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훈련병 아버지가 ‘설득해줘 고맙다’고 하더라”
“사망한 훈련병 아버지가 ‘설득해줘 고맙다’고 하더라” |
[인터뷰] 김현정 ‘전’ CBS 뉴스쇼 앵커 “비우던 10년, 이제 채우는 작업…급속충전 할 수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CBS의 김현정 PD는 강산도 변할 시간동안 CBS 시사프로그램을 지켜왔다. <이슈와 사람> PD 시절부터 <뉴스쇼> 진행 겸 PD로 10년을 살아 온 김현정 PD가 지난주를 마지막으로 진행자 마이크를 내려놓고 고향인 음악방송으로 돌아갔다. 김현정 PD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10년 사귄 연인과 헤어지는 기분”이라고 밝혔다. 10년 사귄 연인과 헤어져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미디어오늘은 김현정 PD가 새로운 연인을 만난 11월 10일 그를 찾아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김 PD는 ‘방전’을 <뉴스쇼>와의 이별 이유로 꼽았다. 김현정 PD는 <뉴스쇼> 진행과 PD를 병행하면서 7년 동안 새벽 4시 반에 기상했다. 김 PD는 “10년 내내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비우기만 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누군가는 인터뷰하느라 정신을 계속 쏟는데 왜 비우는 느낌을 받았냐고 하더라. 하지만 하루 종일 뉴스만 보는 삶에 매어 있어 다른 것들을 신경 쓰지 못했고 그래서 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PD는 “방송은 장기전이다. 배터리가 다 닳기 전에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충전해야 멀리 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갑자기 결정한 것은 아니고 그 전에도 의사를 내비쳤다. (충전할)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의사였다”고 밝혔다. <뉴스쇼>는 CBS 프로그램 중에서도 노동 강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김현정 PD는 지난 4월 ‘한국PD대상 올해의 PD상’ 수상 때 ‘노동 강도가 엄청난 프로그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PD 4명에 작가 2 명, 그리고 기자수첩 담당하는 기자 2명이 제작진의 전부다. 김현정 PD는 <뉴스쇼>가 많지 않은 인원으로 제작을 이어올 수 있던 원인으로 ‘근성’을 꼽았다. 김 PD는 “제작진들이 뉴스쇼에 있는 동안 자신을 불태우고 나간다. 그래서인지 오래 있지는 못하고 길어야 2년 있다 간다”며 “오늘 알아야할 모든 뉴스를 우리가 정리해줘야 한다는 생각, 7시 반 방송 시작 전에 모든 뉴스를 담아내야 한다는 근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 중에서도 진행자와 PD 역할을 함께 맡은 김현정 PD의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김 PD는 “진행 마친 후 팟캐스트 올리는 일, 제목 뽑고 포탈에 보내는 일 등까지 PD들과 같이 했다. 그래서 쉬고 싶다고 하자 회사에서는 ‘힘들면 진행만 하라’며 엄청나게 설득했다”며 “하지만 내 이름 걸고 하는 프로그램에서 그 프로그램을 완전히 장악하지 않고서는 진행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PD는 “진행만 해봤던 적도 있다. 1-2주 동안 진행만 하고 12시에 퇴근했는데 못 참겠더라”며 “몸은 쉬는데 프로그램에 전체적으로 참여하는 느낌이 들지 않아 다시 원 상태로 복귀했다. 나쁘게 말하면 ‘집착’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김 PD는 진행을 맡으면서 부담은 많았지만 장점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전문성을 갖춘 시사프로그램 앵커와 다르다는 약점이 장점이 됐다“는 것. 김 PD는 “나는 정치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시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아니다”며 “감성적인 평범한 사람으로, 음악PD 출신이다. 그런 점들이 청취자들에게는 색다른 시사, 눈높이 시사로 느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정 PD는 <뉴스쇼>에서 하차한다는 뜻을 밝힌 이후 많은 문자와 연락을 받았다. 김 PD는 “여러 문자 중 공감력 있는 앵커였다고 말해주신 분이 가장 고마웠다”며 “박식한 앵커가 아니라 공감력 있는 사람이란 말이 좋았다”고 밝혔다. 김현정 PD는 지난 금요일 고별방송에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했다. 김 PD에게 <뉴스쇼>는 그러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김현정 PD는 “‘충분했다’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언론환경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김 PD는 “강한 자, 권력을 향한 마이크는 많이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소외된 이들을 향한 마이크는 별로 없다”며 “그들을 향한 마이크가 되고, 마음이 안 열려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 내는 역할을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뉴스쇼>는 지난 2011년 군 훈련소에서 급성 뇌수막염에 걸렸지만 타이레놀만 지급 받으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훈련병의 아버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김현정 PD는 그 인터뷰를 가장 뉴스쇼다운 인터뷰이자,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 꼽았다. 김 PD는 “군 의료사고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아무리 기자가 리포트를 하고 교수나 전문가들이 나와 이성적으로 분석한다 해도 변하지 않았다”며 “그보다는 감성적으로 사람 마음을 움직여야 상황이 변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사망한 훈련병 아버지를 인터뷰해야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섭외는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나’, ‘해봤자 뭐가 달라지나’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뉴스쇼> 제작진은 여러 차례 설득했고 일주일 만에 아버지가 인터뷰에 응했다. 김 PD는 “이 인터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고 이슈가 되어 군에서 의료체계를 전면 검토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며 “섭외를 하는 과정이나 문제의식, 사회변화로 이어진 점, 사람 마음을 움직이려 했던 점 등 가장 뉴스쇼다운 인터뷰였다”고 강조했다. 김 PD는 “아버님이 인터뷰를 마치고 몇 번에 걸쳐 ‘나 설득해줘서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비슷한 일을 당한 가족들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정 PD가 강조하는 <뉴스쇼>는 이처럼 당사자의 ‘날 것 그대로의’ 인터뷰다. 김 PD는 “2-3차 해석은 어디든지 있고, 해석만 하려면 굳이 우리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듣고 싶은 목소리를 날 것 그대로 전달하고 청취자들이 듣고 판단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날 것 그대로’를 전하다보면 돌발 상황도 있다. 탤런트 최불암씨를 인터뷰하는 중에 최진실 씨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떴고, 그 때부터 인터뷰 내용이 최진실씨에 대한 인터뷰로 바뀌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던 ‘유민아빠’ 김영오씨 주치의를 인터뷰했을 때도 그랬다. 인터뷰 와중에 주치의가 ‘지금 단식 중단하고 병원에 간다’고 말했다. 김 PD는 “안전하게 모시고 가시라”며 인터뷰를 바로 중단했다. 김현정 PD는 10일부터 <뉴스쇼> 대신 CBS 음악FM <12시에 만납시다 김필원입니다>를 맡았다. 김 PD의 말을 빌리자면 이제 ‘채우는 작업’이다. 옆을 좀 보면서 뉴스 외의 다른 삶도 살아야겠다는 뜻이다. 김 PD는 “아직 음악방송에 적응이 안 됐다. 오늘 7시에 일어나도 되는데 4시 반에 일어났다”고 말하며 웃었다.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목 관리’를 꼽았다. “예전에는 감기 걸릴까봐 도라지에 배즙에 이것저것 들이켰는데 이제 감기 걸려도 되니 좋다”는 것. 김 PD의 충전은 어쩌면 ‘급속충전’일지도 모르겠다. 김 PD는 “재충전하고 돌아오겠다니 어떤 분이 급속 충전하라고 하더라”며 “방송 그만두겠다고 하자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 몰랐다. 실시간 검색어 1위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문자와 트위터로 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김 PD는 “오래 떠나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두고 나서 ‘대중들이 이렇게 아쉬워하는데 ‘싫어 나 편하게 있을래’라고만 말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많은 분들이 아쉬워하면 어디서든 다시 (방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