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기사

박근혜 뇌물죄 적용하면 최대 무기징역도 가능

조본좌 2016. 11. 29. 10:14

박근혜 뇌물죄 적용하면 최대 무기징역도 가능

[뉴스분석] 박근혜는 공범으로, 대기업은 ‘피해자’로 규정, “최순실과 안종범, 대통령 공모범행” 뇌물죄는 왜 빠졌나

헌정 사상 첫 ‘피의자 대통령’이 탄생했다.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 관련 공소장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라는 표현을 8번이나 적시함으로써 박 대통령이 공범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공소장에서 대기업은 내내 ‘피해자’로 등장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20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직권남용‧강요‧강요미수‧ 사기미수 등으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공무상 비밀누설로 구속기소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들의 ‘공범’이 됐다. 이영렬 특별수사본부장은 “대통령에 대하여 현재까지 확보된 제반근거자료를 근거로 피고인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여러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공모관계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실제 20일 검찰이 법원에 접수한 공소장을 보면, 박 대통령이 공모했다는 표현이 다수 등장한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재단법인 미르 및 K스포츠 설립 모금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강요 △현대자동차그룹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롯데그룹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주식회사 포스코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주식회사 케이티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GKL 관련 직권망용권리행사방해, 강요 등의 혐의에 대해 “피고인 최순실과 피고인 안종범, 대통령의 공모범행”이라 규정했다.

이 대목에서 “피고인 최순실, 피고인 안종범은 대통령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해 (중략) 기업체 대표 및 담당 임원들로 하여금 (중략)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는 표현이 8차례 등장한다.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 경위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안종범은 대기업 회장들과 단독 면담을 마친 대통령으로부터 ‘전경련 산하 기업체들로부터 금원을 갹출하여 각 300억 원 규모의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을 설립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고” “최순실은 대통령으로부터 ‘전경련 산하 기업체들로부터 금원을 갹출하여 문화재단을 만들려고 하는데 재단의 운영을 살펴봐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받고” “안종범은 2015년 10월19일 대통령으로부터 ‘중국 총리 방한 때 양국 문화재단 간에 양해각서를 체결해야 하니 재단 설립을 서둘러라’는 지시를 받았다” 등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또한 검찰은 공소장에서 “피고인(정호성)은 2013년 1월경부터 2016녀 4월경까지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총 47회에 걸쳐 공무상 비밀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 47건을 최순실에게 이메일 또는 인편 등으로 전달하였다”며 “피고인은 대통령과 공모하여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하였다”고 적시했다. 강요죄 뿐 아니라 정호성의 공무상 비밀누설에도 박 대통령이 공모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박 대통령을 범죄 공모자로 적시함으로써 대통령은 탄핵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검찰의 공소장이 정치권이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준 셈이기 때문이다. 정진석 새누리딩 원내대표도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두 야당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면 헌법에 규정된 만큼 책임 있게 논의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청와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검찰의 발표에 대해 “객관적 증거는 무시한 채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일 뿐”이라며 “검찰의 수사가 공정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박 대통령의 변호인은 유영하 변호사도 “검찰의 조사에는 일절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의 기소범위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의혹에 비해 좁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검찰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뇌물죄’ 혐의가 기소대상에서 빠진 것이 문제로 꼽힌다.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은 20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검찰이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는 것은 5년 이하의 범죄로 이렇게 제한하려고 하는 것으로 국민은 생각하고 있다”며 “만약 뇌물죄가 되게 되면 특정경제가중처벌 등의 관한 법률위반으로써 10년 이상 내지 무기징역의 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검찰이 대통령을 제대로 조사하고 제대로 된 공소 사실을 발표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뇌물죄 적용을 피한 이유를 두고 박 대통령보다는 대기업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의 강요에 의해 돈을 뜯긴 것이라면 대기업들은 처벌을 피할 수 있지만, 그 돈이 ‘뇌물’로 인정된다면 뇌물을 준 대기업들도 뇌물공여 혐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실제 검찰 공소장에는 기업들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한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16개 그룹 대표 및 담당 임원들은 요구에 불응할 경우 세무조사를 당하거나 인허가의 어려움 등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중략) 재단법인 미르에 합계 486억 원의 출연금을 납부하였다”고 밝혔다.

또한 공소장에는 “최순실, 안종범이 대통령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함과 동시에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이모씨 등 전경련 임직원, 피해자 삼성전자 대표 등 기업체 대표 및 담당 임원들로 하여금 위와 같이 486억 원의 금원을 출연하도록 함으로써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는 표현이 나온다. 검찰은 이외에도 현대자동차 그룹 부회장, 현대자동차 대표, 롯데그룹 회장 및 부회장, KT 회장 등 대기업 총수 및 임원들을 ‘피해자’라 규정했다.

하지만 대기업이 단순히 최순실씨 게이트의 피해자가 아니라 협력관계였다는 정황이 계속 나오고 있다. SBS는 지난 6일 삼성그룹이 최순실 씨 독일 승마사업에 280억 원 가량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노조 문제 협력과 연구비 등의 정부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보도했다. 삼성그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황이다.

▲ 11월6일자 SBS 8뉴스 갈무리
이외에도 한화그룹과 SK는 총수 사면 등 법적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 부영그룹은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검찰이 대기업들을 피해자로 규정하면서 뇌물죄 적용을 피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KT새노조는 20일 입장문을 내고 “참담한 현실의 원인이 근본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매우 잘못된 정부 운영에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경영진의 그릇된 행태 때문”이라며 “KT는 피해자임에 틀림없지만, 황창규 회장은 피해자가 아닌 공범”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중간수사 발표에 따르면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차은택 등이 추천한 인사들을 KT 전무, 상무보로 채용했다. KT새노조는 “황창규 회장이 이들을 기용해 자신의 연임을 위한 배경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이 추가로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전략적으로 뇌물죄 적용을 하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은 중간수사발표 이후 기자브리핑에서 “이게(공소장에 담긴 것) 끝이 아니다. 수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뇌물죄 등을 거론했다. 피의자인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지 못한 상황에서 뇌물죄까지 적용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하고, 수사내용을 알려주지 않기 위해 강요죄 등만 적용하는 전략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전략적인 이유가 아니라 대기업 등을 피해자로 만들기 위해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과 최순실, 안종범 등에 대한 혐의가 가벼워진다면 특검의 추가 수사 필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검사 출신의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2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검찰이) 뇌물죄 적용을 안 했는데, 지금까지 확보한 증거만으로도 기소하기 충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며 “특검은 검찰로부터 수사 자료를 넘겨받으면 뇌물죄 자체에 대한 수사뿐만 아니라 검찰이 이 시점에서 충분히 기소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봐주기 기소'를 한 것이 아닌지 검토해서 그 부분의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