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E급 트위터 소통, 박원순은 어디로 갔나
LTE급 트위터 소통, 박원순은 어디로 갔나
시민들이 만든 인권헌장 뒤집은 서울시…“박원순 시장의 시정철학 무색해졌다”
서 울시가 ‘서울시민인권헌장’에 대해 선포 유보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고, 성소수자단체들은 서울시청을 점거하고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소통을 강조했던 박원순 시장은 아직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박 시장이 그간 강조해 왔던 ‘소통’ ‘시민참여’ 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시장 임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소통을 강조해왔고 ‘소통의 리더’라고 불렸다.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경청 : 대한민국 소통 프로젝트>라는 책까지 출간했다. 그의 소통은 SNS에서 가장 큰 빛을 발휘했다. 박원순 시장의 SNS 계정에는 하루에도 수 백 개의 댓글이 달리고 박 시장은 저녁 늦게까지 이에 답한다.
박 시장은 SNS를 통해 민원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예컨대 한 트위터 이용자가 “광화문광장 분수대에서 클래식 말고 국악이 흘러나왔으면 좋겠어요”라는 글을 보내면, 박 시장이 “좋은 생각”이라며 실행에 옮기는 식이다. SNS 이용자들은 박 시장의 계정에 자유롭게 민원을 넣고, 박 시장은 이에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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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시장 트위터 갈무리 | ||
이러한 박원순 식 소통이 이번 인권헌장 사태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인권헌장이 무산된 것을 두고도 수많은 트위터리안들이 박원순 시장에게 맨션을 보냈다. 하지만 박 시장은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는 “만장일치 합의가 안 되면 인권헌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 외에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 6일부터 성소수자 단체들이 서울시청을 점거한 채 면담을 요구하고 있으나 박 시장은 묵묵부답이다. 서울시는 오히려 대자보 철거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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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헌장 선포 연기 이후 박원순 시장에게 항의 맨션을 보내는 트위터 이용자들. | ||
이번 사태는 박 시장이 강조하던 ‘시민참여’ 정신에도 어긋나 보인다. 인권헌장은 각계각층의 시민위원 150명과 전문위원 30명으로 구성된 서울시 시민위원회가 만들었다. 인권헌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위원회 회의 6번, 분야별 간담회 9번, 권역별 토론회 2번, 공청회 1번 등 수많은 합의와 논의 과정이 있었다. 심지어 동성애반대단체들만 모아놓은 간담회까지 거쳤다.
이러한 회의를 거쳐 시민들은 45개 조항에 합의했지만 동성애 관련 조항 등 5개 조항에서는 이견 차가 있었다. 의결절차에 대해 정해진 바가 없었기에 시민위원회는 논의에 따라 5개 조항에 대한 의결을 다수결로 결정하기로 했으나 서울시는 6차 회의 때 만장일치가 아니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의결절차에 돌입하자 서울시 공무원들이 의결절차를 방해하기까지 했다. 또한 위원들이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인권헌장을 의결했으나 서울시는 다음 날 만장일치 합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권헌장 채택을 거부했다.
시민들이 참여해 결정한 인권헌장을 서울시가 나서서 뒤집어버리는 행동이 ‘시민이 시장이다’는 모토를 내세웠던 박원순 시장의 모습과 어울리는 것일까. 시민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인권헌장이 만들어진 과정 자체가 박원순 시장이 추구하는 시정철학과 가장 부합하는 시민참여 모델”이라며 “3월 준비 모임 때부터 수개 월 간 논의를 거쳤다. 국가정책이든 지자체정책이든 이 정도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 사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런 인권헌장을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안 받겠다는 태도는 박원순 시장이 추구해온 시정철학 자체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헌장을 받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박원순 시장이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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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홍보 포스터 | ||
시민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박 시장이 스스로 내세웠던 시민참여를 거스르고 있으며, 이 사태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박 시장 입장에서 당장 입장을 밝히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인권헌장 사태 이전부터 박원순 식 소통과 시민참여에 문제가 많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노동당 김상철 사무처장은 경전철 사업을 예로 들었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해 7월 경전철 사업 계획이 나오자 시민단체의 비판이 거셌다. 박 시장은 시민사회랑 끝장토론을 하겠다고 했지만 끝장토론은 진행이 안 됐다”며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토론이 효용이 있는데 서울시는 ‘시민사회가 이해를 잘 못했다’ ‘공무원들이 설명을 잘 하면 이해할 것이다’는 입장을 취했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마을 공동체 사업에 대한 비판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지난 8월 서울풀뿌리시민사회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박원순 서울시정과 거버넌스’ 토론회에서도 박원순식 거버넌스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시민의 행정 참여라는 이유로 서울시의 위원회가 50-60개 늘어났으나 회의내용이 오락가락하거나 위원회 결정과 실제 행정의 방향이 정반대로 가는 등 문제가 많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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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무처장은 “위원회에 참여하는 민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서 ‘뭐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권한이 이양되는 것이 아니기에 스펀지처럼 이야기들을 흡수할 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라며 “의견을 듣는 데 주안점을 두기는 했는데 실제 행정 변화로 이어지는지 불투명하다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