적(discriminative) 대외파병 정책을 중심으로

 

1. 서론

 

건국 이래 한국은 수차례 해외파병을 해왔다.(아래 <표 1-1>과 <표 1-2> 참조) 베트남전 파병을 처음으로 시작된 국군의 해외파병은 90년대 도래한 탈냉전으로 인해 그 역할이 중요해진 국제연합 평화유지군활동(PKO)에 한국군이 참여하면서 증가하기 시작했다. 아래 <표 1-1>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군은 1993년 소말리아를 시작으로 앙골라, 인도․파키스탄, 동티모르, 사이프러스, 서부사하라, 브룬디, 레바논 등지의 PKO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한국군은 PKO라는 방식 말고도 다국적군의 형태로 해외파병을 실시해왔다. 특히 동맹국인 미국의 협조자로서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대규모 파병을 실시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PKO 참여에 비해 많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4년의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은 이러한 논란이 극대화되는 시발점이었다. 정치권과 정부 부처, 시민단체들은 파병안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이로 인해 파병 문제가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본 논문은 이처럼 한국군 해외파병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갖추어야할 바람직한 미래형(future-oriented) 해외파병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표 1-1> 한국군 파병약사


임무


파병기간


파병부대


연인원


월남전


1965.3.10~1973.3.23


주월사, 맹호, 백마, 청룡, 십자성, 비둘기, 백구, 은마(8개 부대)


31만 2천 853명


걸프전 지원


1991.1.24~4.10


사우디 국군의료지원단


154명


1991.2.24~4.10


아랍에미리트 공군수송단


160명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1993.7.30~94.3.18


소말리아 공병대대


516명


1995.10.5~96.12.23


앙골라 공병대대


600명


1997.3.3~98.3.31


인도.파키스탄 정전감시단장


1명(소장 안충준)


1999.10.4~03.10.23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3,283명


2000.1.16~04.6.5


동티모르 참모 및 연락단


45명


2002.1.4~03.12.23


사이프러스 사령관


1명(중장 황진하)


1994.8.9~06.5.15


서부사하라 국군 의료지원단


542명


2004.9.15~06.12.11


부룬디 임무단


4명


참모장교: 07년 1월~현재,

서부여단 참모: 08년 1월~현재


국제연합IFIL 협조단(참모장교와 서부여단 참모)


참모장교: 6명

서부여단 참모: 5명


2007.7.19 ~ 07.7.19


레바논 동명부대


1,077명


아프간 항구적 자유 작전


2001.12.18~03.9.1


해군 수송지원단


823명


2001.12.21~03.12.20


공군 수송지원단


446명


2002.7~07.1.26


CFC-A 참모


9명


2002.2.27~07.12.14


다산. 동의부대


2,112명


2001.11~현재


CJTF-82 협조반 등


60명


이라크 자유작전


2003.4.30~04.9.30


의료지원단(제마), 건설 공병지원단(서희)


제마 185명, 서희 956명


2004.9.30~현재


자이툰, 다이만 부대, 동맹국 협조 및 참모장교 등


18,050명


<표 1-2> 한국의 국제연합 PKO 활동과 다국적군 활동 현황



Ⅱ. 해외파병의 분류

1. 분류기준


우리는 자기 나라의 군대나 군함, 군용기 등을 군사적 목적으로 다른 나라의 영토나 영해, 영공에 파견하는 일을 해외파병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하지만, 지금까지의 한국군 해외파병은 파병의 목적을 기준으로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이냐,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이냐 두 가지 범주로 세분화할 수 있다.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은 다자협력체제의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분쟁지역의 평화를 유지하고 재건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한국군의 국제연합 PKO 참여가 대표적인 예이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은 동맹국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분류하면 아래 <표2-1>와 같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목적


동맹국 전쟁 지원


국제평화유지에 기여함으로써 분쟁지역의 평화를 재건

<표 2-1> 해외파병의 분류 기준

양자협력체제와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은 그 목적이 상이하기 때문에 각각 다른 특징들을 지닌다. 첫 번째로 파병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다르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의 경우 동맹국의 전쟁 지원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파병은 한 동맹국이 다른 동맹국에게 파병을 제안하고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양국이 협상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국제연합 PKO에서는 파병의 주체가 “다자”이고 그 목적이 “국제평화”이기 때문에 특정 분쟁지역에 해외파병이 필요하다는 국제적 합의인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된 다음에서야 파병이 가능하다. 두 번째로 파병 규모가 다르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의 경우 파병군대가 직접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때문에(교전과 전쟁 후 치안유지 모두 포함) 그리고 PKO에 비해 참여하는 국가가 적기 때문에 한 국가가 파병하는 군대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다. 반면에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인 PKO의 경우 파병군대의 임무가 정전 감시, 평화 재건 등 직접적인 전쟁 수행이 아니며 많은 국가들이 파병에 참여하기 때문에 한 국가가 파병하는 군대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세 번째로 파병에 대한 국내여론이 상이한 반응을 보인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의 경우 동맹국의 전쟁에 연루된다는 인식과 대규모로 이루어진다는 점 때문에 국내의 반대여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인 PKO의 경우 국제평화를 위해 기여하는 파병이라는 인식과 소규모로 이루어진다는 점으로 인해 특별한 반대여론이 없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 <표 2-2>와 같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파병이 이루어지는 방식


양국의 협상을 통해 파병 결정


국제적 합의(안보리 결의)가 우선적으로 필요


규모


상대적으로 대규모


상대적으로 소규모


국내 여론


반대여론이 상대적으로 높음


특별한 반대여론이 없음

<표 2-2> 두 가지 해외파병의 특징

2. 분류 기준에 따른 한국군 해외파병 사례

지금까지 해외파병을 두 가지로 분류해보았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한국군 해외파병 사례들을 이 두 가지로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한국군 해외파병 사례에 대해 논할 때 다자협력체제에서의 국제연합 PKO 파병의 사례로는 파병 규모가 가장 컸던 소말리아, 서부사하라, 앙골라, 동티모르, 레바논 파병을, 양자협력체제에서의 동맹국 지원 형태의 파병 사례로는 역시 파병 규모가 가장 컸던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병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이 사례들을 <표2-1>의 기준에 따라 정리하면 아래 <표3-1>와 같다.

<표3-1> 한국군 해외파병의 분류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목적


베트남


미국의 베트남전 지원


소말리아


국제연합의 국제평화유지 노력에 적극 기여하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하여


앙골라


아프가니스탄


미국의 대테러전쟁 지지 및 지원


서부사하라


국제연합의 평화유지노력에 적극 기여하기 위하여


이라크


미국의 이라크 항구적 자유 작전 지지 및 지원


동티모르


국제연합 평화유지노력에 적극 참여하고 동티모 평화와 안전의 회복과 아․태지역의 안정과 인권보호 및 민주화에 기여하기 위하여


·레바논


국제연합의 국제평화유지 노력에의 적극 동참하고 레바논 사태의 안정화와 중동지역의 평화 달성에 기여하기 위하여


목적이 상이한 파병 사례들은 각각의 다른 특징들을 지닌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사례인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병의 경우 미국과 한국 양국이 협상하면서 파병 정책이 결정되었고 대규모 파병이 이루어졌고 국내적 반대여론이 비교적 팽팽히 대립했다. 반면에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사례인 소말리아, 앙골라, 서부사하라, 동티모르, 레바논 파병의 경우 파병 지역에 대한 국제적 합의 이후에 파병이 이루어졌고 상대적으로(양자협력체제에 비해) 소규모 파병이었으며 국내적으로 별다른 반대여론이 없었다.

먼저 파병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해 살펴보자. 베트남 파병의 경우 처음에는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의 집요한 요청을 미국 정부가 수용한 결과였다(최용호, 2004, 135-144). 처음에 파병 요청을 거절하던 미국은 상황이 악화되자 비전투병 파병을 요청했고 이어 전투병 위주의 추가파병을 계속 요청한다. 일련의 과정들은 한미정상회담, 실무협상 등 한미 양국간의 협상과 의견조율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파병 역시 한국이 제안하거나 미국이 요청하면 양국이 안보회담과 실무협상을 거쳐 파병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반면에 PKO 파병은 안보리 결의 이후에 국제연합이 해당 국가들에게 파병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 <표4>와 같다.

<표 4>





한국이 참여한 PKO


PKO 설치 근거


파병 요청


UNSOM Ⅱ

(국제연합 소말리아 평화유지작전)


1992년 4월 24일 안보리 결의


1993년 1월 29일 국제연합이 한국에 파병 요청


MINURSO

(서부사하라 선거감시단)


1991년 4월 안보리결의 제690호


1994년 2월 25일 국제연합이 한국에 파병 요청


UNAVEM Ⅲ

(제 3차 앙골라 검증단)


1995년 2월 안보리 결의 제976호


1995년 2월 국제연합이 한국에 파병 요청


동티모르 PKO


1995년 9월 15일 안보리 결의 제1264호


1999년 9월 15일 국제연합이 한국에 파병 요청


UNIFIL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


2006년 8월 11일 안보리결의 제1701호


2006년 8월 17일 국제연합이 한국에 파병 요청


두 번째로 파병 규모에 대해 살펴보자. 1965년 3월 10일부터 1973년 3월 23일까지 8년 동안 비둘기, 주월사, 맹호, 백마, 청룡, 십자성, 백구, 은마 8개부대가 파견된 베트남 파병은 연인원 31만 2천 858명이 참전한 한국 해외파병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파병이었다. 2001년부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5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해군 수송지원단, 공군수송지원단, CFC(한미연합군사령부)-A 참모, 다산․동의부대, CJTF-82(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사령부) 협조반 등으로 구성된 아프간 파병 한국군은 연인원 3450명이 참여했다. 2003년 4월 30일, 2004년 9월 30일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이라크 파병은 의료지원단 제마부대, 건설 공병 지원단 서희부대, 자이툰, 다이만부대 등으로 구성되었다. 제마부대는 185명, 서희부대는 956명, 자이툰, 다이만 부대 및 동맹국 협조 및 참모장교 등은 연인원 18,050명이 파병되었다. 반면에 PKO의 경우는 비교적 규모가 작다. PKO 중 가장 대규모로써 1999년 10월 4일부터 2003년 10월 23일까지 활동한 동티모르 상록수부대도 3,283명에 그쳤다. 소말리아 공병대대는 연 516명, 앙골라 공병대대는 연 600명, 서부사하라 국군의료지원단은 연 542명, 레바논 평화 유지단은 1,077명이다.

세 번째로 파병에 관한 여론에 대해 살펴보자. 베트남 파병 당시는 시민사회의 미성숙으로 찬반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시민단체들도 없었으며 당시 정권이 독재정권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사회 각 집단의 반대의견이 반영될 통로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이루어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파병은 반대여론이 매우 큰 모습을 보였다. 가장 최근 이루어진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파병 반대 의견이 48.9%, 파병 찬성 의견은 31.9%로 나타났다.(<표 5-1> 참조) 이라크 파병 과정에서는 이러한 반대여론이 극대화되고 더 나아가 파병을 쟁점으로 찬반세력이 대립하는 양상까지 나타났다. 파병 규모를 둘러싸고 외교통상부와 국방부, NSC 간의 이견 차가 존재했으며 심지어 친노 의원들마저도 파병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고 파병을 둘러싸고 보수단체와 진보단체 간의 대립도 있었다. 또한 아래 <표5-2>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여론 역시 국제연합 결의안 통과 직후를 제외하고는 파병 반대가 파병 찬성을 앞섰다.

<표 5-1> 아프간 파병 찬반여론

<표 5-2> 파병결정 전후의 여론조사



구분


파병찬성(%)


파병반대(%)


비고


2003.9.16


중앙일보


35.5


56.1




내일신문


30.1


67.1




9.20


KBS


39.3


67.1




MBC


42.0


55.0


유엔의 승인이 있을 경우 찬 46.7, 반 47%


9.22


한겨레신문


38.2


57.5


비전투병 파병시 찬 64.9, 반 30.4


조선일보


36.9


54.7




10.08


경향신문


47.8


48.0




10.18


KBS


56.1


42.3


유엔 결의안 채택 이후


10.19


한겨레신문


56.6


41.6


비전투병 파병시 찬 77.6, 반 21.5


한국일보


74.9


34.1




11.02


문화일보


45.9


52.0




11.13


SBS


46.6


51.0




11.17


경향신문


35.1


54.4




11.21


한겨레신문


38.0


57.8




12.05


한국일보


49.0


35.1


11월 30일 오무전기 직원 2명 사망


12.10


국민일보


47.6


49.3




2004.6.7


MBC


40.7


56.5


김선일씨 사건 이후


반면에 PKO 파병의 경우 별다른 반대여론이 없었다. 동티모르 파병의 경우 오히려 시민단체와 여론이 파병을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정치개혁시민연대, 경제정의실천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동티모르 독립을 위한 시민연대’를 구성하고 평화유지군 파병을 적극 촉구하였다.(위승호 2005, 54) 또한 정부의 파병 정책이 확정된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조사대상의 50% 이상이 전투병 파병에 찬성하였다. 조선일보가 1999년 9월 19일 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50%가 전투병 파병에 찬성, 29%가 반대하였으며 동아일보가 9월 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66.9%가 파병에 찬성하고 27.7%가 파병에 반대하였다.


Ⅲ. 한국군의 미래형 해외파병 정책 방안

1. 양자협력체제와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에서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

지금까지 해외파병을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또 이 기준에 따라 한국군 해외파병 사례들을 분류해보았다. 이렇게 파병을 분류하는 이유는 이 분류에 따라 국가가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한국 정부가 취해야할 파병 정책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양자협력체제와 다자협력체제에서의 해외파병에서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을 분석하기 위해 ‘국가이익의 우선순위’라는 국가이익 분류법을 사용할 것이다. 자국의 생존이라는 핵심적인 이익에서 자국의 문화를 널리 보급시켜 자국의 번영에 유리하도록 유도하는 상황의 추구까지를 포함하는 국가이익은 중요성이 상이한 여러 층의 이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국가이익의 우선순위라 한다. 일반적으로 국가이익의 우선순위는 (1) 존망의 이익(survival interest), (2) 핵심적 이익(vital interest), (3) 중요한 이익(major interest), (4) 지엽적 이익(peripheral interest) 등으로 분류된다.(구영록 1994, 10)

존망의 국가이익은 국가존립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사안으로 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국가는 전쟁까지 불사를 수 있다. 핵심적 국가이익은 국가안보와 안녕에 치명적 손실을 가져올 사안들로 역시 이 경우에도 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국가는 군사행동 등 강력한 대응을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존망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경우보다는 더 타협의 여지가 있고 전쟁보다 다른 방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중요한 국가이익이란 국가가 방지책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국가기능의 손상이 가해지는 경우 국가가 추구하는 국가이익이다. 마지막으로 지엽적 국가이익은 시기적으로 급박하지 않으며 추구하지 않아도 아주 적은 손해가 예상되는 경우의 사안들이다.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분석해볼 때 국제연합 PKO 활동을 통해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은 존망의 국가이익이나 핵심적 국가이익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이 국제연합 PKO 참여를 통해 국가존립과 관련된 존망의 이익이나 국가이익의 치명적 손실과 관련된 핵심적 이익을 얻는다고 볼 순 없다. 한국이 PKO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해서 국가존립의 위기를 겪게 되거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유지, 경제발전, 국가안보유지 등의 핵심적 국가이익을 위협받게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국제연합 PKO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은 지엽적 이익에 가깝다. 해외파병과 관련된 많은 국가 문서들에 잘 드러나 있듯이 한국이 PKO 활동에 참여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국제평화에 기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이고 국제연합이라는 다자협력체제 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의 소말리아, 서부사하라 PKO 참여가 한국이 1996~1997년 국제연합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으로 선출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이 그 예라 볼 수 있다. 즉 한국이 PKO 활동으로 인해 얻은 이익은 추구하지 않아도 국가존립이나 국가기능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추구할 경우 부가적으로 이익을 얻게 되는 지엽적 국가이익인 것이다. 또한 PKO 활동시 얻게 될 PKO 당사국의 경제재건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 역시 추구하지 않아도 큰 손해는 없지만 추구할 경우 부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지엽적 국가이익에 해당한다.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강화, 경제적 이익 말고도 한국은 PKO 참여를 통해 군사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비록 직접적인 교전은 하지 않는다하더라도 분쟁 지역에서의 다양한 임무 수행은 휴전 상태에 있는 한국군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며 다른 나라와의 연합 작전을 통해 다른 나라 군대의 장점들을 배워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군사적 이익 역시 직접적 이익이라기보다 막연하게 예상되는 이익으로써 PKO 활동을 함으로써 부가적으로 얻게 되는 지엽적 이익이라 볼 수 있다.

반면에 동맹국의 요청으로 파병하는, 동맹국 지원 형태의 해외파병은 PKO 참여처럼 파병할 시 얻게 될 부가적 이익들의 추구가 아닌 파병하지 않았을 시 예상되는 불이익들 때문에 이루어진다. 국가이익의 우선순위라는 기준에서 동맹국의 전쟁 지원을 위한 파병은 존망의 이익, 핵심적 이익의 추구를 위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한미동맹 체제를 강화함으로써 9.11 테러 이후 변화한 미국의 세계질서 유지 방식에 적응하려는 한국의 전략적 파병이었다. 상대적으로 고립된 지리적 조건 하에 오랜 기간 동안 국토에 대한 직접적인 안보위협을 겪은 경험이 없는 미국인들은 9.11테러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미국 행정부로 하여금 전례 없이 강경한 일방주의 노선을 걷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남궁곤 2007, 112) 그 일환이 바로 미국을 공격한 테러집단 알카에다를 지원하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대한 전쟁 선포였고, 이러한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를 적극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려는 시도가 바로 한국의 아프가니스탄 파병이었던 것이다.

월남전 전투병 파병의 경우 남북한대치상황에서 주한미군 철수로 대표되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원 감소로 인해 국가안보의 위기를 느낀 박정희 정권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졌다. 즉 박정희 정권이 인식하기에 당시 주한미군의 철수는 국가의 존립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사안이었거나 적어도 국가안보와 안녕에 치명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사안이었던 것이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2차 북핵 위기라는 한반도 급변사태가 발생했고 한국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 또한 미국이 추가파병 요청을 했을 당시 한국은 주한미군 재배치와 감축, 그리고 기지 이전 등의 문제로 미국과 협의 중이었다. 그렇기에 노무현 정부는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을 지원하는 형태로 미국에게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하고 더 나아가 미국과 협의 중인 군사안보 관련 사안들을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 했던 것이다. 다만 베트남 전쟁 때보다 한국 정부가 인식하는 안보위협의 정도가 낮았고, 그에 따라 파병의 형태와 규모가 달라진 것이다.

<표3> 안보위협에 따른 한국군 파병의 차이



사례


북한 군비/한국 군비(안보위협)


파병 제의국


최종파병규모


베트남전


1961


2.26


한국


X


1964


2.33


미국


5개 사단


이라크전(2003)


0.18


미국


여단 규모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국가이익의 우선순위를 기준으로 양자협력을 위한 해외파병은 존망의 이익, 핵심적 이익의 추구와 연관되어 있으며 다자협력을 위한 해외파병은 지엽적 이익의 추구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이 양자협력의 해외파병은 중요도가 높은 국가이익과 관련되어 있으니 무조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하고, 다자협력의 해외파병은 중요도가 낮은 국가이익과 관련되어 있으니 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2절 양자협력체제 해외파병의 신중성 제고

파병 정책을 고려할 때는 국가이익의 우선순위와 더불어 정책의 신중성(愼重性)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존망의 이익이나 핵심적 이익을 추구할 때 국가는 매우 신중해야한다. 존망의 이익, 핵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국가적 목표나 정책 방향이 과연 이 이익을 추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고려가 필수적이다. 예컨대 존망의 국가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국가는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 선택은 존망의 국가이익을 지켜줄 수도 있지만 신중한 검토가 없다면 오히려 그 선택은 패망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존망의 이익, 핵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베트남, 이라크 파병이 수많은 논란을 겪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파병 반대론자들의 일관된 주장은 “과연 파병이 국익에 도움이 되었는가” 이다. 베트남 파병 때 수많은 한국 군인들이 전사하고, 또 이라크에서 김선일 씨 피랍 살해사건이 발생하는 등 해외파병으로 한국 국민이 희생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한국이 동참하면서 한국 역시 테러 공격의 대상국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 해외파병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었느냐는 것이다. 즉 국가 안보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외파병이 국민이 희생당하고 새로운 적(敵)을 만들어내는 등 새로운 국가안보위기 상황을 유발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이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이 우선순위가 높은 국가이익의 추구라는 점에서 볼 때 두 가지 측면에서의 정책 방향이 요구된다. 먼저 장기적 관점에서 해외파병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안보위기 상황을 개선해야한다. 즉 동맹국의 도움 없이도 국가안보 위기상황을 맞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갖추어야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단기적 관점에서는 파병으로 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고 그로 인해 지불하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파병 정책에 있어서 국가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으며 이익의 극대화와 비용의 최소화를 이루는 데 적절한 협상 전략을 구상해야한다.

위에서 밝힌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이 가진 특징들이 신중성을 고려해야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양국 간의 이해관계의 조정과 협상의 산물인 파병 정책은 다자간의 합의에 이루어지는 PKO 활동에 비해 상대국의 요구를 지나치게 수용함에 따라 국가가 추구해야할 이익들이 파병 정책 안에 제대로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대규모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파병이 안고 있는 부담이 크며 반대여론이 높다는 점에서 국민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파병을 시행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양자협력체제의 파병은 비용과 이익을 엄밀히 고려하여 이루어져야한다.

이를 위해 먼저 파병이 자국과 파병 요청국 두 국가 중 어느 국가에게 더 큰 이익이 되는 지, 즉 누가 파병을 원하는지를 파악해야한다. 베트남 파병의 초기의 경우 한국이 몇 차례에 걸쳐 파병을 제안할 정도로 파병을 원했으며(3,4차 파병 때는 미국이 먼저 요청했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 미국이 강력하게 파병을 요청한 걸로 보아 미국이 한국군 파병을 원했음을 알 수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상대방에게 파병을 거듭 제안해서 파병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며 더불어 파병으로 인해 우리가 지불해야하는 비용을 최소화하여야한다. 반면에 만약에 후자의 경우라면 ‘파병 요청을 수락함으로써 무엇을 더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려해야한다.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를 예로 들어보자. 먼저 한국은 ‘전시작전 통제권의 환수’를 누가 더 원하는지 파악해야한다. 당시 미국은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lobal Defense Posture Review)을 통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증대시키려하고 있었으며 그 일환으로 미국이 가지고 있었던 한국의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를 계획했다. 전작권 환수는 미국이 먼저 제안했으며,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른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에 따라 미국에게는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은 너무나 쉽게 전작권 환수에 합의했다. 미국이 강력하게 전작권 환수를 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은 이 전작권 환수를 협상 전략으로 삼았어야 했다. 즉 노무현 정권은 전작권 환수에 곤란함을 내비치면서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위의 논의들을 한국군 파병 사례에 적용시켜보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파병 여부를 신중히 고려하여 국가이익의 극대화를 이룬 파병의 대표적인 사례로 베트남 파병을, 신중한 고려가 없어 국가이익을 추구하지 못한 파병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라크 파병을 들 수 있다.

먼저 두 파병의 경우 모두 한국 정부가 파병으로 얻는 이익과 비용을 신중히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베트남 파병의 경우 주한미군 감축 등 안보사안과 관련된 문제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목적으로 파병을 했지만 파병시 한국이 감수해야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1965년 1월 6일 작성된「월남파병 문제에서 고려되어야할 문제점」이라는 당시 보고서에는 “구라파, 아시아국가 등이 미국의 월남전을 비판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의 인기는 대단한 저조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이러한 베트남전에 파병한다면 아시아, 아프리카, 중립 국가들과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될 것이며 UN총회에서의 중립제국의 지지획득에 절대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당시 UN 가입을 위한 한국의 노력이 월남 파병으로 타격을 입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파병으로 얻을 수 있는 양자협력체제의 강화라는 국가이익과 그로 인해 잃게 될 다자협력체제에서의 신뢰 상실이라는 비용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한미동맹의 강화와 원만한 북핵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파병을 결정한 한국 정부는 국내적으로 엄청난 반대에 직면해야했으며 명분 없는 전쟁에 개입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즉 파병으로 인해 국내정치적 지지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파병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이러한 비용들을 모두 감수하고 추진한 파병이 그 목적을 이루었는가”,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국가는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파병 협상에 임했느냐”는 차이이다.

베트남 파병의 경우 한국은 소기의 파병 목적들을 일정 부분 달성했으며 협상도 비교적 잘 이끌었다. 1965년 5월 17일~18일까지의 한미 정상회담의 회담록은 당시 한국이 국가이익 극대화를 위해 벌인 치열한 협상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투병으로 이루어진 한국군 추가 파병을 요구하자 박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 원조를 파병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에 존슨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경제 지원과 관련된 안이 의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한국군 전투부대가 적어도 1개 사단을 파병하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확답을 피했고 대신 김성은 국방부장관은 미국이 추진하는 군원 이관 정책의 중단을 협상 조건으로 요구했다. 미국은 한국 측의 끈질긴 요구를 받아들여 한미공동성명에 군원 이관을 재검토하고 차관 1억 5천만 달러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한미공동성명에는 이밖에도 북한의 재침시 미국의 즉각적 개입과 지원, 한국군 유지를 위한 군사지원, 한국 상품의 대미수출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익 극대화를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파병에 반대하던 야당 국회의원들마저 파병불가피론으로 돌아섰는데,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차지철 의원이 파병을 반대하고 나섰다. 당시 외무장관이던 이동원의 회고록에 따르면 차지철의 베트남 파병 반대는 미국의 실무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박 대통령이 지시한 것이었다. 야당이 파병 찬성으로 돌아선 상황에서 파병에 반대하는 주장을 이용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연극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실무협상에서 미국은 베트남 파병 기간 동안 군원 이관을 중단하고 베트남 전쟁 군수물자를 제공하는 구매국에 한국을 포함시킨다.(KBS 2003)

이에 비해 이라크 파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파병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파병 협상도 잘 이끌지 못했다. 이라크 파병의 가장 큰 목적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더불어 수렁에 빠져있는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파병 이후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루어진 5차례에 걸친 6자회담은 진전이 없었고 2005년 9월 15일에는 BDA(방코델타아시아) 북한 계좌 동결이라는 미국의 대북경제제제 조치까지 내려졌다. 이후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핵 실험이 성공했다고 발표했고 이에 따라 10월 13일 미국의 주도로 UN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북핵 문제는 잘 해결되기는커녕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신임연구원 마이클 오헬른은 “부시 정부는 파병과 동아시아 정책을 연계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3천명의 병력을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파병한 것 때문에 미국이 남한에 너무나 고마워서 북핵 문제에 관해 남한이 하자는 대로 할 것이라는 생각은 바보 같은 생각이다. 이미 미 행정부는 부시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의견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KBS 2006) 즉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채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큰 양보를 얻어내고자 한 것이다.

요약해보면 양자협력 체제에서 단기적으로 한국 정부는 상대국의 파병 요청이 들어왔을 때 이를 매우 신중히 검토하고 더 나아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협상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제3절 다자협력 체제 해외파병의 신속성 제고

앞에서 분석했듯이 양자협력 체제의 해외파병이 존망적, 핵심적 국가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정책이라면 다자협력 체제의 해외파병은 지엽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정책이다. 이 지엽적 이익을 추구할 때 고려해야할 사항은 양자협력의 해외파병과는 달리 정책의 신중성이 아니라 신속성(迅速性)이다. 그 이유는 국제평화에 대한 기여, 경제적 이익, 군사적 이익으로 대표되는 지엽적 이익들은 신속한 파병이 이루어질 때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밝힌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의 특징들이 PKO 참여에 있어 상대적으로 신중성을 덜 고려해야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PKO는 국제적 합의인 안보리결의 이후 그 활동이 시작되며 다자협력체제인 국제연합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파병 이전에 이미 파병의 국제적 명분이 주어져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보다는 국가가 파병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또한 파병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국가가 지는 경제적, 인적 부담이 작다. 특히 나중에 국제연합으로부터 경비보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가가 지는 경제적 부담은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보다 훨씬 적다. 또한 파병을 반대하는 여론이 적기 때문에 국가가 파병 추진을 하는 데 있어서 국내정치적 부담이 적다.

PKO의 주요 임무가 분쟁 당사자 간의 평화협정 체결 촉구 및 이행 감시, 군대해체와 같은 군사적 임무이기 때문에 PKO가 신속하게 분쟁에 대처하지 않는 경우 커다란 문제점이 생기게 된다. 먼저 PKO가 분쟁 초기에 활동하면 예방할 수 있는 상황을 지나친 파병 소요기간으로 인해 악화시키고 보다 결국엔 더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필요로 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국제연합 PKO의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조춘호 2005, 26)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소말리아, 르완다에서의 비극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국제연합에서도 국제연합 상비체제를 마련하는 등 PKO의 신속한 전개를 위해 노력해왔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PKO 파병에서는 신중성을 덜 고려해도 된다는 점, 그리고 한국이 PKO 참여로 얻게 될 국제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이익은 지엽적 이익으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찾아나가는 의미의 국가이익이라는 점에서 한국은 PKO의 신속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로 PKO 파병에 관한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PKO 참여를 뒷받침해주는 법 조항은 “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주둔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는 내용의 헌법 제60조 2항이다. 이 헌법조항은 국군을 해외에 파병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긴 하지만 PKO 파병시마다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한다는 점에서 신속한 파병 결정에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 헌법 제 60조에 명시되어 있는 국회동의권은 월남전 같이 교전당사자로서 파병했을 때에 적용되던 것이지, 이를 분쟁해결을 위한 정전감시자로 참여하는 PKO 파병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장기수 2006, 25) 그렇기에 1992년「국제평화협력법」을 만들어 이를 근거로 자위대를 적극적으로 PKO에 파견하는 일본처럼 PKO 관련법을 제정함으로써 신속한 파병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한다.

또한 PKO를 전담하는 기구를 설립해야한다. 현재 PKO 파병은 파병결정까지는 외교통상부가 주관하고 파견 관련 절차, 임무는 국방부가 담당하는 이원화된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임무가 이원화될 경우 임무수행 과정 중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성이 떨어지며 PKO 파병에 대한 공통의 정책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각자 부서에 관한 독립적 결정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국군의 PKO 파병을 총괄하고 신속하게 추진할 전담기구의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두 번째로 한국은 국제연합 요청시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국제연합 상비체제를 갖추어야한다. 한국은 이미 1995년 국제연합 상비체제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국제연합 상비체제 중 1단계에 참여하고 있고 상비체제에 참여할 부대도 편성하고 있다. 물론 한국이 PKO 상비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지만, 참여하고 있는 수준을 한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를 고려하여 점차적으로 상향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며 국제연합 분납금을 세계에서 열 번째로 많이 내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미 국제연합 회원국 중 50개국이 국제연합 상비체제 3단계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군 역시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적어도 3단계 수준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유엔 상비체제에 참여하기 위해 참여 자원인 군인, 민간요원, 선거, 행정업무요원, 물적 자원 등을 사전에 미리 마련해놓고 이 참여 자원들에 대한 교육을 확대해야한다. 이런 방식으로 유엔 상비체제 참여를 준비함으로써 PKO 군의 신속한 전개에 한국이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약하면, 다자협력체제에서의 해외파병으로 얻을 수 있는 지엽적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파병 정책 결정과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PKO 관련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국제연합 상비체제에의 적극적 참여를 고려해야한다.

Ⅳ. 결론

한국군 해외파병이 증가함에 따라 한국군 해외파병 정책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그 연구의 대부분이 PKO 파병 자체, 혹은 동맹국 지원 파병 자체를 다루었거나 혹은 두 가지 형태의 파병을 모두 다루었다고 해도 해외파병이라는 하나의 틀이 연구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양자협력체제에서의 해외파병과 다자협력체제에서의 해외파병은 그 목적과 특징, 그리고 파병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이 분명히 상이하며 이런 이유로 두 가지 형태의 파병은 다른 틀로 연구되어져야하며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차별적인 파병 정책을 추구해야한다. 본 논문은 이런 관점에서 한국 정부가 추구해야할 파병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쓰여졌다.

이처럼 해외파병의 분류기준에 따라 정부가 추구해야하는 파병 정책은 달라지지만, 두 가지 형태의 파병 정책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국가이익의 극대화”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정책에서 필요한 신중성 제고는 존망적, 핵심적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이며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정책에서 필요한 신속성 제고는 지엽적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이라크 파병 이후 해외파병에 관한 찬반논란이 뜨겁다. 비록 지금은 PKO 파병에 관한 논란이 없지만 PKO에 한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이러한 논란이 PKO 파병에서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특히 PKO 파병 역시 미국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습으로 진행된다면 국민들은 특정한 국가(미국), 세력에 용병으로 갈 것 같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고 이에 따라 새로운 파병 논란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파병 논란은 앞에서 말한 파병 정책의 가장 중요한 기준인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파병 논란이 친미로 대표되는 보수 세력과 반미로 대표되는 진보 세력 간의 이념 대결의 장으로 이용된다. 한미동맹이 중요하니 파병하자는 보수 세력들,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파병은 제국주의 전쟁이니 참여하지 말아야한다는 진보 세력들의 주장은 진정한 국가이익을 생각하지 않은 냉전시대 산물인 친미-반미 논쟁의 확장인 소모적 논쟁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국가이익을 기준으로 파병 정책을 결정해야하며 이를 통해 국민들을 설득해야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