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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당당하지 못한 ‘뉴스타파’ 인용 보도

조본좌 2013. 5. 23. 17:00

KBS의 당당하지 못한 ‘뉴스타파’ 인용 보도

KBS, 조세피난처 보도 인용하며 <뉴스타파> 호명 애써 회피… “KBS출신 뉴스타파 대표에 대한 반감”


대안언론 뉴스타파가 해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1차적으로 공개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방송3사의 보도는 뉴스타파 보도를 전달하는 수준에 그쳤다.

뉴스타파는 2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제탐사언론인협회(ICIJ)와의 공동 취재 결과, 해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이 245명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1차적으로 이수영 OCI 회장 부부, 조중건 전 대한항공 회장 부부, 조욱래 DSDL 부자가 조세피난처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고 전했다.

뉴스타파의 발표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조세피난처와 뉴스타파가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고, 관련 소식들이 인터넷과 SNS를 도배했다. 뉴스타파가 인터넷에 공개한 관련영상에는 ‘뉴스타파 고맙다’ ‘뉴스타파 대단하다’ 등의 응원 댓글이 줄을 이어 달렸다. 23일자 아침신문들도 뉴스타파의 발표 내용을 주요 뉴스로 전달했다.

그렇다면 방송3사는 이 소식을 어떻게 전했을까.

   
▲ MBC 뉴스데스크 캡처
 

MBC는 이브닝뉴스와 뉴스데스크에서 각각 한 꼭지로 뉴스타파의 조세피난처 보도를 전달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뉴스타파의 보도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고 마지막에 “불법은 아닌 만큼 탈세와 연관되어 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는 국세청의 말을 덧붙였다. 그 외엔 이브닝이슈 ‘버진아일랜드는 어떤 곳인가’ 코너에서 조세피난처 버진 아일랜드를 소개한 게 전부였다.

KBS는 7시 뉴스, 9시 뉴스, 뉴스라인, 뉴스광장, 오늘의 경제단신에서 각각 한 꼭지로 조세피난처 뉴스를 다뤘다. 하지만 뉴스타파의 보도를 단순 전달하고 한국인 명단에 포함된 OCI와 DSDL, 대한항공 측 입장과 국세청 입장을 실어 기계적 균형을 맞추는 데 그쳤다.

또한 KBS는 뉴스타파를 뉴스타파라 부르지 못하고 ‘독립 인터넷 언론’ ‘한 독립인터넷 매체’ ‘국내의 한 인터넷 매체’ ‘인터넷 언론매체’ 등으로 불렀다. 앵커나 기자가 ‘뉴스타파’라는 이름을 언급한 것은 관련 뉴스를 통틀어 ‘오늘의 경제 단신’ 코너에서 앵커가 “독립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라고 부른 게 유일했다.

   
KBS 9시 뉴스 캡처
 

뉴스타파 최경영 기자(전 KBS 기자)는 트위터에 “한 한국의 국영방송사가 뉴스타파의 보도를 받아쓰며 한 인터넷 매체라 인용했다는군요. 그 국영매체의 사장님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며 국민들에게 수신료를 갈취한다 합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KBS를 비판했다.

   
▲ 뉴스타파 최경영 기자 트위터
 

함철 KBS 기자협회장은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짐작컨대 뉴스타파 대표로 있는 김용진 선배(전 KBS 기자)에 대한 반감이 많은 사람들이 데스크라인을 이루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른 언론에서는 모두 뉴스타파라는 이름을 언급했는데 우리만 언급하지 않은 건 너무 치졸하지 않느냐, 당당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KBS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SBS는 관련 뉴스를 8시 뉴스 헤드라인에 편성해 두 꼭지에 걸쳐 전하며 KBS, MBC보다 비중 있게 보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SBS는 8시 뉴스에서 ‘탈세의 온상 조세피난처’라는 코너를 기획해 기업들이 왜 조세피난처를 애용하는 지 분석했다.

   
▲ SBS 8시 뉴스 '탈세의 온상 조세피난처'
 

이에 대해 뉴스타파 최승호 PD는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방송사들이, 그것도 공영방송사들이 중요한 이슈를 불성실하게 다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공영방송이 망가져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심지어 조선일보도 1면 톱으로 다뤘다. 방송의 건강성을 위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뉴스타파의 이번 보도에 대해 채널a는 색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의 진행자 박종진은 22일 조세피난처 소식을 전하며 “세금 줄이려고 오죽했으면 기업들이 이런 범죄까지 했을까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며 “유럽에서는 세금 줄이려고 국적을 바꾸려는 사람이 비일비재한데, 그 사람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