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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 여론 들끓는데 질질 끌려가는 야당

조본좌 2015. 9. 18. 17:35
‘노동개혁’ 여론 들끓는데 질질 끌려가는 야당
새누리당 5대 법안 일괄처리 압박… 새정치는 내분으로 발등의 불, 여야 원내 지도부 합의 가능성도

노동개혁이 국회로 넘어왔다. 새누리당은 노동 관련 5대 법안을 발의하며 정부의 노동개혁에 발맞추고 있다. 이제 키는 야당의 손에 쥐어졌지만, 야당이 정부여당의 노동개혁에 브레이크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9월 13일 노사정 합의에 이어 새누리당이 16일 노동 관련 5대 법안을 당론 발의했다. 노사정합의안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노동시간 60시간 허용, 실업급여 문턱 높이기, 기간제 및 파견근로 확대 등이 명시돼 있다. (관련 기사 : <내친 김에… 새누리당, 주 60시간 노동 밀어붙인다> 

법안으로만 보면 노동개혁을 둘러싼 여야 간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주52시간 노동을 골자로 하는데, 이는 60시간 노동을 허용한 새누리당의 근로기준법과 충돌한다. 

또한 같은 당 박지원 의원이 2012년 발의한 기간제 법은 기간제 사용기간이 2년을 초과하면 무기계약직으로 간주하는 내용으로, 기간제 기간을 4년으로 늘리도록 하는 새누리당의 기간제법과 배치된다. 새누리당의 파견법이 전문직과 고령자, 뿌리산업에 대한 파견을 전면 허용하는 내용인 반면 은수미 새정치연합 의원이 발의한 파견법은 파견노동자 사용 사유를 축소하는 내용이다.

새누리당은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신의진 새누리당 대변인은 15일 현안브리핑에서 “지금 국회 앞에는 노동개혁을 위한 5개 법안이 놓여있다. 우리 아들, 딸들을 위한 일자리 법안들”이라며 “ 하지만 벌써부터 야당이 법안 통과를 가로막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노동시장 선진화는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사안인 만큼 정략적인 접근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아름다운 상생을 추구한 노사정 대타협이 정쟁의 대상이 되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많은 국민, 특히 청년세대들이 결코 우리 정치권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정치연합은 특위를 구성해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17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양당의 설치된 노동관계법 특위를 통합해서 국회 특위설치가 필요하다. 노사정 합의라고 하지만 노동계를 대표하는 한국노총의 가입자는 전체 노동자의 5%에 불과하다”며 “국회입법과정을 통해서 노사정논의에서 소외된 미조직 노동대표, 시민사회단체도 참여해야한다. 새누리당의 국회 특위 구성을 위한 실무협의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이런 제안을 거부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8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뜬금없이 특위 제안을 거듭하고 있는데 이는 노사정 대타협을 전면부인하고 원점부터 새로 시작하자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며 “발의된 법안내용을 심사하는데도 시간이 빠듯한 마당에 논의를 위한 틀을 다시 만들자는 것은 소모적 논쟁으로 시간만 허비할 뿐”이라고 말했다. 신의진 새누리당 대변인도 18일 브리핑에서 “특위 구성 카드까지 꺼내들며 노동시장 선진화의 시계를 멈추려 하고 있다”며 특위를 거부할 의사를 명확히 했다.

새누리당이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것이지만 새누리당이 특위 구성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야당이 5대 법안에 다른 사안을 연계시키는 전략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위를 구성해 논의할 경우 새정치연합이 ‘재벌개혁’ 등 5대 법안에 포함되지 않은 의제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발의한 5대 법안(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기간제 및 파견근로자법) 외의 논의는 거부하면서 속도전을 낼 가능성이 크다. “야당이 청년일자리 발목을 잡는다”는 식의 여론전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며 압박하고, 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한 메시지를 던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새누리당이 5대 법안의 일괄처리를 주장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법안 하나하나를 개별 심사하면서 발생하는 논란을 최소화시키면서, 야당이 고용보험법, 산재법에는 찬성하면서 기간제법, 파견법은 반대한다는 식으로 입장을 정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법안 거래의 여지를 막겠다는 것. 

새누리당의 입장은 정해졌고 결국 키는 야당이 쥐고 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새정치연합이 현재 내분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혁신위의 혁신안이 중앙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1차 재신임에 성공했으나 아직 재신임 투표를 두고 당내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비주류계는 혁신안의 중앙위 통과 이후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비주류계인 김동철 의원은 16일 혁신안 통과 이후 발표한 입장을 통해 “많은 중앙위원들이 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표결 성립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건 통과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찬반 투표조차 진행하지 않음으로써 민주적 절차의 기본인 반대 의견은 묵살되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표 측과 비주류계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당내 갈등 때문에 국정감사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의원들의 시선이 국정감사 등 국회에서 해야 할 일보다 당내 갈등에 더 쏠려있다는 뜻이다.

노동개혁을 앞두고 많은 언론은 환노위가 ‘태풍의 눈’이 됐다고 보도했다. 새누리당이 특위 구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환노위에서 법안 심사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풍의 눈’은 환노위가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야당 환노위 관계자는 “야당 환노위 위원들의 입장은 정해져 있다. 다른 법안들은 논의할 수 있지만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받아주기 힘들다는 것”이라며 “오히려 원내지도부가 정국을 넘어가기 위해 합의를 해버리는 상황이 우려된다. 그간 노동관련 법들이 원내지도부 간 합의를 통해 통과된 역사가 있고, 따라서 변수는 원내지도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