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결한다’, 추미애의 강박이 판을 깼다
‘내가 해결한다’, 추미애의 강박이 판을 깼다
내부 논의도 없이 밀어붙인 양자회담, 14시간 만에 철회… “또 다른 최순실 존재하나” 비선 논란까지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1대 1 회담이 깨지는 데는 13시간 50분이 걸렸다. 추미애 대표는 14일 오전 6시30분 박근혜 대통령에게 양자회담을 전격적으로 제안했으나 같은 날 오후 8시20분 이 같은 결정을 철회했다. 약 14시간 동안 추 대표와 민주당은 우왕좌왕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5일 오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본의 아닌 오해와 우려를 낳을 수 있다는 의견을 깊이 받아들여 담판회동을 철회했으니 이제 야권과 시민사회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통령을 조속히 퇴진시키고 국가를 위한 조속한 국정 정상화와 국민이 원하는 민주정부 이행을 위해 힘을 합쳐 퇴진운동에 박차를 가하도록 전력 투구하겠다”고 밝혔다.
추 대표는 14일 오전 6시 반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박 대통령과 양자회동 형식의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청와대는 이를 받아들였다. 추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 이른 아침에 제1당 대표로서 이 난국을 해쳐나가기 위한 만남이 필요하다고 보고, 청와대에 긴급 회담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추 대표가 1대1 회동을 대통령에게 하야 여론을 전달하고 민주당이 퇴진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한 마지막 절차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대다수 야권 지지층은 추 대표가 여론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고 비판했다. 국민 대다수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대통령에게 ‘야당과 대화를 했다’는 명분만 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갑작스런 1대1 회동에 추 대표가 대통령에 제안할 것이라는 4가지 사항이 찌라시로 돌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김종인 전 대표를 책임 총리로 세우고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대통령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김종인 전 대표에 대한 총리 추천 등은 여야가 합의해야 한다는 점에서 찌라시의 내용은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갑작스러운 회담 결정에 이런 소문은 여론의 반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당 의원들과 다른 야당의, 대선 주자들의 반발까지 이어졌다. 14일 의원총회에서는 국민의당, 정의당과 회담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자는 절충안까지 등장했지만 두 야당이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추 대표는 결국 14일 오후 8시20분 회담 철회를 선언했다.
1대 1 양자회동의 아이디어는 전날인 13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나왔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13일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1대 1 양자회동을 포함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나왔다. 추 대표가 그 여러 가지 방안 중 1대 1 회동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추미애 대표 역시 14일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날 최고위원-중진 의원 연석회의에서 (단독 회담) 제안이 나왔고 이를 두고 고심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의사결정과정이었다. 전날 연석회의에 참석했던 송영길 의원은 의총에서 “영수회담은 브레인스토밍 차원으로 이야기했고 분명 야 3당이 함께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당 공식 절차 없이 급박하게 가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여러 방안이었는데 논의도 없이 추 대표가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실제 추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은 당내 공식적인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고 나왔다. 14일 오전 연합뉴스에서 추 대표의 영수회담 소속이 등장하자, 기자들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민주당 측에 확인시도를 했다. 당 대표 비서실 관계자는 몇몇 기자들에게 “오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몇몇 당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맞다”고 확인해줬다. 몇몇 당 관계자들은 기자들의 문의에 “(배경을) 잘 모르겠다. 추 대표가 나름대로 무슨 생각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당 지도부 중에 우상호 원내대표만 미리 통보를 받았고 최고위원들도 제안에 대해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4일 오후 비대위 회의에서 “우상호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해서 물었더니, 우상호 원내대표는 ‘추미애 대표로부터 어젯밤 10시반 경에 단독회담을 제안하겠다는 전화가 왔다’고 한다”며 “우상호 원내대표가 절대 반대를 했지만 계속 주장을 해서 ‘그렇다면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와 협의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 추미애 대표가 ‘그것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내일 최고위회의에서 논의하자’고 전화 통화를 끝냈다고 했다”고 전했다.
야권 공조도 흔들렸다. 국민의당, 정의당에게도 1대1 회담 소식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자 영수회담 소식이 알려지자 박지원 위원장은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기자회견을 통해 “다른 야당에 한 마디 설명도 없이 단독회담을 추진한데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국민들에게 야권균열 우려만 키우는 단독회담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논의과정을 문제 삼으며 야권 공조가 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김상희 의원은 의총에서 “대표는 누구와 의논하고 최고위원회는 뭐 하러 있나. 회담을 하면 광장에서 돌팔매 맞는다”고 지적했다. 유승희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비판받는 이유는 권력을 사유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추 대표 혼자서 하루아침에 결정하다니 말이 되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언주 의원도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오늘 당 지도부가 영수회담을 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다수 의원들이 멘붕 상태다. 앞장서서 싸울 때는 뒤에 숨어 있다가 100만 촛불로 민심이 결집하니 돌연 대장노릇하려 하는 건가. 다른 야당하고의 공조는 어쩌려는 건가”라며 “하야하라는 말 한마디 하려고 다른 야당들 따돌리고 영수회담까지 하는 건 아닐 테고,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비선’ 이야기가 나온다. 한광옥 비서실장과 추미애 대표를 모두 아는 동교동계 인물들이 회담에 영향을 미쳤으며, 추 대표의 특보단장인 김민석 전 의원이 ‘비선’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김 전 의원 등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추 대표가 문재인 전 대표와 당내 친문세력의 메시지를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회담을 추진했다는 추측까지 나돌고 있다. 이와 관련해 문 전 대표의 측근 김경수 의원은 기자들에게 “오늘 추미애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 관련 문재인 전 대표는 사전에 협의하거나 연락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안민석 의원은 의총에서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는 아무 결론이 없었는데, 이 중요한 결정이 비공식적으로 이뤄졌다면 문제다. 이걸 비선라인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선 의원도 “(논의과정이) 분명해지지 않으면 또 다른 최순실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을 추 대표의 스타일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추 대표는 취임 초 최고위원들과 상의 없이 ‘국민통합’을 이유로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 일정을 잡았다 반발이 커지자 취소했다. 2009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던 추 대표는 당론과 다른 내용의 노동법 개정안을 한나라당과 합의해 날치기 처리했고, 당원자격정지 2개월을 받은 적도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충분한 논의과정 없이 밀어붙인 적이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는 것.
한 민주당 관계자는 “평소 추미애 대표 스타일대로라면 심상정 대표보다 더 강하게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 대표로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 등으로 인해 답답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던 추 대표가 100만 촛불로 드러난 여론을 목격했고, ‘내가 해결 해야겠다’는 생각과 민주당이 주도권을 잡아야한다는 판단이 겹치면서 1대1 영수회담이라는 결정이 나왔다는 것.
원인이 무엇이든 이번 사건으로 인해 추 대표의 리더십에는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앞으로 강하게 밀어붙여야 할 때도 ‘비선’ 이야기가 등장할 것이고, 당내 지도력이 흔들리면 정부 및 여당과 협상력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단순히 정치인들 간의 만남도 아니고 명색이 대통령과 제1야당 당수 간 영수회담이 합의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몇 시간 만에 무산돼 버렸다”며 “추미애 대표는 당 소속 의원들에게 사실상 불신임을 받은 것인데 어떻게 제1야당을 이끌어 가겠는가”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