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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국가권력이 협력하면? ‘감시사회’ 온다

조본좌 2014. 10. 19. 20:39
기업과 국가권력이 협력하면? ‘감시사회’ 온다
[긴급토론회] ‘사이버정치사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시민이 국가기관 감시‧통제해야”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폭로 이후 다음카카오가 난타를 당하고 있다. 수사기관의 요구에 따라 개인정보를 넘겼고, 이 과정에서 당사자인 정진우 부대표는 물론 정 부대표와 같은 카카오톡 방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정보가 같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가 영장 집행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하지만 영장도 필요 없는, 기업과 국가기관이 상시적으로 협력하는 체제가 구축되면 어떻게 될까? 다음카카오가 가지고 있는 개인정보와 대화들을 영장 집행 등 법적인 절차 없이 수사기관들이 볼 수 있다면? 이번 사이버검열 논란에서 ‘기업 감시사회’의 가능성을 읽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강정수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15일 정동 프란치스크 교육회관에서 열린 ‘사이버 정치사찰 어디까지 왔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긴급토론회에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기업이 개인들의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으니 국가가 개인을 감시하지 않아도 기업하고만 협력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구글과 야후, 유투브, 핫메일 등이 NSA와 협력했다. 영장도 필요 없이 통째로 개인정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사실 이번 사태를 보며 조금은 안도했다”고 밝혔다. 강 연구원은 “수사기관이 팩스로 영장을 보내고 이메일을 감시하는 등 한국 수사기관의 방식이 매우 전통적이기 때문”이라며 “아직 한국에서는 기업에 의한 감시사회 가능성이 전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 15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사이버 정치사찰, 어디까지 왔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윤호 기자
 

페이스북은 46만 쌍의 커플 정보를 모으고, 이들이 싱글에서 연애관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패턴에 대해 조사했다. 이 패턴을 통해 사로 사귀기 전인 두 명의 사람이 연애관계로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예측도 가능하다. 물론 이는 감시와 사찰이 아니라 광고효과를 높이기 위한 시도다.

아밋 싱할 구글 검색팀장은 “다음 질문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알아서 답변을 주는” 검색엔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거대한 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행위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은 A라는 물건을 산 사람이 다음 어떤 물건을 살지 예측하고 고객이 주문하기 전에 미리 물건을 택배로 보낸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이 이렇게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패턴을 만들어내는 목적은 기업으로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보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강정수 연구원은 “기업의 경제활동을 목표로 만들어진 기술이 국가감시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아직 그 단계가 아니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며 “시민들이 모르는 사이 국가와 기업이 협력해버리면 파괴적인 감시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다. 투명한 정보관리체계를 만들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법‧제도가 국가기관에 의한 사이버감시를 용이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왔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영장 발부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서버에 메시지가 저장되는 바로 그 순간에 개입하면 감청이고 서버에 저장된 다음 1초라도 지나서 개입하면 압수수색”이라며 “기술적으로는 이 두 가지가 구별이 가능할지라도 법‧제도적으로 구별하는 것이 맞느냐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감청은 영장발부 요건이 엄격한데 압수수색은 요건이 완화돼 있다. 감청과 압수수색의 구별로 인해 수사기관이 메시지나 이메일 압수수색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압수수색영장도 감청 영장에 준하는 엄격한 절차를 거쳐 발부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호중 교수는 또한 수사기관이 개인정보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참여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진우 부대표는 자신의 카카오톡이 압수수색 당했다는 사실을 한참 동안이나 모르고 있었다.

이호중 교수는 “수사기관이 메신저와 이메일 내용 등을 가져간 이후 당사자와 연락해서 절차에 참여하도록 하고, 당사자가 참여한 상태에서 하나하나 열어보면서 범죄와 관련없는 내용은 다 지워야한다”며 “수사기관이 정보를 남용할 가능성을 통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정진우 부대표 역시 “국가기관이 시민을 감시하고 통제할 것이 아니라 시민이 국가기관을 감시‧통제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긴급토론회는 민변 사이버공안탄압법률대응팀, 민주노총 법률원,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인권단체연석회의, 진보네트워크 등이 주최했다. 이들 단체는 토론회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치사찰과 국민감시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이버 사찰 국민대책기구’ 결성을 제안하며, 실질적 문제해결을 위해 더 큰 힘을 모아 행동할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