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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청영방송 KBS, ‘공영방송’ 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적폐’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 중 하나가 언론, 특히 대표 공영방송 KBS의 실체였다. 공영방송 KBS가 국민의 방송, 공영방송이 아니라 청와대의 방송, ‘청영방송’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결국 KBS이사회가 보도와 제작 전반에 개입했다는 비판을 받은 길환영 KBS 사장을 해임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KBS의 문제가 사장 하나 잘리는 것으로 끝날 리는 없다.

‘막말’에서 시작된 KBS 사태…진짜 원인은 사장의 ‘보도개입’

시작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빗댄 그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KBS로 향했다. 유가족들은 KBS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며 김 전 보도국장의 파면과 길환영 사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길 사장은 유가족들이 청와대로 향하자 사과했고, 김 전 보도국장은 사퇴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길 사장이 보도에 사사건건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김 전 보도국장의 폭로가 이어지자 길 사장이 보도에 개입한 구체적인 사례와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자들과 PD들, KBS 양대 노조가 모두 길 사장을 비판하며 제작거부와 파업에 동참했고, 버티던 길 사장은 결국 해임되고 만다.

시작은 ‘막말’이었지만 이번 사건을 보도국장의 막말로 시작된 우연한 ‘나비효과’로 보는 것은 큰 오산이다. 유가족들이 분노하고, 여론이 KBS로부터 등을 돌린 데에는 ‘보도’ 문제가 있다. KBS는 세월호 참사 초기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며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실제 사고 현장에 투입된 인원은 소수였고, 이에 현장에 있던 한 실종자 가족이 ‘대대적 수색작업’ 소식을 전하는 앵커에게 쌍욕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 외에도 ‘전원 구조’와 같이 정부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오보는 이어졌고, ‘시신이 뒤엉켜 있다’는 자극적인 오보도 서슴지 않았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발언은 쌓여있던 불신이 터져 나오는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이다.

다른 언론들이 해경이나 정부의 무능을 짚을 때도 KBS는 선원들을 비판하고, ‘구원파’ 타령이나 하는 보도를 연달아 내보냈다. 박 대통령이 지난 4월 17일 진도를 방문했을 때 실종자 가족들이 박 대통령에게 항의를 했지만 KBS 뉴스에는 항의의 목소리 대신 박 대통령의 단호한 지시와 가족들이 박수치는 모습만 나왔다.

그리고 이런 보도에는 청와대 바라기 노릇을 하기 위한 윗선의 보도개입이 있었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길환영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며 길 사장이 보도에 개입한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길 사장은 해경 비판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해경에 대한 비판이 나와 있던 큐시트는 이후 대폭 수정됐다. 그리고 김 전 보도국장은 길 사장의 배후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목했다.


김 전 국장은 “대통령 관련 뉴스는 러닝타임 20분 내로 소화하라는 원칙이 있었다”며 “(박근혜 대통령 해외) 순방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 이른바 꼭지 늘리기 고민”이라고 길 사장의 보도개입을 폭로했다. 국정원 사건 보도를 뉴스 뒤로 빼라고 했으며, 윤창중 성추행 사건도 중요하게 다루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기자와 PD들도 폭로에 동참했고, 길 사장이 보도와 제작에 개입한 사례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중견 PD인 장영주 PD는 사내 인트라넷에 길 사장이 토론 프로그램 아이템과 MC 선정에까지 개입했다는 글을 남겼다.

‘협조 요청’이라 쓰고 ‘보도개입’이라 읽는다

길환영 사장의 보도개입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유가족들이 KBS 앞에서 아무리 길환영 사장의 이름을 외쳐도 나오지 않던 그가, 유가족들이 청와대로 향하자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KBS 보도에 불만이 있거나 사장을 만나고 싶으면 KBS가 아니라 청와대로 가면 된다.

KBS 사태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언론관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길 사장의 사과 이후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만나 KBS 사태가 커지자 KBS에 ‘부탁’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출석해 보도개입 논란에 대해 “정확한 보도를 해 달라 협조요청을 했다”고 말한다. 청와대가 공영방송 보도에 개입한 사실을 총리가 확인해준 꼴이다. 야당 의원의 항의에 “그런 요청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한다. 박근혜 정부가 언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와대의 ‘협조 요청’과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언론사가 몇이나 될까? 권력자가 하는 부탁과 요청은 압력과 협박이다.

청와대가 보도는 물론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터져 나왔다. 길 사장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후임으로 백운기 전 시사제작국장을 임명했는데, 그가 임명 하루 전 청와대를 다녀왔다는 차량기록부가 KBS노조에 의해 공개된 것이다. 백 국장이 이정현 홍보수석과 친분이 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길 사장이 수습책을 내놓을 때마다 오히려 사태는 걷잡을수 없이 커져만 갔고, KBS는 ‘청영방송’임을 계속 인증했다.



길 사장은 끝났지만 KBS의 싸움은 이제부터

길 사장은 결국 해임됐다. 이에 따라 KBS 양대노조는 파업을 접었다. 하지만 파업은 ‘잠정적 중단’일 뿐이다. 현장으로 복귀한 언론인들은 이제 파업투쟁이 아닌 보도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KBS가 과연 공정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은 고무적이다. <추적60분>은 대학 등록금 문제와 사학비리를 다루며 박 대통령의 반값등록금 공약 미이행 문제, 그리고 사학과 결탁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을 저격했다. 시사 다큐를 ‘생생 정보통’ 정도로 만들던 관행에서 벗어나 정부를 직접 겨냥한 날카로운 보도를 선보인 것이다. <추적60분>과 같은 보도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지, 그리고 뉴스에서도 이런 보도가 나올 수 있을지가 KBS의 바로미터다.

또 하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다. 지금과 같이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 7:4(여당 7, 야당4) 이사회는 또 다른 길환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은 이상 KBS는 ‘공영방송’으로 존재하기 힘들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은 이 공약을 지킬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박 대통령은 8일 이정현 홍보수석의 후임으로 YTN 정치부장과 보도국장을 역임할 당시 ‘여당 편향 보도’로 논란을 일으킨 윤두현 디지털YTN 사장을 임명했다. 박 대통령이 공약을 지킬 생각이 없다면 KBS 구성원들이 해야 한다. 길 사장을 날린 것처럼, 여론과 손을 잡고 KBS를 공영방송으로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