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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도 ‘국정농단’도 말하지 말라는 새누리

조본좌 2015. 1. 10. 11:25

‘문고리’도 ‘국정농단’도 말하지 말라는 새누리

국회 운영위, 민정수석 불출석 등으로 정회…새누리, ‘김대중 정부’ 거론하며 물타기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었던 국회 운영위원회가 청와대의 불성실한 태도와 이에 대한 야당의 항의로 질의는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정회됐다.

9일 오전 청와대 문건유출 관련 현안보고를 위한 국회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문건유출로 심려를 끼쳐서 참으로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문건의 진위와 유출경로는 검찰 수사로 밝혀졌지만 대통령 비서실로서는 그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자성하고 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러한 일 재발하지 않도록 근무 기강을 철저하게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기춘 청와실장의 말과 달리 청와대는 자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듯했다. 청와대 비서실이 운영위에 제출한 13쪽 짜리 업무보고 중 조직 및 인원구성, 예산, 정책 설명 등 일반 업무현황이 11쪽을 차지했고, 마지막 두 페이지만 문건유출 사건 관련 내용이었다. 그나마 그 두 페이지도 공직기강 확립 등 후속조치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문건유출 의혹에 대한 해명이나 설명은 없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오늘 의사일정은 문건유출 현안보고이고, 마땅히 청와대 업무보고도 관련 현안에 대해 보고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오늘 배포한 업무현황을 보니 청와대 일반 업무현황에 불과하고 문건유출사건은 후속조치에 대해서만 나와 있다”며 “오늘 운영위를 열게 된 근본적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야당 의원들은 김영한 민정수석이 출석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질타했다. 야당은 한 경위에 대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회유 의혹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김영한 민정수석이 출석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김영한 민정수석은 국회에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를 통해 “대통령 비서실장이 당일 운영위 참석으로 부재중인 상황이므로 긴급을 요하는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고 전국의 민생안전 및 사건 상황 등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업무적 특성도 있어 부득이 참석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밝혔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며 민정수석의 출석을 요구했다. 김 의원은 “제보를 받은 것이 있다. 문건유츨 혐의자로 지목됐다 자살한 최 경위, 그리고 회유 및 협박을 받았다는 한 경위가 실제 청와대를 경호하는 서울경찰청 소속 백일단 소속원으로부터 회유를 받았다는 관련 내용을 제보받았다”며 “그렇기에 마땅히 민정수석이 나와서 질의에 답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언주 새정치연합 의원은 “청와대의 대응태도를 보니 비선실세 국정개입 사건에 대한 인식수준이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여러 회유의혹을 받고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의 불출석 사유가 말이 된다고 보나. 운영위 와 있으면 긴급한 상황에 대응을 못하나”라고 반문했다.

   
▲ 청와대 비서실이 제출한 업무보고서 일부.
 

청와대가 자료제출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김제남 의원은 “오늘 현안질의를 위해 청와대의 내부감찰 보고서 등 23건의 자료 제출 요구했다. 그런데도 단 한 건도 자료가 오지 않았고 이에 대한 해명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기춘 비서실장은 “오늘 아침에 의원실로 미흡하나마 제출했다고 보고 받았다. 늦어져서 죄송하다”고 답했다.

박완주 의원은 “민간인에게 유출도 하고 보고도 하는 자료를 국회의원이 요청했음에도 단 한건도 성실하게 제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민정수석이 출석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거나 비선실세 의혹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은 “사실 확인이 중요하지 민정수석이 나오냐 안 나오느냐에 대한 답은 나와 있다. 민정수석이 나와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국회의 관행을 깨자는 이야기고 사실확인에 대해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김영한 민정수석은 문건유출과 직접적 관련이 없고 의혹제기된 부분도 없다”고 단정 지었다.

최민희 의원은 “국회가 문고리권력의 호위무사가 되선 안 된다”며 “전례가 없는 일에 전례를 내세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이완구 위원장은 “문고리라는 표현은, 본인의 인격과 가족을 생각해서 삼가 달라”고 말했다.

이완구 위원장이 야당 의원들에게 ‘의사진행 발언’을 보장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완구 위원장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이장우 의원은 “위원장한테 불만이 있다. 의사진행 발언 시간을 한도 끝도 없이 주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김도읍 의원은 나아가 ‘국정농단’ ‘비선실세’라는 용어도 적절하지 않다며 김대중 정부 이야기까지 꺼냈다. 김 의원은 “농단이란 이익을 독차지한다는 뜻이다. 문건유출해서 이익을 독차지한 것이 누구냐. 농단이란 용어는 적절치 않다”며 “김대중 정부 때 (대통령의) 세 아들이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걸 농단이라 한다. 이런 농단사건에도 민정수석은 출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물타기 하지 마세요” “그 때는 다 구속시켰잖아요. 이번에도 구속시켜요 그럼” “자꾸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어” 등 야당 의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여야 간 고성이 오가면서 결국 운영위는 시작 50분 만에 정회됐다. 운영위는 11시 20분 다시 속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