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톡] 정치 기사는 왜 그럴까? 정치부 기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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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기사엔 유독 따옴표가 많습니다. 말이 곧 기사가 되기 때문인데요. 지난 7월 한국기자협회보는 정치 기사의 인용문 비율이 문화와 경제 분야의 2배에 가까울 정도로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정치부 기자들의 취재 활동 대부분은 정치인들의 말을 찾고, 수집하는 일입니다.
정치부 기자들은 어떤 말을 기사로 쓸까요? 첨예한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해법을 모색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말,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단어를 사용해 모든 이슈를 정쟁화시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말. 정치부 기자들은 말합니다. 경험적으로 전자보다는 후자가 기사화될 때가 더 많았다고요.
지난 1일 21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가 시작됐습니다. 공수처법, 내년도 예산안 등 합의를 모색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합니다. 그러나 벌써부터 '전쟁터', '동물국회'가 될까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데요. 우리 정치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왔던 경험이 이런 우려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가 사회적 간극을 좁히지 못한 것을 두고 '진영 간 대립에 매몰된 정치 때문이다', '갈등 위주의 보도만을 일삼는 언론 때문이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J'가 과거 국회를 출입했거나 현재 국회를 출입한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정치 기사의 3단계…말을 듣고, 해석하고, 싸움 붙이기
조윤호 전 미디어오늘 정치부 기자는 "정치 기사는 3단계를 거쳐 쓴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워딩을 구하고 두 번째는 워딩을 해석하고 세 번째는 해석에 대한 정치인들의 입장을 취재해 대립각을 세워 기사를 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싸움을 붙이는 것이죠. 예컨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견해 차이를 보일 때, 언론은 여당의 유력 대권 주자 간 갈등과 견제가 격화되고 있다는 논조의 기사를 쏟아내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재미없게 기사 쓰면 누가 보겠나?"
기자들이 갈등 위주 보도를 하는 건 독자들이 많이 소비한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김빛이라 KBS 정치부 기자는 "포털 사이트 '많이 읽은 뉴스'를 보면 정치 기사 가운데는 자극적인 말, 흥미를 유발하는 기사가 늘 올라온다"며 기자들이 조회 수 압박을 받게 되는 현실을 꼬집었습니다.
자극적인 기사는 정치인들의 자극적인 발언에서 출발할 때가 많습니다. 김경국 국제신문 서울본부장 겸 정치부장은 "정치인들이 언론 노출 빈도를 높이기 위해서 용어를 순화하지 않고 과격한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이를 언론에서는 일정 부분 순화해서 보도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까 막말 공방을 양산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자들이 정치인들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과격한 용어를 기사화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요? 조윤호 전 기자는 "정치인이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를 내가 받아쓰지 않을 경우 해당 정치인이 더는 정보를 주지 않을 수 있다. 또 내가 쓰지 않는다고 해서 국회에 출입하고 있는 천 명 넘는 기자들 모두가 안 쓰는 것이 아니"라며 정치인의 말과 주장을 선별해서 기사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소모적 정쟁 기사가 정치혐오 유발"
그럼에도 갈등만을 담아내는 정치 기사의 패턴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정치부 기자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조윤호 전 미디어오늘 정치부 기자는 "모든 사안을 정쟁으로 소화하는 정치 기사는 정치 혐오를 만든다"면서 "정치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싸움만 한다고 이해하고, 사람들이 국회의원에게 주는 월급조차 세금 낭비라고 생각해 월급을 없애자는 주장까지 힘을 얻는다면 급여를 받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는 특권층이 국회의원 자리를 차지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정쟁·갈등 위주 보도 속에서 실종된 정책 보도
정치인들만을 향해 있던 정치 기사가 국민의 삶으로 그 관점을 옮길 때 정치 기사의 고루한 문법을 탈피할 수 있습니다. 국회에는 정쟁만 있는 건 아닙니다. 국회의원들은 법안을 발의하고 정책을 제안합니다. 임대차보호법은 우리 사회 어떤 계층을 위한 법이며, 허점은 없는가, 법원행정처의 구조를 바꾸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왜 필요한가를 말해주는 기사가 의미 있는 기사라는 데 모두 공감하지만, 이러한 기사를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저 정쟁 기사의 소재로 소비돼 버리기 일쑤이죠.
물론 법안 정책 관련 보도를 전담하는 팀을 꾸려 운영하는 언론사도 있습니다. KBS 정치부는 정당팀 외에 의정팀을 따로 마련해 법안의 발의 과정과 협의 과정을 취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김빛이라 KBS 정치부 기자는 "현재 제도가 유지되려면 당장의 시청률이 안 나오고 조회수가 적어도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좋은 기사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조윤호 전 기자는 "정책 기사는 많은 취재 시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20~30년째 논란이 이어 온 공수처가 처음에는 왜 등장했고 여야가 입장이 어떻게 갈렸었고 지금은 무엇이 쟁점인지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서 "기자가 오로지 법안과 정책에 집중해 끈질기에 취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이같은 낡은 보도, 취재 문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저널리즘토크쇼J는 본격적인 국회의 시즌이 시작되기 앞서, '실과 바늘'과 같은 정치인과 언론의 관계가 판갈이될 수 있을 지 짚어봅니다.
'저널리즘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105회는 < "판갈이 합시다" 정치와 언론의 낡은 문법 해체하기 >라는 주제로 오는 13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상호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김영우 전 미래통합당 의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출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