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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의 박상옥 회군, “이러니까 야당이 욕 먹지”

조본좌 2015. 4. 5. 09:27

새정치연합의 박상옥 회군, “이러니까 야당이 욕 먹지”

‘보이콧’ 외치다 결국 대법관 청문회 합의한 야당… “간 보기 했나, 진상규명 의지 있는지 의문”

새정치민주연합이 결국 회군했다. 57일 만에 새누리당의 요구대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그간 박상옥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사 검사로 사건의 축소 및 은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청문회를 보이콧 해 왔으나, 약 두 달 만에 청문회 개최로 입장을 바꿨다.

여야는 25일 오전 박상옥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열고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4월 7일에 열기로 합의했다. 결국 야당이 두 달 간 보이콧 했던 청문회는 새누리당의 요구대로 열리게 됐다. 새누리당은 ‘대법관 공백이 우려된다’ ‘의혹은 청문회에서 풀어야 한다’는 이유로 야당이 발목잡기를 한다고 압박했다. 

새정치연합은 결국 새누리당과 몇몇 언론의 논리에 굴복한 셈이 됐다. 박완주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24일 오전 현안브리핑에서 “오늘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인사청문위원회의를 소집해 격론을 벌였고, 일부 반대의견이 있었지만 다수는 박상옥 대법관 인사청문회 절차를 밟자는 의견이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도 인사청문회를 열어 후보자의 해명을 듣고 국민적 의사를 수렴하자고 뜻을 모았다.

새정치연합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당 안팎으로 거센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5개 단체는 24일 발표한 공동선언문을 통해 “여야는 대법관 공백을 앞세워 인사청문회를 강행할 것이 아니라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임명 제청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과 언론의 ‘발목잡기’ 프레임은 애초에 청문회 보이콧을 할 때부터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새정치연합이 그걸 각오하고 박상옥 후보자는 안 된다는 의지를 피력하던지 아니면 그냥 애초부터 ‘청문회에서 의혹을 풀자’는 입장을 취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새정치연합이 적당히 ‘간보기’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4일 국회에서 긴급 집담회를 열고 민주화 운동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의견을 들었다. 이 날 우윤근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야당 입장에서 청문회를 할지 안할지 판단해야 하는데 집담회를 통해 청문회를 못할 정도의 하자가 있는지 들어보자는 것”이라며 “3월 중 청문회를 열지 안 열지 결정해야죠”라고 말했다. ‘청문회 보이콧’ 입장에서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자’는 입장으로, 사실상 한 걸음 물어난 것이다. 

‘청문회에서 밝히자’는 논리도 궁색하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사례에서 보듯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온다 한들 청문회는 결국 ‘통과의례’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청문회를 열어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기록을 받아낼 수 있고 진상규명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검찰이 이 기록을 못 주겠다고 버티면 그만이다.

새정치연합은 또한 자당 소속 이종걸 의원이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기에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을 수 있고, 낙마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보고서 채택을 보이콧할 경우 또 새누리당과 언론의 ‘발목잡기’ 공격이 이어질 것이다. 청문회 보이콧을 철회한 새정치연합이 또 다시 반복될 발목잡기 논란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청문회를 하면 많은 국민들이 진실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청문회가 통과 의례가 되다보니 부정적 기능이 더 많기에 반대한 것”이라며 “새정치연합이 이런 우려에 대한 대책 없이 청문회를 결정했다는 점에서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의 논리에 끌려가는 모습으로 보인다”며 “적극적으로 맞서 진상규명하고 박상옥 후보자를 막을 의지가 있는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원내지도부가 왜 청문회에 합의해줬는지 모르겠다. 납득이 안 된다”며 “지금까지 청문회 할 수 없다고 주장하다 결국 시간을 좀 끌다가 슬쩍 허락해주고, 이러니 항상 야당이 욕먹는 거다”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이미 역사의 심판이 내려진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어떻게 청문대상으로 삼을 수 있나. 청문회 한다는 것은 이 사람을 대법관으로 인정해주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우리 역사를 굴절시키는 짓”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문회에서 더 밝힐 것 없이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대법관으로 부적격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미 박상옥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팀에서 활동할 시절 부실수사를 했다는 증언이 많이 나온 상황이다. 

인사청문특위 소속의 김기식 새정치연합 의원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부실수사를 했다는 점은 명백하다”며 “앞뒤가 서로 다른 진술을 하는데도 박 후보자는 추궁하지 않았고 네 번에 걸친 수사 진행과정에서도 축소 및 은폐가 거듭됐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은 교도관, 부검의 등 말직에 있는 이들의 용기를 통해서 밝혀졌다”며 “박 후보자가 당시 용기를 갖지 못했다는 점을 개인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인권의 최후보루인 대법관이 되려고 해선 안 된다. 이 사안은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청문회가 진행될 경우 관건은 6000여쪽에 이르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관련 기록을 넘겨받는 것이다. 김학규 사무국장은 “기왕 청문회를 한다면 진상이 정확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기록 전체가 공개되서 당시 박상옥 대법관이 어떤 역할 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