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인문, 사회과학

일본 안보법안, 아베 뒤의 ‘미국’을 보라

조본좌 2015. 9. 26. 11:43

일본 안보법안, 아베 뒤의 ‘미국’을 보라

[서평] 일본 재무장의 새로운 단계 / 임필수 지음 / 사회운동 펴냄

지난 9월 19일 일본이 패전국이 된 지 70년 만에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공명 연립정당이 안보관련법안을 참의원 회의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안보법안의 핵심은 평화헌법이 금지한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안보법안의 통과로 일본은 미국 등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가 공격당할 경우 대신 반격을 할 수 있게 됐고,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사태’가 발생하면 전 세계 어느 곳에나 다른 나라 군대에 대한 후방 지원을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안보법안 통과를 ‘전쟁 포기, 교전권 불인정,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한 평화헌법 9조를 뜯어고치려는 아베의 야욕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군사문제와 평화운동에 대해 연구한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은 신간 <일본 재무장의 새로운 단계>에서 아베 뒤에 있는 미국에 대해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 실장은 일본재무장반대 시민평화행동, 반전평화연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다.

   
▲ 일본 재무장의 새로운 단계 / 임필수 지음 / 사회운동 펴냄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의 재무장과 집단자위권 행사에 반대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징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임필수 실장은 이런 논리가 ‘양날의 검’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에 대한 징벌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일본은 국제연합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집단안전보장 체제에 기여함으로써 세계평화에 공헌하겠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주목해야할 점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뒤에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재균형 전략’이 있다는 점이다. 2011년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미국의 태평양 세기’를 선언했다. 아시아 태평양을 지배하는 자가 21세기를 지배할 것이고, 그 지배자가 미국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실제 냉전이 종료된 1990년대 이후 미국 정부는 해외주둔 미군 규모를 점차 줄였는데, 유럽에서는 72% 감축이 이뤄진 반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29%만 감축했다.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제1의 장애물은 중국이다. 따라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재균형’이란 중국과 군사적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미이다. 이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은 ‘공해전’이다. 이는 유럽을 주전장으로 삼고 소련 지상군과 전투를 상정함으로써 공군과 육군에 초점을 맞추는 ‘공지전’이 아니라 서태평양에서 발발할 전투를 대비해 공군과 해군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다. 

미국은 서태평양에서 공해전을 수행하기에 매우 불리한 처지다. 세계 최대 함대의 모항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서 하와이 제도 오하우 섬까지 거리는 2265해리에 달하고 하와이에서 미국령 괌까지 거리는 330리, 괌에서 말라카 해협까지는 2550해리다. 미군 기지와 시설은 매우 넓은 지역에 소수의 고립된 섬 위에 퍼져 있으며 한 장소에 대규모로 주둔하고 있으며, 중국 인민해방군의 사정거리 내에 있다. 

반면 중국군은 서태평양 전역에 섬으로 이어진 경계사슬을 지니고 있다. 대만을 범위에 둔 공군기지는 27개에 달하며 탄도미사일 전력도 중국 내에 배치하면 다 사정거리 안에 있다. 중국은 앞마당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반면 미국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수천킬로 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원을 수송해야하고, 몇 개의 핵심 병참에 집중해야한다. 중국이 괌에 있는 해군 기지만 무력화하면 미국은 전력에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의 지원이 절실하다. 일본 북부와 동부는 중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활용도가 높고, 류쿠 제도는 지리적 특징상 대잠수함 전투 작전에 유리하다. 일본이 동맹국이라는 확실한 전제가 있어야 공해전 개념이 성립 가능하다. 임 실장은 일본 자위대가 집단자위권을 명목으로 미국의 대중국 공해전에서 필수불가결한 공군력과 해군력을 담당할 것이라 말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미일동맹은 계속 평화헌법을 흔들었다. 1951년 2차 대전을 마무리하는 센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되던 날 미일 안보조약이 조인됐다. 안보조약에 ‘미국은 일본이 방위를 위해 점점 더 큰 책임을 맡으리라 기대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일본의 군비 확충과 재무장의 근거가 됐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이후인 1978년 미일은 ‘미일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을 채택했다. 의회 비준도 받지 않은 행정 지침이었다. 극동에서 일본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자위대가 미군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1997년 미일방위협력지침은 난민과 미군 부상병을 위한 무력사용은 가능하다고 명시하면서 자위대가 교전에 참여할 가능성을 높였고, 급기야 2014년 아베 정부는 각의 결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의 안보법안과 재무장은 단순한 일본의 침략 야욕의 결과가 아니다. 미국의 이해관계 및 세계지배전략과 일본 보수 세력이 맞물려 움직인 결과다.   

저자는 일본 재무장의 역사와 함께 일본 평화운동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평화운동은 미일동맹 해체라는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으나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제약하고 핵무기 도입을 억제했으며 우익세력의 평화헌법 개정을 막아내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58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앞두고 벌어진 평화운동은 기시 내각의 퇴진으로 이어졌다.

안보법안 처리를 앞두고 8월 30일 오후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12만 명의 군중이 모여 ‘아베 퇴진’ ‘전쟁은 필요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1968년 이후 일본에서 10만 명 이상의 군중이 참여한 시위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는 어쩌면 ‘일본 재무장의 새로운 단계’와 함께 ‘일본 평화운동의 새로운 단계’를 목도하게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