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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논문 및 레포트

자크 라캉과 페르디낭 드 소쉬르, 무의식과 언어의 만남

과제

 


라깡의 재탄생

저자
김상환외 엮음 지음
출판사
창작과비평사 | 2002-05-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번역에 의존하던 기존의 라깡 정신분석학 연구의 흐름에서 벗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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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언어학 강의

저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6-12-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현대언어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번역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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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론


어떤 사상과 철학이 ‘순수하게 독창적’이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사상이든, 어떤 철학이든 이전의 사상과 철학의 영향을 받고, 이를 계승하거나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마련이다. 기존 철학과는 다른 ‘체계’를 구축한 ‘정신분석학’도 예외는 아니다. 프로이트의 뒤를 이은 정신분석학자 라캉 역시 다른 철학을 수용함으로써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라캉의 명제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철학은 ‘언어’학이다. 그리고 이때의 언어학이란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칭한다. 라캉은 기표-기의 등 소쉬르의 몇 가지 개념을 차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의 체계를 정신분석학에 도입했다.


우리는 라캉이 정신분석학에 기여한 바를 ‘프로이트로의 복귀’로 정리할 수 있다. 라캉은 프로이트 이후의 자아심리학에 맞서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시도했다. 그 복귀란 다수 정신분석 학파에서 치료 과정 중 주체가 보인 신체적 반응들에 부여된 중요성과는 달리 그 동안 종종 과소평가된 말의 실천적 중요성을 되찾는 것이다. 자아심리학은 동일시적인 자아, 통일적 자아를 통해 주체들을 자아라는 틀에 귀속시키고 그를 사회에 통합하려 한다. 그러나 라캉은 정신분석이 역할이 주체를 자아 안에서 대상화하는 상상적 동일시들을 충만한 말을 통해 상징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정신분석은 주체를 그의 상상적 동일시들로부터 탈-동일시 시켜야 한다. ‘언어’는 이 지점에서 라캉에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1. “정신분석학이 존재한다면 언어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이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이 기존 철학에 파란을 일으킨 이유는 ‘무의식’에 대한 연구 때문이다. 기존 철학은 인간은 자기의식을 가지고 이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인간에게 의식이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사실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무의식이라는 과감한 명제를 제시했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 안나 O의 사례분석을 통해 정신분석을 시작했다. 안나 O는 발작증상으로 프로이트에게 치료를 받는데, 놀랍게도 안나 O가 자신이 겪었던 일을(그러나 기억나지 않았던) ‘언어로’ 표현하자 그의 발작증상을 사라졌다. 이를 두고 프로이트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것이 무의식적 행위, 즉 신체적 증상으로 바뀌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프로이트 역시 무의식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의, 정신분석에 있어서의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었다.


라캉은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시도하면서 언어를 정신분석학의 핵심 개념으로 내세운다. 프로이트만 해도 무의식이 원초적이거나 본능적인 무엇인가로 보았다. 프로이트의 뒤를 이은 국제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학자들이 무의식을 생물학적 결정론, 행태주의로 해석하는 데 어느 정도 단초를 제공했던 셈이다. 라캉은 이에 강력히 반대하며 자신이야말로 프로이트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주장한다.


이런 라캉이 국제정신분석학회의 학자들과 자신을 구별 짓기하며 내세운 것이 바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명제였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고, 언어화된 무의식을 가진 인간은 상징적인 질서, 타자의 질서, 언어적으로 조직된 질서에 편입되어 살아간다. 무의식은 빙산의 일각처럼 의식 아래 잠들어있지 않는다. ‘실재’에 문제가 생길 때, 무의식은 의식 위로 솟아오르며 꿈이나 증후 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 표현방식은 언어의 법칙(환유, 은유 등)을 따르며 우리는 이 언어의 법칙을 분석함으로써 무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정신분석학에서 언어가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꿈이나 증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무의식이 언어의 모습으로 현현한다. 둘째, 정신분석의 치료 역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셋째, 언어란 곧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의 상징계와 같다.『언어의 사랑』이라는 저서를 쓴 밀너가 다음과 같은 질문은 던진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이 존재한다면 언어란 무엇인가?”


라캉 이전에도 몇 몇 인물들이 정신분석학과 언어의 만남을 주관하고자 했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선구자 소쉬르의 둘째 아들 레이몽 드 소쉬르가 그런 인물 중 한 명이다. 레이몽은 제네바대학에서 베버 교수의 지도 아래「정신분석학 방법」이라는 이름의 박사논문을 썼는데, 이 논문을 감수한 이가 바로 프로이트였다. 실제로 레미몽은 그의 박사논문에서 소쉬르의『일반언어학 강의』를 인용하기도 했다. 라캉의 전기학자 루디네스꼬에 따르면 레이몽은 소쉬르의 후계자로 은유-환유에 대해 연구한 언어학자 야콥슨과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레이몽이 야콥슨과 만났을 때 그는 ‘정신분석학과 언어학의 공통된 연구 영역을 개척해보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추었다고 한다.


소쉬르의 제자인 쎄셰에 부인은 실제로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을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저서『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일기』에는 ‘상징적 실현’이라는 방법을 통해 환자를 치료했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 그는 소쉬르의『일반언어학 강의』를 인용하며, 소쉬르가 창안한 개념인 기호나 상징, 기표, 기의, 기표-기의 간 자의성 등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의 만남을 시도한 장본인은 라캉일 것이다. 그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수용해 정신분석학을 새롭게 정립했다. 라캉과 소쉬르는, 무의식과 언어는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라캉정신분석학의 주요 개념들을 통해 정리해보자.


2. 라캉과 소쉬르, 무의식과 언어의 만남.


① 기표와 기의


소쉬르가 내세운 구조주의 언어학과 전통 언어학은 큰 차이가 있다. 만일 소쉬르의 언어학과 전통 언어학이 차이가 없었다면, 라캉은 자신의 정신분석학에 소쉬르의 언어학을 차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어학은 한 사물을 지시하는 이름인 ‘기호’를 다룬다. 전통 언어학은 이러한 기호를 추론하는 언어의 지시론적 모델을 발전시켰다. 소쉬르 역시 기호를 연구한다. 그는 기호를 기표와 기의로 나누었다. 기표란 인간의 목소리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다. 그는 이 기표를 ‘청각 영상’이라 표현한다. 내가 ‘고양이’라고 소리 내어 기표를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고양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기표는 기표다. 이는 기표가 단순히 목소리가 아니라 ‘청각 영상’이기 때문이다. 기의란 그 기표가 지시하는 개념이나 심적 관념이다.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 간의 관계가 자의적이라고 주장했다. 고양이를 가리키는 말이 ‘고양이’가 된 것에는 어떤 필연적인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소쉬르가 전통 언어학에 비해 혁명적인 이유는 기표보다 기의를 중시하는 전통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기표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기표를 기의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기표는 기의를 단순히 지시하는 역할에서 벗어난다. 기표가 기의를 표현하는 필연적인 이유 같은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쉬르는 기호학적 가치, 즉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매순간 변할 수 있다는 ‘가변성’을 제시한다. 소쉬르에 이르러, 기표는 더 이상 기의에 종속되지 않으며 자율적인 체계를 갖는다.


<그림 1 라캉에게 기표와 기의>

기표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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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의 s


라캉은 소쉬르에서 더 나아간다. 그는 세미나 3권에서 그의 세 가지 언어개념을 요약한다. 첫째, “사물들의 질서는 트레이싱처럼, 말의 질서 위에 덧놓인다.” 둘째, “기의는 또 다른 기의를 통해서만, 또 다른 의미작용을 참조함으로써만 자신의 목표물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커다란 전진이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상 두 가지의 언어 개념은 소쉬르의 개념에 상응한다. 그러나 라캉은 이어 말한다. “이것(두 번째 개념)은 단지 첫 걸음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 다른 걸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기표에 의해 구조화되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도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라캉은 이로써 소쉬르를 인정하지만 소쉬르에서 벗어난다. 소쉬르는 기의들의 상호의존, 언어의 변별적 구조를 주장하는 데 그치지만, 라캉은 기의에 대한 기표의 우위를 주장한다. 정리하자면 라캉은 소쉬르의 기호 개념을 채택하면서도 동시에 세 가지 근본적인 방식으로 이를 전복한다.


소쉬르는 이전의 전통 언어학자들과는 달리, 기호의 두 가지 특징을 제시한다. 첫째, 기호는 체계의 부분으로서 그 체계와 분리될 수 없다. 즉 하나의 기호에 내재하는 의미작용은 모든 기호들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을 통해서만 출현하는 차이적 체계이다. 소쉬르는 기호의 의미가 언어 안에서 ‘기호’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나 대립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고양이(cat)는 모자(hat)와 매트(mat)가 아니고, 자유(free)는 나무(tree)나 연회(spree)가 아니다. 라캉은 더 나아가, ‘의미’는 서로 다른 기표들 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며, 기의는 이러한 끊임없는 차이, 기표의 미끄러짐의 ‘효과’로 정의된다. 사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우리가 어떤 단어의 의미를 찾고자 사전에서 그 단어를 찾으면, 그 단어는 다른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있다. 우리는 그 단어를 찾고, 또 그 단어를 설명하는 단어들을 찾는다. 하지만 결코 진정한 의미에는 도달할 수 없다. 기의에는 도달할 수 없다. 기표들은 다른 기표들로 끊임없이 대체되며. 이 차이를 통해서만 우리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소쉬르는 기호의 음운론적인 성분과 개념적인 성분, 즉 기표와 기의가 서로 상응하는 방식이 자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기호에 특유한 언어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언어적 구조 자체이기 때문이다. 기호의 두 성분 사이의 연결은 이 구조의 부차적 현상에 불과하다.


라캉은 세 가지 면에서 소쉬르의 언어학과 다른 기호 개념을 제시한다. 첫째, 기표는 논리적으로 기의에 앞서며 기의의 원인이다. 라캉에게 있어 기표 S가 대문자로, 기의 s가 소문자로 표기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또한 기표와 기의 사이의 “---” 표시는 장벽을 의미한다. 라캉에 따르면 기표를 통해서는 기의의 의미를 바로 찾을 수 없다. 기의의 개념적 본성은 기표들의 의미화 작용의 산물이다. “기표는 단지 의미작용을 위한 어떤 봉투나 용기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기표는 그것을 분극화하고, 구조화하고, 존재케 한다.”(세미나 3권) 둘째, 라캉에게 있어 기표와 기의는 일대일로 상응하지 않는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일대일 대응과는 거리가 멀다.”(세미나 3권) ① 언어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진화하며, 기표는 역사적으로 상이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② 문장을 구성하는 기표적 단어들은 문장의 층위에서 보면 그 자체로 아무 의미작용도 하지 않는다. 의미작용은 문장이 구성된 이후에야 발생한다. 이런 의미에서 라캉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항상 유동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세미나 3권) 이는 소쉬르적인 통일성에 대한 반론이다. s와 S 사이의 횡선은 실제적 분할인 것이다.


셋째, 라캉에게 있어 언어의 구조주의적 접근은 ‘주체’를 추적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 구조와 주체는 상호배제적이지 않다. 기표와 기의 사이의 간극은 주체가 기의의 주체일 뿐 아니라 기표의 주체라는 사실의 원인이다. 주체는 기표의 작용 때문에 분열된다. 그는 주체가 구조를 억압하고, 주체가 구조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구조주의적 발상을 넘어서서 구조와 주체가 상호배제적이지 않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 모든 접근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라캉은 왜 소쉬르를 차용하면서 동시에 소쉬르에 반대하는가? 그는 소쉬르의 기표-기의 개념을 빌려 무의식을 분석하는 데 사용한다. 우리는 꿈이나 증후의 의미를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그것은 억압되고 변형되어 있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 도달할 수 없다. 라캉은 꿈이나 증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기표들이 어떻게 조직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하며 소쉬르를 수용하는 동시에 그를 극복한다.


② 은유와 환유


기표와 기의 개념에 대해 알았으니 이제 기표에 의해 발생하는 의미작용의 사슬들이 무의식에서 형성되는 방식을 분석하고, 어떤 언어법칙들에 따라 그것들이 의식적 의미작용을 하는지 산출하는 지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가야 한다. ‘무의식은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어 있다’는 말의 의미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소쉬르가 언어의 계열체와 통합체로 의미작용을 분석하고자 했다면, 야콥슨의 영향을 받은 라캉은 인간이 인식하는 언어가 은유와 환유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은유와 환유라는 언어구조를 이해하면, 무의식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은유와 환유는 다른 말로 하면 압축과 전치이다.(이 구별법은 프로이트가 사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또한 은유와 환유는 소쉬르의 계열체, 통합체와 대응한다.


은유는 유사성에 의한 대체를 뜻한다. ‘내 마음은 호수다’라는 문장은 대표적인 은유법이다. 여기서 호수는 ‘고요함’, ‘잔잔함’이라는 의미를 대체한다. 고요함과 호수, 잔잔함과 호수 사이의 유사성이 은유다. 은유는 압축이다. ‘너를 향한 내 마음이 불타고 있어.’라는 문장에서. ‘불타다’는 ‘사랑하다’는 말을 대체한다. ‘불타다’와 ‘사랑하다’는 ‘뜨겁다’라는 공통요소를 함께 중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압축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은유로 이루어져 있다. 꿈에 등장하는 요소들은 원래 무의식의 욕망을 대체해서 나타난다. 소쉬르는 이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가? <표2>에서 나-너-우리, 너-나-그, 때리고 싶다-좋아한다-응원한다는 하나의 계열체이며, 서로 대체 가능한 말이다. (은유)


<표 2>

나 는 너 를 때리고 싶다

너 나 좋아한다

우리 그 응원한다


환유는 인접성에 의한 대체를 뜻한다. '한 잔 하자‘는 문장은 대표적인 환유법이다. ’잔‘은 ’술‘을 대체한다. 둘 사이에는 어떤 의미의 유사성이 없지만, 잔을 드는 것은 술을 마시기 전의 인접한 단계이다. 달을 보고 둥그런 얼굴을 떠올린다면 이미지의 유사성에 의한 은유이지만, 토끼를 떠올린다면 의미의 인접성에 의한 환유이다. 은유가 꿈의 언어라면, 환유는 증후의 언어이다. 증후는 무의식을 드러내지 못하고 인접되어 있는 다른 기표로 계속 치환된다. 소쉬르는 이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가? <표2>를 다시 보면, 나-는-너-를-때리고 싶다, 너-는-나-를 좋아한다, 우리-는-그-를-응원한다는 하나의 통합체이다.


③ 언어와 상징계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 간의 자의성을 강조했다. 서로 관련 없는 기표와 기의가 결합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성이다. 언어란 사회적 규범이자 제도이다. 소쉬르는『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언어가 사회적 제도라고 말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그렇게 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기표는 그 기의를 표시한다. 소쉬르 언어학의 연구대상인 ‘랑그’는 사회적인 약속이며 모두가 따라야만 하는 규칙이다. 어떠한 개인도 이러한 언어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법칙을 따라야 한다.


라캉은 소쉬르의 이러한 문제의식을 이어받지만, 언어를 단순히 사회성 정도로 파악하지는 않는다. 그는 ‘타자’와 ‘상징계’라는 개념을 등장시킨다. 언어는 소쉬르의 말대로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 정도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정신병적 증세에 시달릴 수박에 없는 것이다. 상상계에 머물러 있던 어린 아이가 오이디푸스 과정을 거쳐 상징계에 들어서고. 비로소 사회 속의 하나의 인간으로 ‘탄생’한다. 인간이 무의식을 갖는 이유는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며, 인간만이 상징계라는 질서에 편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징계의 모든 존재는 그들 간의 차이를 근거로 성립하며, 이 차이에 의해 세계에 주체가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또한 상징계는 언어의 세계와 같다.


3. 의문점? 혹은.....


이러한 라캉의 체계는 좌파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라캉을 정치적으로 독해하는 것은 오늘날하나의 유행이다. 야니 스타브라카키스는『라캉과 정치』라는 이름으로, 슬라보예 지젝은 라캉이 말년에 착안했던 ‘실재계 개념’을 통해서 말이다. 지젝은 혁명이란 바로 이 실재계가 도래하여 상징게가 뒤집어 지고, 새로운 상징계가 수립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접근은 라캉이 구조주의적 접근만 모색하지 않고, 주체와 구조를 상호배재적으로 설정함으로써 구조의 극복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실재계가 도래한다는 것은 마치 심판의 그 날을 기다리는 유대인의 심정과 무엇이 다른가? 이 지점에서 혁명과 현재 상징계의 전복을 꿈꾸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점에서 다시 구조주의적 한계에 부딪치지 않는가?


과학자들이 만약 라캉을 읽는다면 쉽게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정신분석학을 비판하는 것과 유사할 것이다. 예컨대 만일 우리가 정신병에 걸린다면 우리는 정신분석가를 찾아갈 것이 아니라 약을 먹어야 한다. 임상적 의미에서 정신분석이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효가 없기 때문에 정신분석의 실효는 다한 것인가? 정신분석은 이에 대해 다른 답을 제시해야 한다. 정신분석은 치료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인간에게 ‘내가 왜’ 그런 정신병에 빠진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논리적인 체계를 제공한다. 그래서 환자가 그것을 ‘납득’하게 만든다. 오늘날 정신분석의 기능은 임상이 아니라 이 지점에 있지 않을까?


4. 결론

라캉의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말에, 무의식과 언어가 어떻게 만나는지, 그리고 라캉은 소쉬르와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해 잘 요약되어 있다. 언어라는 상징계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인간이 인식하는 언어구조는 은유와 환유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의 무의식도 그러하다. 무의식과 언어처럼 은유-환유의 형식으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 언어구조를 분석함으로써 무의식을 분석할 수 있다.


참고문헌


로렌조 키에자,『주체성과 타자성 : 철학적으로 읽은 자크 라캉』, 이성민 역, 2012.

리처드 커니,『현대유럽철학의 흐름』, 임헌규, 곽영아, 임찬순 역, 한울, 1992.

이동성,「정신분석과 언어 : 라캉이론을 중심으로」, 東西言論, 제15집, 2012.02.

최용호,「언어학과 정신분석학 : 소쉬르에서 라캉으로, 라캉에서 소쉬르로 - 시니피앙에 관하여」, 불어불문학연구 제55집, 2003.

최용호,「라깡과 소쒸르 : ‘실재하는 것’에 대한 물음」,『라캉의 재탄생』, 창비, 2002.

페르디낭 드 소쉬르,『일반 언어학 강의』, 최승연 역, 민음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