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이집트 여행기 ⑥ 한국 못 올 뻔한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날
8월 5일 토요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이 밝았다. 긴장해서일까 아니면 아쉬워서였을까 이날은 새벽 4시 반에 눈이 떠졌다.
알렉산드리아 기차역에서 오전 8시15분행 기차를 타고 카이로로 돌아가야 했다. 조식을 먹을까 말까 하다가 마지막 날이기도 하니 간단히 먹기로 하고 오전 7시에 식당으로 갔다. 결론적으로 매우 잘한 결정이었다. 이후 비행기에 타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빠른 식사를 마치고 미리 싸놓은 짐을 들고 체크아웃을 하러 갔다. 이집트에선 특히 호텔 체크아웃을 할 때 시간적 여유를 두는 게 좋다. 정산에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 숙소 안에 있던 유료 ‘bar’에서 콜라 3개랑 오렌지 주스 1개, 미란다 1개, 그리고 초콜릿 바 4개(이건 간식으로 먹으려고 가방에 넣어놨다.)를 먹었기에 추가 비용 305파운드가 나왔다.
이놈들은 호텔에서조차 ‘small bills’ 성애자들이다. 잔돈 거슬러주기 싫어가지고 손님한테 잔돈을 달라고 한다. 그래서 전날 내 잔돈도 훔쳐 갔나? 아참, 이 잔돈 박시시는 결국 못 돌려받았다. 내 돈 가져간 그놈 누구인지를 모르겠단다.
추가 비용까지 납부 한 뒤, 잔돈 도둑의 박시시만 빼고 꽤나 괜찮았던 호텔을 떠났다. 알렉산드리아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이다. 가는 길에 알렉산드리아 유적으로 꼽히는 로마 원형 경기장이 있었다. 다음번에는 기차로 온 다음 이 근처에서 원형 경기장을 보고 지중해 인근으로 가는 일정도 괜찮겠다 싶었다.
저번처럼 bookaway에서 미리 기차표를 구매해놓았다. 1등 석이라 다른 교통편에 비해 매우 비싼 편이었다. 53.73유로, 원화로 77,684원이 들었다.
기차역에서의 혼돈이 싫다면 이집트에선 가능한 미리 표를 끊어놓는 걸 추천한다. 왜냐면 여긴 모든 언어가 다 아랍어로 되어 있어서 어디서 표를 사야하는지, 얼마인지조차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차 플랫폼으로 들어서려는 길이 가로막혀 있지만 당황할 필요가 없다. 옆의 승무원이나 혹은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미리 인쇄한 티켓을 보여주면 자기 카드 같은 걸로 문을 열어준다.
이놈의 기차역에는 도대체 내 기차를 타러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몇 번 칸인지조차 안 쓰여 있다. 정확히는 아랍어로만 쓰여 있어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아먹을 수가 없다.
꼭 주변의 승무원이나 승객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맞는지 확인하고 타야 한다. 나도 카이로 가는 게 맞는지, 내가 타야할 Coach number는 어디 있는지 총 4명에게 확인하고 탑승했다. (한 두 놈은 대충 아무 말이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 때문인지 기차 칸 곳곳에 service 어쩌구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곳곳에 서서 헤매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흔히 생각하는 승무원 제복 같은 것도 아니라 처음엔 커플티나 과티 같은 걸 맞춰 입은 이집션들인 줄 알았다. 시스템을 정비하는 대신 사람을 늘리는 걸 선택한 걸까?
1등석이라 그런지 자리는 시원하고 좋았다. 그러나 KTX를 생각해선 안 된다. 와이파이 같은 건 당연히 없고, 충전 콘센트도 없다. 수시로 기차가 멈춰대는 데 왜 멈추는지도 안 알려주고, 승무원 놈들도 모른다. 자동차도 그러더니 누가 철길로 무단횡단이라도 했는지 기차도 급정거를 해댄다.
승차권 체크는 또 귀신같이 열심히 하는데, 한 이집션이 와서 내 승차권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갔다. 내 승차권에 자기 싸인을 하고 가길래 문제 없구나 싶었는데 30분 정도 뒤에 그 승무원이 보스처럼 보이는 사람과 함께 나타났다.
그가 “Can you speak english?”라고 물었는데 정작 물어본 그놈이 영어를 못했다. (왜 물어본거야..) 그래서 옆자리에 있던 총명해 보이는 이집션 대학생이 통역을 해주었다.
결론적으로 내 승차권이 이집션용이라고 했다. 외국인용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bookaway에선 그런 건 본 기억이 없다. 그러자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여기선 모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 내가 ‘돈 더 내냐면 되냐’고 했더니 그렇다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어차피 환전한 돈이 남아도는 상황이었기에 650파운드를 줬다.
그 뒤론 문제없이 쭉 카이로까지 도착했다. 다만 기차가 여러번 멈추는 바람에 예정 시간인 11시 15분에서 20분 지난 11시 35분에 카이로 람세스역에 도착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했다. 오후 2시 20분 행 비행기를 타야 했으므로 람세스역에서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그리고 람세스역은 예상대로 택시기사를 빙자한 삐끼들이 천지에 깔려 있었다.
그 중에 난 이집트에서 만난 사람 중에 역대급으로 상태가 안 좋은 사기꾼 부자를 만났다. 물론 카이로공항까지 가는 길은 택시로 40분 넘게 걸리므로 좀 먼 거리긴 하다. 길이 졸라 막히다 보니 운전이 쉽지도 않다. 그래도 200파운드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 먼저 선제시를 했더니 좋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를 주차장까지 데리고 가서 출발하려고 하니 내가 손에 든 거 그거 한 장 더 달라고 했다. 400파운드. 애비랑 아들이 쌍으로 아주 봉 잡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여기서 그냥 내려버릴까 하다가 다시 택시를 잡으러 가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거라는 점, 빨리 카이로공항까지 가야한다는 점을 고려해 오케이했다. 400파운드면 사실 원화 만 육천원으로 이집트 물가를 고려하면 진짜 말도 안 되는 바가지다.
400파운드를 쳐 받았으면 입이나 닥치고 갈 것이지 이 부자는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댔다. 내가 가진 돈을 달러로 바꿔줄 수 있다고 해서 필요 없다고 했다. 애비는 운전, 아들은 스몰토크 전담인 모양이다. 아들 놈이 내 이름을 물어보더니 자기가 사실은 투어가이드 능력자라고 했다. (꺼져 제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랬는데도 말귀를 못 알아먹었는지 애비까지 나서서 자기 아들이 나를 같이 따라가면서 투어를 해줄 수 있다고 한다. (내가 탁아소냐?) 내가 대꾸가 없자 아버지가 “Do you understand?”라고 웃으며 묻는다. 나는 뭔 소린지 못 알아듣겠다고 했고 그러자 아버지가 “그래? 하지만 나는 이해한다(?)”라며 내 허벅지를 툭툭 쳤다. ??
한참을 달리던 그는 카이로공항이 가까워져 오자 갑자기 차를 멈춘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기름이 떨어졌다고 한다. (너네는 집까지 걸어서 가게?) 그러더니 비용 더 낼 필요 없다면서 옆에 서 있던 다른 운전사 차를 타고 가라고 한다. 조선시대 역참에서 말 갈아타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식의 택시 환승은 처음 겪어봤다. 내가 다른 택시에 타자 아들 놈이 나와서 새로운 기사에게 돈을 건네준다.
사기꾼 무리가 그렇게 사라지고, 난 두 번째 택시를 타고 무사히 카이로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터미널2로 와야 하는데 터미널1로 온 것이다. 미리 체크를 못 한 내 실수였다. 카이로공항은 총 터미널이 3곳이 있는데, 사실 세 터미널이 아예 다른 공항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차로 가도 10분~15분 걸린다.
문제는 터미널1에서 줄을 서서 안으로 들어가도 아무도 잘못 왔다고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티겟을 보여주고 맞냐고 물어봐도 바로 저곳이라고 무의미한 손가락질만 해댄다. 결국 보안검색대 앞에서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에 다시 확인했고, 한참을 지들끼리 이야기하던 직원들이 결론을 내린다. “터미널 2로 가야한다.”고
당장 뛰어나가서 막 출발하려는 공항 셔틀버스를 붙잡았다. 그 때 이미 1시였다. 버스 기사를 독촉해서 터미널2에 내리니 1시20분이다. 2시20분에 비행기 날아가는 데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줄 서 있던 곳은 비즈니스라서 다시 이코노미로 돌격하고..내 생애 그렇게 뛰어본 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 났다.
그 때 난 이곳이 이집트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를 괴롭힌 이집트인의 박시시. 역이용하자.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
그렇게(?) 난 무사히 비행기를 타러 들어왔다. 내가 아부다비로 가는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체크인한 사람이었고, 내가 들어오자마자 체크인 창구가 닫혔다는 공지가 떴고 boarding time이 진행되는 와중에 무사히 들어왔다.
탑승 직전에 이집트의 봉이 김선달을 만났다. 이리저리 너무 뛴 탓에 목이 타들어가는 거 같아서 탑승구 바로 앞의 가게에서 물을 사려고 했는데 물 하나가 150파운드란다. 난 당연히 15파운드라는 말인 줄 알고(일반 상점에선 5파운드다.) 15파운드를 내밀었더니 150이랜다. 황당했지만 이미 택시비로 400을 써서 돈이 돈 같지 않았던 난 플렉스를 하고 탑승했다.
그렇게 무사히 한국으로 귀환했다. 역시 이집트! 안심하고 마음이 풀어졌던 중생에게 ‘여기가 어디?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마라’는 교훈까지 남겨준 고마운 이집트!
* 이집트 여행 총평!
이집트 여행은 불닭볶음면 같다. 진짜 힘든데, 땀 나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분노가 차오르는데 그래도 맛있다. 그래서 또 생각난다.
사기 칠 궁리만 해대는 삐끼들과 예상치 못한 박시시의 습격. 그리고 개고생의 콜라보가 있지만 한 번 다녀오면 잊지 못할 여행터. 여러 유적이 주는 웅장함과 잊지 못할 지중해의 풍경까지. 인정한다. 나는 이미 중독되었다. 그래서 조금 편한 여행지나 관광지를 찾는 사람들에겐 함부로 추천하기 어려운 여행지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한테 물었다. 왜 이집트를 좋아하냐고. 이집트의 여러 유적과 유물에는 세월의 흔적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나는 이집트보다 이집트가 견뎌온 세월을 좋아하는 것 같다. 온갖 풍파를 견디고도 형체를 유지한 유물, 또 목이 잘리고 팔이 하나 잘려도 우리 앞에 전시된 그 유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웬지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진다.
지중해도 마찬가지였다. 수천 년의 세월동안 이 땅을 얻기 위해,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정말 수많은 인간들이 목숨을 바쳤겠지만 그리고 정말 치열하게 싸웠겠지만 지중해는 고고하게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그 세월이 좋다. 그리고 그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이집트가 좋다.
그래서 아마 나는 또 저주에 빠진 것처럼 다시 또 이집트에 가게 될 것 같다.
만약 다시 가게 된다면 또 여행기 형태의 기록으로 남겨보겠다.
이제 이만 끝!
p.s
집에 와서 짐을 정리하다 채 쓰지 못한 유심칩을 발견했다. 버릴까 싶었지만..
2025년 4월 6일...? 설마..유통기한?
또집트의 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