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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감시자 아닌 ‘플레이어’로 뛰는 조중동 이데올로그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에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이조 5백 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일제 때 조선 총독부 관리가 한 말도, 친일파가 한 말도 아니다. 대한민국 총리후보자가 남긴 말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이 발언으로 인해 총리가 될 수 없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철옹성 같던 지지율은 30%대로 주저앉았다.

문창극, 그는 총리 후보자이기 전에 대한민국 대표 보수언론인 중앙일보의 주필이자 대기자였다. 그를 낙마하게 만든 건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등 편향된 역사관이었지만, 편향된 언론인, 아니 이데올로그로서의 그의 모습이 드러나는 다른 발언들도 즐비하다. 문창극의 중앙일보 대기자 시절 칼럼들은 감시자가 아니라 플레이어로 뛰는 ‘보수 이데올로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창극, 언론인인가 한나라당-새누리당 싱크탱크인가

문창극은 지난 대선 직후인 2012년 12월 25일 <하늘의 평화>라는 칼럼을 썼다. 그는 50대가 90%에 가까운 투표참여율로 박 대통령을 찍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며 “민주주의에서 한 표는 똑같은 효력을 갖고 있으나 표의 값이 같다고 표의 무게도 같을까. 이 나라 현대사를 몸으로 체험하고, 인생 50년 역정을 견뎌온 사람의 한 표와 지금 겨우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 사람의 한 표 무게가 같을 수 있을까”라고 말한다. 특정 세대, 아니 특정 후보를 찍은 특정 세대의 표의 가치가 다른 세대의 그것보다 더 높다는 주장을 펼치던 그는 이어 “역사의 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베일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나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그(신)는 베일을 뚫고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박근혜 당선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지만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2011년 5월 31일 칼럼에서 “그녀는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자세히 설명하지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지도 않는다”며 “자유인인 지금도 이럴진대 만약 실제 권력의 자리에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국민의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녀 스스로가 휘장 속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2009년 11월 11일 세종시 문제로 친이와 친박의 갈등이 벌어지자 “원칙이니 신뢰니 하는 말은 수사학처럼 들린다. 선거에 나설 사람과 선거에 다시 나서지 않을 사람 중 누구 말이 더 믿을 만한 것일까”라고 비판한다. 그러던 문창극은 왜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역사의 신’ 운운하며 박 대통령을 반긴 것일까.


그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즉 한국의 보수세력의 집권을 위해 힘쓴 ‘이데올로그’이자 전략가였다. 노무현 정부 말기 그의 관심사는 ‘정권교체’다. 문창극은 2007년 7월 10일 <권력의 비늘을 떼라>는 칼럼에서 이명박-박근혜의 싸움을 비판하며 “또다시 좌파에게 정권을 맡겨서는 나라에 미래가 없다. 두 사람도 그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같은 글에서 “외국의 예를 많이 들지만,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어머니의 정치’”라며 “자녀를 키우고 집안 살림을 꾸려본 여자들이, 나라살림도 남자보다 더 섬세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박 후보는 이런 경험이 있는가”라며 박근혜 당시 후보의 약점까지 끄집어낸다.

문창극은 2006년 5월 30일 지방선거 직후 쓴 글에서 “뜻밖의 인기는 그 당을 망치게 만든다”며 “한나라당이 믿을 만하고 좋아서가 아니라 이(노무현) 정권에 너무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방선거 승리로 고취된 한나라당에게 자만하지 말라는 충고까지 던진 것이다.

문창극은 한나라당이 외치던 ‘잃어버린 10년’의 전도사이기도 했다. 2007년 5월 29일자 문창극 칼럼의 제목은 <잃어버린 10년>이다. 그는 “한국도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시절이었다. YS 말기의 국가부도 사태를 시작으로 북한에 퍼주기와 권력부패가 심했던 DJ 시대, 성장에는 눈을 감고 균형과 평등으로 4년을 허송한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모든 분야가 제자리걸음이었다. 그 피해는 힘없는 서민, 갓 졸업한 젊은이 등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문창극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언론사 기자인지 한나라당 싱크탱크인지 헷갈린다.

문창극 옹호한 ‘동료’ 이데올로그들

문창극은 총리 후보자가 되어 난타 당했지만 그는 외롭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를 방어한 동료 이데올로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의 김순덕 논설실장은 6월 23일 <‘광우병 선동’ 뺨치는 KBS 문창극 보도>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당시 PD수첩의 보도와 KBS의 문창극 발언을 비교한다. “불공정한 보도로 국기를 흔들고 멀쩡한 사람도 친일파로 만드는 방송사라면 정상일 수 없다”며 이번 사태를 ‘문창극 사태’가 아니라 ‘KBS 사태’로 규정한다.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은 6월 24일 <文총리 지명, 正道로 풀어야>라는 칼럼에서 문 후보자가 사퇴해야 한다는 요구를 ‘좌파 매카시즘’과 ‘내용 모르는 일반인들의 포퓰리즘’으로 규정한다.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함석헌 전쟁도 ‘악마의 편집’만 있으면 친일파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며 "악마의 편집도 무섭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런 악마의 편집이 먹혀들어가는 현실“이라고 개탄한다.

문창극이 몸 담았던 중앙일보의 김진 논설위원은 문창극의 발언 대신 문창극 청문회의 위원장인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뇌물비리 전과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위원은 6월 18일 쓴 칼럼 <뇌물 전과자가 청문회 주재하나>에서 “국민은 중대 뇌물비리 전력자가 총리 후보를 호통 치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한다”며 “문창극 후보자의 의식과 과거를 철저히 검증하라는 것은 국민의 신성한 명령”이라고 말한다. 김진 위원은 왜 ‘식민지배 하나님의 뜻’ 같은 발언을 한 총리 후보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까? 그런 말을 한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에 나오는 걸 국민들이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걸까?

중앙일보 김진 ‘박정희, 천상에서 인혁당 8인과 막걸리 마실 것’

조선일보 김대중, ‘종북 설치니 이념 투표 하라’

문창극을 옹호한 이들이 어떤 생각을 지녔는지 살펴보자. 중앙일보의 김진 논설위원은 지난 대선 국면에서 박근혜 캠프의 책사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2011년 6월 13일자 칼럼 <천상의 박정희, 지상의 박지만>에서 “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박정희는 천상(天上)에서 아들을 지켰다”며 “그 아들은 지금 53세가 되었고 그의 누나는 차기 대통령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다. 남매는 다시 세상의 중심에 선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아들이 아버지를 지켜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니 박지만과 서향희가 몸조심해야한다는 의미다.

김진 위원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대두되던 2012년 9월에는 <박정희 독재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을 쓴다. 이 글에서 김 위원은 “박정희는 천상(天上)에서 인혁당 8인에게 사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막걸리를 마시며 조국을 얘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 내림이라도 받은 모양이다. 김 위원은 김재규가 ‘발기부전’ 때문에 박정희를 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한 적도 있다.


김진 위원의 농담인지 진심인지 모를 주장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김 위원은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며 “국민이 3일만 버티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전쟁 선동을 하기도 했고, 일본이 미국에게 원자폭탄 투하를 당한 것을 ‘신의 징벌’이라고 말했다가 비난을 받자 사과하기도 했다. 김진 위원은 각종 방송 프로그램의 ‘대표 논객’으로 등장하며 보수의 이데올로그를 자처한다.

조선일보 논설위원들은 더 노골적이다. 조선일보의 논설과 사설은 한나라당-새누리당 정권에게는 일종의 ‘지침’과 같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대중 주필이 있다. 실제로 그의 칼럼 중 많은 내용을 ‘대통령에게 드리는 말’ 등이 차지하고 있다. 김대중 주필이 1999년 7월 31일자에 쓴 <이회창론>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에 행동지침을 제시한 것이고, 이 총재는 그대로 실행했다. 그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도 CEO 리더십을 지닌 리더를 뽑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냥 대놓고 이명박을 뽑으라고 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김 주필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는 “유권자는 이념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친북(親北)·종북(從北)이 공공연하게 활동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나라’의 존재”라며 노골적으로 새누리당을 뽑으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김순덕 “천치 대학생들이 트위터나 날리며 청춘 보낸다”

김대중 주필과 김진 위원이 ‘잃어버린 10년’ ‘김대중‧노무현 비판’ ‘보수정권 옹호’ 등 거대담론의 이데올로그라면, 동아일보의 김순덕 논설실장은 ‘각론’에 대해 고민하는 이데올로그다. 김순덕 논설실장의 활약이 돋보인 국면은 2008년 광우병 사태 때였다. 김 실장은 “정권교체를 원하는 세력에게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때맞춰 보내준 선물일지 모른다”고 밥상을 지키기 위한 국민들의 싸움을 노무현과 이명박 간의 대결로 만들어버린다. PD수첩이 국민들을 속였다며 엄기영 MBC 사장을 일컬어 “기자이길 포기한 연명술이 역겹다”는 독설을 날리기도 한다.

김 실장은 반값등록금 반대에도 앞장섰다. 김 실장은 반값등록금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을 향해 “‘천치 대학생’들은 지금의 ‘반값 등록금’이 미래 자신들의 연금을 당겨쓰는 건 줄도 모르고 트위터나 날리면서 청춘을 보내고 있다” “나랏돈을 쓰는 유럽대학생들과는 연애하지 말라더라” “미국의 개입으로 적화통일에 실패했다고 통탄하는 세력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참여하고 있다” “반값 반값 하다간 국민소득도 반값될까 우려된다” 등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보수 세력 ‘플레이어’들이 '정치중립‘ 운운하는 이중성

이들 외에도 보수진영에는 수많은 이데올로그들이 있다. 언론인과 교수, 지식인 등의 탈을 썼지만 사실 특정세력의 이해관계를 위해 복무하며 종편이나 지상파 방송에 나와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이들. 이들은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며 그 방송의 시청자들에게 나름의 ‘논리’를 제공한다.

이들이 하는 행동을 일컬어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대부분의 보수 이데올로그들이 교사와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에 대해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며 눈을 부라리고, 시민과 노동자들이 집회를 할 때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열변을 토한다는 것이다. 본인들이 쓰는 글들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는 것일까?

언론사 주필에서 총리 후보자가 된 문창극의 행보, 그리고 그가 검증 앞에서 무너진 과정은 곧 조중동 이데올로그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조중동 이데올로그들이 문창극 낙마에 ‘발끈’한 이유도 본인들도 언젠가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