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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부족주의를 극복할 '아메리칸드림'

조본좌 2021. 1. 27. 23:41

<정치적 부족주의>라는 책을 읽었다. 분열을 정치의 동력으로 삼는-정체성 정치를 포함한 부족주의 정치에 대한 신랄한 분석과 비판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절망적인 전망을 제시하면서도 책 말미에 미국의 탄생설화인 '아메리칸드림'을 다시 거론하며 웅장하게 책을 마무리한다.

"오늘날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정치적 부족주의를 맹렬히 실어나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이 미국적 가치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독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다. 미국이 미국의 국가 정체성을 ‘백인’ ‘앵글로 개신교 문화’ ‘유럽 기독교’로 규정하는 한(혹은 다른 종교나 인종을 포용하지 않는 그 밖의 무언가로 규정하는 한) 미국은 미국이기를 멈추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미국인이 미국과 미국의 이상이 사기라도 믿어도, 미국은 미국이기를 멈추게 될 것이다. 미국이 스스로 세운 이상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그래서 오늘날 끔찍한 불의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미국인을 하나로 통합해야 할 원칙들을 억압을 가리는 가림막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오늘날 미국이 국가로서 직면한 문제는 그 자신이 세운 약속에 부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뿐 아니라, 미국이 그 약속을 믿지 않게 되거나 그 약속을 위해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좌파 진영에서 ‘그 약속은 늘 거짓이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과 우파 진영에서 ‘그 약속은 늘 사실이었으며 이미 달성됐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동일한 동전의 양면이다.

하나의 나라로서 한데 모이려면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서 한 발 올라 와야 한다. 분열을 가로지를 어떤 기회라도 있다면 그것을 붙잡아 서로에게 이야기를 건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동료 미국인으로서, 공동의 일을 해 나가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가진 부족적 적대를 인식해야 한다.

테러를 우려하는 사람은 이슬람 공포증이라고 비난받지 않으면서 그 우려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인구 구성의 대대적 변화와 이민자의 유입을 걱정하는 사람도 인종주의자라고 비난받지 않으면서 그 우려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인구 구성의 변화가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일이라는 것도 맞는 말이고 다양성에 비용이 든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미국은 전에도 이것을 잘 겪어냈다. 미국 역사 내내 새로운 이민자의 파도가 반복적으로 해안에 밀려 왔고 그럴 때마다 국가의 성격이 달라지고 길거리가 안전하지 않게 되고 미국의 가치가 훼손될 것이라는 두려움과 의구심이 일었다. 하지만 매번 미국은 그 두려움을 극복했고 더 강해졌으며 번성했다.

과거 모든 이민의 파도마다 미국의 자유와 개방성이 승리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이민은 다르다’고 말하면서 유대를 잃고 실패하는 첫 세대가 될 것인가? 그렇게 해서 미국이 무엇이었는지, 미국인이 누구였는지를 잊을 것인가?

(중략)

미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이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실패를 부인하기보다 인정하는 종류의 드림이어야 한다. 실패는 희망에 기초해 지어진 나라, 언제나 무언가 더 할 일이 있는 나라의 스토리라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중략)

아메리칸 드림은 자유의 약속이고 이 땅에 닿은 모든 개인을 위한 희망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늘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미국인 스스로에게 되뇌는 신화를 현실에서 실현시켜야 한다는 촉구이기도 하다. 이런 드림을 노래한 시인으로 한 명 꼽는다면 단연 랭스턴 휴스일 것이다. 1935년 작 <미국이 다시 미국이 되게 하자>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미국이 꿈꾸는 자가 꾼 꿈이 되게 하자.

미국이 가장 강한 사랑의 나라가 되게 하자.

(내게 이것은 미국이었던 적이 없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리는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가난한 백인이다. 바보처럼 속고 뒤로 밀쳐진

나는 흑인이다. 노예의 낙인을 가진.

나는 인디언이다. 살던 터전에서 쫓겨난.

나는 이민자다. 내가 찾는 희망을 손에 쥐고 왔다가

전과 똑같이 멍청한 계획만을 발견한.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짓밟는 계획만을 발견한.

오, 미국이 다시 미국이 되게 하라.,

지금껏 이 땅이 되어본 적이 없는

그러나 되어야만 할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땅.

오, 그렇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내게 미국은 미국이었던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맹세한다.

미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