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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CCTV 설치하면 아동학대 ‘땡’이라고?

조본좌 2015. 1. 20. 23:17

어린이집 CCTV 설치하면 아동학대 ‘땡’이라고?

보수언론, CCTV 의무화 반대 의원 비난…“CCTV 논란으로 아동학대 근절책 논의 사라져”

인천 연수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충격적인 아동 학대사건이 발생한 이후, 어린이집 폭행을 근절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이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CCTV 설치 의무화’를 외친다. 하지만 CCTV 의무화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경우 자칫 아동학대 근절이라는 본질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어린이집 아동학대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으면서 정부가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경찰청은 어린이집, 유치원 등을 대상으로 전수조사 및 피해 사례 수집을 하기로 했다. 폭행사건이 발생한 어린이집은 폐쇄됐으며 폭행한 보육교사 양모씨는 구속됐다.

여론은 ‘대안을 마련하라’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CCTV 설치 의무화’가 도마에 올랐다. 보건복지부는 사건이 발생한 지난 14일 “아동 폭력 근절 대책을 상반기에 마련하고, CCTV 설치 의무화를 적극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CCTV 설치는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며, 전국 어린이집 중 20%만이 CCTV가 설치되어 있다. 경기도는 2018년까지 도내 어린이집 200개에 CCTV를 설치하기로 했다.

몇몇 언론도 CCTV 설치 의무화를 강조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6일 사설에서 “정부가 어린이집 방마다 CCTV를 달든지 해서 부모들을 안심시킬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보육교사 프라이버시보다 어린이 인권이 백배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 인천 연수구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CCTV 화면. SBS 뉴스 갈무리
 

중앙일보도 같은 날 3면 기사에서 학부모들의 말을 빌려 “CCTV가 보육교사나 원장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면 네 살배기 아이가 증언하지 않는 이상 아동학대는 은폐될 수밖에 없다. 어린이집 안에 CCTV를 설치하는 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순 없어도 아동 학대를 막을 수 있는 단기적인 대책은 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도 덩달아 ‘CCTV 의무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16일 원내현안대책회의에서 “전국 모든 어린이집의 CCTV설치를 의무화하고 또 스마트폰으로 직접 CCTV에 접근해 부모는 늘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아이가 어떻게 뛰어 놀고 있는지 들어가 볼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까지 만들어야 한다”며 “CCTV가 설치돼 있는데도 폭행을 가하는 상황에서 CCTV가 없는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고 강조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18일 “CCTV의 선을 넘어서 IP CCTV, 집에서 엄마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통해서 볼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까지 가야만 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안심보육 당정 정책 간담회에서도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대책 중 하나로 ‘CCTV 설치 의무화’를 제시했다.

하지만 CCTV 설치 의무화는 이미 수년 간 국회에서 논의돼왔던 사안이다. 2005년 우윤근 새정치연합 의원, 2013년 박인숙, 홍지만 새누리당 의원과 안민석 새정치연합 의원 등이 어린이집 내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을 제출했으나 처리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언론은 CCTV 의무화법을 처리하지 못한 의원들까지 비난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지난 16일 기사에서 “보육계의 반발을 의식한 의원들이 제동을 걸어 (CCTV 의무화) 법안 자체가 폐기됐다”고 전했다. 조선비즈는 16일 기사에 서 새정치연합 김성주, 남인순 의원과 새누리당 신경림 의원을 ‘CCTV 설치 의무화 가로막은 국회의원 3명’으로 꼽았다. 조선일보는 이들의 출신을 거론하며 “간호사협회, 인권단체 출신 국회의원이 ‘가림막’ 역할을 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의원들의 CCTV 설치 의무화 반대가 비합리적인 우려였을까. 의원들의 반대 이유는 “CCTV를 통해 아동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번 연수구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역시 CCTV가 있는 곳에서 발생했다. CCTV가 아동학대의 예방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경림 새누리당 의원은 조선비즈의 보도에 대해 해명자료를 내 “CCTV 설치 목적 자체는 분명히 찬성하지만 CCTV만을 통해서 예방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며 “어린이집 아동학대 예방에 CCTV 설치가 얼마간 도움이 될 수 있을지언정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적 접근에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 17일자 중앙일보 1면
 

남인순 새정치연합 의원은 1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CCTV 의무화는 본질을 빗겨가는 논쟁이다. 이 이슈로 인해 아동학대를 어떻게 근절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 의원은 “CCTV 설치는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고 아동학대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보육환경에 대한 개선이 중요하다. 12시간 넘는 보육교사의 근무시간을 8시간으로 명확히 해야 하며, 현재 보육교사 1명이 맡는 아이들의 수도 너무 많다”며 “임금도 다른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에 비해 낮다. 보육교사가 자존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어린이를 대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남 의원은 또한 “현재 CCTV는 어린이집과 학부모 등 구성원의 동의하에 설치된다”며 “인권침해적 요소 등 국가가 의무화하는 문제에 대해선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