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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딜레마’ 빠진 여야, 이완구 미래는 여론에 달렸다

조본좌 2015. 2. 15. 10:10

‘이완구 딜레마’ 빠진 여야, 이완구 미래는 여론에 달렸다

이완구 인준안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치권, 남은 건 ‘여론전’ 시간 싸움

“16일에 본회의가 열리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를 보이콧하거나 들어가서 반대하거나 두 가지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어느 쪽인가요?”

“어느 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애매하면 우리도 애매한 거에요”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12일 오후 기자들과 가진 백 브리핑에서 새정치연합의 향후 대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고 되물었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 인준안 처리를 앞두고 새정치연합이 처한 딜레마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야는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 처리가 예정돼 있던 12일 본회의 일정을 16일로 미뤘다. 이날 새누리당은 인준안의 12일 본회의 처리를 주장하며 청문보고서를 야당의 참여 없이 처리했다. 이에 따라 본회의에 인준안이 부의됐으나 새정치민주연합의 보이콧으로 본회의는 무산됐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는 16일 연기에 합의했다.

시간은 미뤄졌으나 여야의 셈법은 복잡하다. 새정치연합의 공식 입장은 ‘자진 사퇴하라’이다. 새정치연합은 12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사퇴를 촉구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인사청문특위 소속 의원들은 새누리당의 청문보고서 ‘날치기’ 채택 이후 “이완구 후보자는 자진사퇴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사과와 용서를 구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밝혔다. ‘자진 사퇴’는 새정치연합 입장에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되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완구 후보자가 자진사퇴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야당의 ‘자진 사퇴’ 구호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결국 새정치연합은 16일 본회의에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다. 물리적으로 표결을 저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갓 당대표가 된 문재인 대표 입장에서 부담스럽다는 점을 고려하면 길은 두 가지 뿐이다. 본회의를 보이콧하거나 회의에 참여해서 반대표를 던지거나.

두 가지 선택지 앞에서 새정치연합은 딜레마에 빠진다. 둘 다 실제로 이완구 후보자를 낙마시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본회의를 아예 보이콧할 경우 사실상 새누리당의 단독처리를 방조한 셈이 된다. 또한 본회의에 참여해서 반대표를 던질 경우, 결과에 따라 말로만 이 후보자를 반대하다 결국 새누리당에 협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새정치연합 의원들 사이에서 찬성표가 나올 경우 역풍은 더 거셀 것이다. 충청지역 의원들이 변수다. 실제로 이해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26일 ‘충청투데이’가 개최한 정‧관계 대전‧세종‧충남 신년교례회 자리에서 “절대 (이완구 후보자) 반대를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12일 백브리핑에서 “나는 원래 (본회의에) 안 들어가는 게 맞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근데 안 들어가면 텅 빈 모습만 보여주고, 들어가서 반대 의견을 내면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며 김관영 새정치연합 의원이 지난해 12월 본회의 반대연설을 통해 예산안 부수법안을 부결시킨 사례를 들었다. 서 원내대변인은 “하지만 이런 생각이 아직은 소수다. 제일 좋은 방법은 스스로 사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딜레마 속에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13일 이완구 총리 후보자 인준에 관해 여야가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새정치연합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은 일종의 ‘퇴로’를 설정한 셈이다. 그러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당장 “유감”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설사 새누리당이 제안을 받는다 해도 여론조사 문항을 두고 이완구 후보자 인준이 ‘정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표의 ‘여론조사’ 제안은 고육지책에 가깝다.

새누리당도 딜레마다. 야당이 참여하지 않는 본회의에서 사실상 ‘날치기’로 처리할 경우 여론의 역풍이 만만치 않다. ‘합리적 보수’ ‘소통’ 이미지를 강조하며 당선된 유승민 원내대표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다.

최악은 단독 처리했는데 여당에서 ‘반란표’가 나와 부결되는 시나리오다. 총리 인준안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가 찬성해야 통과되며 따라서 재적과반수 148석을 넘겨야 한다. 새누리당 의석수는 현재 158석이며 이완구 후보자 본인과 국무위원, 구속 및 해외출장 의원을 제외하면 149~150명 정도의 참석이 예정된다. 3~4명만 반대표만 던지면 인준안은 부결된다. 이재오 의원은 단독처리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렇다고 야당의 주장을 받아 낙마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출신이라는 점과 충청권 민심도 고려해야하며, 박근혜 정부의 세 번째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켰다는 부담감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12일 본회의를 16일로 미룬 것은 여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16일 단독 처리하더라도 핑계가 생긴다. 최대한 야당의 협조를 구하려 했으나 어쩔 수 없다는 핑계다. 야당 입장에서도 인준안 통과에 대한 핑계가 생긴다. 최대한 막아보려 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다.

여야는 16일로 본회의를 미루며 동시에 시간을 벌었다. 이 시간동안 여야가 집중할 것은 여론전이다. 새정치연합은 문 대표의 ‘여론조사’ 제안 이전에도 계속 ‘여론의 추이’를 강조하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앞으로 추가 폭로를 이어가면서 주말 동안 이 후보자에 대한 비판적 여론 조성에 나설 가능성이 남아 있다.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은 12일 정론관에서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문재인 대표는 500만 충청인과 1000만 출향인을 향한 충청 홀대의 대못질을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문 대표와 새정치연합이 충청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 후보자에 반대한다는 논리였다. 지역감정을 건드리는 ‘여론전’ 조성에 나선 셈이다.

일단 여론은 이완구 후보자에게 불리하다. 한국갤럽이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 첫 날인 10일부터 12일까지 전국 성인 101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1%가 이 후보자가 총리 후보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답했다. 29%는 ‘적합하다’고 봤으며 30%는 아직 의견을 유보했다. 지난 1월 27-29일 조사에서 적합이 39%, 부적합이 20%, 의견유보가 41%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론이 청문회를 거치며 부정적 기류로 돌아섰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30% 가량은 의견을 유보하고 있다. 여야의 여론전이 이 유보 여론, 나아가 찬성과 반대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이완구 후보자의 미래는 이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