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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그래가 노조 만드는 미생 시즌2가 나온다면

조본좌 2015. 1. 6. 16:44
장그래가 노조 만드는 미생 시즌2가 나온다면
[2015 전망] 가상소설… 내 월급 빼고 다 올라, 해고도 쉽게 비정규직도 쉽게, 따뜻하지 않을 2015년

다가오는 2015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미디어오늘이 2015년 12월의 시점에서 2015년에 벌어진 일들, 아니 ‘벌어질 것 같은’ 일들을 가상으로 구성해봤다. <편집자주>

어느덧 2015년이 저물어간다. 지난해 이 맘 때 쯤 한해를 마무리하며 ‘내년엔 그래도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해 유독 불행한 사건사고가 많았던 탓이다. 하지만 2015년을 돌아보니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퇴근길에 버스에 올라탔다. 교통카드를 찍었는데 돈이 얼마 안 남아 있다. 버스, 지하철 요금이 너무 많이 올라서 대중교통 이용도 부담스럽다. 버스, 지하철 가릴 것 없이 25%나 올랐다. 1050원이던 요금이 1300원이 됐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 것 같다. 올해 큰 선거가 없어서 나 같은 서민유권자를 농락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대중교통 요금이 하도 오르다보니, 그리고 언제 또 오를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차라리 차를 살까 고민도 해봤다. 근데 자동차세가 50%나 오르고, 고속도로 통행료도 4.9%나 올라서 아직도 고민 중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오를 기세다. 주민세는 4620원에서 7천 원으로 올랐는데 내년에 더 오른다. 상하수도요금에 종량제 쓰레기봉투 가격까지 별 게 다 올랐다.

담배 값은 2000원이나 올랐다. 아니, 담배 세금이 2000원 오른 거지. 나도 올해 1월 1일부터 담배를 끊으려고 했는데 결국 못 끊었다. 대체 올 한 해 동안 세금을 얼마나 더 낸 건지…난 정말 성실한 납세자인 것 같다.

1월 초만 해도 의지를 가지고 금연패치에 금연 초에 이것저것 사봤는데 잘 안 됐다. 그래서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금연클리닉에 가봤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달랑 니코틴 패치 몇 개 주고, 별 도움 안 되는 상담 해주는 게 전부다. 효과 좋은 약이 있다곤 하는데 비싸서 엄두를 못 냈다. 담배 값 오르면서 세금 진짜 많이 냈는데, 정부는 분명 ‘국민 건강을 위해서’ 담배 값 올렸다고 했는데, 담배 끊는 걸 도와주는 용도의 세금은 별로 안 쓰는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 직장인들도 담배 끊는다고 그러더니 얼마 못 가서 다시 폈다. 돈은 정말 아깝다. 한 갑에 4500원이고 하루에 한 갑 정도 피니까 한 달에 13만 5000원을 쓴다. 내 월급이 200만 원 정도니 월급의 15분의 1을 담배 값에 쓰는 셈이다. 돈 아깝긴 한데 삶에 낙이 없으니 담배라도 펴야 한다. 그래서 못 끊었다. 

담배 값 오른다기에 처음엔 담배 회사 다니는 친구 놈한테 ‘너네 회사 수입 늘어나서 좋겠다’고 툴툴거렸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친구 놈은 회사에서 잘렸다. 친구 말로는 “담배 값이 올라가면서 회사 수익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다”는 이유란다. 친구가 그러더라. “세금 올린 건 정치인들인데 그걸 왜 내가 책임져야 되냐”고. 누굴 위한 담배 값 인상인지 모르겠다.

그 친구만 아니라 회사에서 잘리는 게 점점 일상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지나는데 여기저기서 플랜카드가 보인다. “정리해고 철회” “원직 복직”라고 적혀 있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면 저런 플랜카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해 정부가 ‘중규직’이니 ‘정규직 과보호’니 하더니 결국 올해 온갖 방법을 써서 해고도 쉽게, 비정규직도 쉽게 할 수 있는 법안들을 추진했다.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놔서 비정규직은 더 늘어났다. 여당은 휴일연장 근무해도 추가수당을 안 받아도 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목적이라는데 이미 연체동물 될 지경인데 뭘 더 유연화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하긴 저들은 지난해 ‘미생’이 인기드라마였을 때도 미생의 장그래를 대변하겠다며 비정규직을 4년 연장시켜주겠다고 했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2가 연재 중인데 아무래도 장그래가 노동조합을 만들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장그래가 뭘 원하는지 이해하려나.

한참 달리던 버스가 멈춰 섰다. 광화문 시내에서 집회를 하느라 그런 것 같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도로를 행진하고 있다. 1월부터 ‘총파업’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 12월까지 저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정부가 귀를 닫고 있어서 그런 걸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욕을 내뱉는다. “저놈들 때문에 맨날 길 막힌다.” 승객들도 다 짜증나는 얼굴이다. 이 버스 안 승객들 중 비정규직은 몇 명일까, 또 정규직은 몇 명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도로를 점거한 민주노총 시위대가 창문 옆으로 지나간다. 깃발 속에는 TV에서 자주 보던 정치인들의 얼굴이 보였다.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안 된다며 새로 생겨난 정당이었다. 아, 민주당이 아니고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야당 이름이 하도 많이 바뀌다보니 이제 이름도 헷갈린다. 아무튼 거기서 나온 사람들이 새정치민주연합 밖에 있던 사람들과 합쳐서 새로운 정당을 하나 만들었다. 그들이 자기네 정당 깃발을 흔들며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돌이켜보니 올해에도 선거가 하나 있긴 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의원 3명이 의원직을 상실한 탓이다. 재보선 선거는 4월에 열렸고, 재보선을 앞두고 두 정당 외의 신당이 창당됐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야권 연대니 통합이니 이런 이야기만 나왔고 무슨 정책이 있었는지 잘 기억에 남지 않는 걸 보니…

하지만 올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정치인은 신당 소속 정치인들도, 여야의 현역 정치인들도 아니었다. 자원외교에 많을 돈을 쓴 전직 대통령이 TV에 가장 많이 나왔다. 그는 자원외교에서 엄청난 돈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국정조사에 나왔다. 그는 야당 의원들의 질타에 “구름 같은 이야기” “모두 행복하자”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발언 하나하나가 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언론은 전직 대통령의 발언을 기사 제목으로 뽑아 검색어 장사를 해댔다.

자원외교 국정조사에는 그 말고 다른 대통령 두 명의 이름도 계속 나왔다.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은 물러난지 한참 지난, 이미 세상에 없는 대통령들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그 당시 자원외교도 문제가 많았다고 소리쳤다. 언론은 여당과 야당의 입장을 하나씩 넣어 기사를 만들었다. 여야는 서로 다른 숫자를 이야기하며 싸웠는데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2년 11월 UAE 원전 건설현장에서 방문해 모하메드 왕세자와 주변을 돌아보며 대화를 나누던 모습. 사진=이명박 전 대통령 페이스북.
 

집 앞에서 내려 오늘 술 한 잔하기로 한 친구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아,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해서 한 가지 바뀐 게 있다면 이 메신저 프로그램이다. 너도 나도 다 썼던 노란색 배경의 메신저는 이제 사람들이 잘 안 쓰게 됐다.

보안문제 때문이다. 작년에도 한참 시끄러웠는데 올해에도 감청 논란이 불거졌다. 하긴 수사기관이 영장 가지고 와서 들이대는데 메시지 기록 안 보여줄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여하튼 누구 잘못이냐를 떠나 노란색 메신저는 인기를 잃었고 다른 기업이 이 틈새를 공략해 외국에 서버를 둔 새로운 메신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은 얼른 그 메신저로 갈아탔다. 텔레그램은 이모티콘이 거의 없는 게 단점이었는데 이 메신저는 이모티콘도 다양해서 좋다.

약속장소로 걸어가다가 추워서 옷깃을 여몄다. 날씨가 추운 것도 있지만 마음이 추워서 더 춥게 느껴진다. 정부는 올해 초 경제 성장을 하겠다고, 여러 가지 경제정책과 대책들을 내놨지만 어찌된 일인지 계속 춥기만 하다. 내년 이맘때는 마음이라도 조금 따뜻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