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인문, 사회과학

계급을 포기한 대가

조본좌 2021. 2. 13. 11:20

‘차브’는 영국에서 하층 노동계급을 일컫는 말이다. 오언 존스는 이 책에서 어쩌다가 영국의 노동계급이 샅샅이 분열되고, 기득권 세력이 사회경제적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그 결과 ‘차브 혐오’가 생겨났는지 분석한다.

이는 놀랍게도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보수당과, 계급을 내다버린 ‘신노동당’(노동당의 신주류)의 연합으로 이루어졌다. 보수당은 집권하자마자 죽기 살기로 계급전쟁을 벌였고, 신주류가 장악한 노동당은 계급전쟁에 맞서기는커녕 다른 갈등으로 이를 우회하려다 이런 결과를 빚었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아래.

“노동자들을 ‘백인종’이라고 정의 내리면 차브들을 혐오하면서도 진보주의적인 견해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백인 노동자들의 인종주의나 그들이 다문화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것을 강조함으로써 백인 노동자들을 미워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이 같은 행태를 두고 언론인 조헌 하리는 ‘무식한 백인노동계급에 맞서 이민자들을 옹호하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속물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사회적인 용인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백인 노동계급을 사회적 계층이 아니라 인종적으로 정의함으로써 진보성향의 차브 혐오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문제를 경제적 요인이 아니라 문화적 요인에서 기인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다시 말해 차브들의 생활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불공정한 사회구조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백인노동자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이 무책임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진보적 성향의 차브 혐오주의자들은 소수 인종에 대한 전반적인 차별 때문에 실업과 가난, 그리고 폭력과 같은 문제까지 발생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백인 노동자들도 그와 같은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