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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끼기’ 논란 교학사 교과서…검정기준도 안 지켰다

조본좌 2013. 9. 10. 10:47

‘베끼기’ 논란 교학사 교과서…검정기준도 안 지켰다

출처도 제대로 안 밝히고 인터넷에서 퍼와…“이념논쟁 할 수준의 교과서 아냐”


‘우편향’ 논란에 휩싸였던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검정을 통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학사 교과서는 인터넷 웹사이트나 백과사전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공신력 있는 최근의 것으로서 출처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한국사 세부감정기준을 지키지 않았다.  

역사교과서 검정을 담당하는 국사교육편찬위원회는 고등학교 한국사 세부 검정 기준으로 1) 교육과정의 준수 2) 내용의 선정 및 조직 3) 내용의 정확성 및 공정성을 제시하고 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내용의 정확성 및 공정성’ 파트 중 ‘사실, 개념, 용어 , 이론 등은 객관적이고 정확한가?’(10항)와 ‘각종 자료는 공신력 있는 최근의 것으로서 출처를 분명히 제시하였는가?’(11항) 항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향은 6일 교학사 교과서 245쪽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화장품, 박가분’ 부분과 252쪽에 등장하는 ‘고종 독살설’ 부분이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내용을 베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친일인사로 알려진 김성수의 ‘광복직전 동향(292페이지)’도 문제다. 위키피디아에는 “1940년 8월10일 일제가 동아일보를 강제 폐간시키자, 김성수는 고향으로 돌아가 1945년 8·15 광복 때까지 칩거, 은거하였다. 1941년 태평양전쟁 이후 일제로부터 창씨개명을 강요당하였으나 거절하였다. 또한 일제가 주는 작위 역시 거절하였다”고 나와 있다. 교학사 교과서에는 “1940년 8월 일제가 동아일보를 강제 폐간시키자, 사주인 김성수는 고향으로 돌아가 광복 때까지 은거하였다. 일제로부터 창씨개명을 강요당하였으나 거절하였고, 일제가 주는 작위도 거절하였다”고 나온다. 몇몇 부분만 빼고 그대로 베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교학사 교과서 260쪽에 등장하는 제2차 조선교육령 5항 중 2번째 항목인 ‘한국인에게 한국어 필수화’ 부분은 위키피디아를 ‘잘못’ 베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원문에 등장하는 국어는 일본어를 의미하는데, 위키피디아에 ‘한국어’로 잘못 표기된 것을 교학사 교과서가 그대로 베꼈다는 것이다. 일제가 조선말과 글을 말살하는 정책을 펼쳤다는 일반의 상식과 완전히 배치되는 내용이 실린 셈이다.

   
▲ 교학사 교과서 인용 출처 부분
네이버 백과사전의 오류를 그대로 베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교학사 교과서 243쪽 사료탐구 도움 글에는 “일제는 1912년 토지조사령에 이어 조선민사령·부동산등기령 등을 반포하여 토지조사 사업을 추진하였다”는 문장이 나온다. 토지조사령은 1912년 8월, 조선민사령·부동산등기령은 1918년 3월에 반포되었으므로 이는 사실과 다르다. 관련 사실을 잘못 서술한 네이버 한국민족대백과사전 ‘토지제도’ 항목의 서술을 그대로 옮겼다는 것이다.

나아가 교학사 교과서는 네이버나 구글 등 포털 사이트에서 사진을 가져오고 출처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6일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는 외부 인용사진의 58.3%(561개 중 327개)를 인터넷 포털에서 인용했다”며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근현대사 4~5단원에서는 각각 무려 67.5%(148개중 100개), 82.7%(87개중 72개)를 인용했다”고 밝혔다. 교학사 교과서의 사진 출처는 구글이 204개, 네이버가 75개, 네이트가 23개, 티스토리가 18개 등이었다. 구체적인 출처 없이 사이트 이름만 밝혀놓아 진위 여부도 판가름하기 어렵다.

유머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글을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42년 6월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 한 일본 발언 비판의 출처는 ‘디시인사이드’로 나와 있다. 김태년 의원은 “임시정부 독립운동 소식을 전하던 '이승만 단파방송문'을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등 정확한 사료를 표시하고 고증해야 할 사료탐구 자료에도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 출처 : 김태년 민주당 의원실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검정을 통과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검정기준 10항은 교과서가 ‘정확한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사실, 개념, 용어, 이론 등을 제시’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교학사 교과서에는 검증 없이 인터넷 내용을 그대로 베낀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검정기준 11항은 각종 자료는 공신력 있는 최근의 것이어야 하며, 출처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교학사 교과서는 인터넷 상의 자료들을 쓰면서 출처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민주당 김태년 의원실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검정기준의 ‘내용의 정확성 및 공정성’부분배점이 100점 만점 중 40점을 차지한다”며 “다른 교과서는 인터넷에서 긁어온 경우 전체 주소를 다 써두었는데 교학사는 이런 식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걸 그대로 갖다 썼다”고 꼬집었다. 이어 “검정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 국사편찬위원회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세부검정기준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은 “검정기준에 사진이나 그림의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며 “다른 교과서도 간혹 인터넷에서 자료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지만 이 교과서는 유독 심하다. 왜 검정을 통과시켜줬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하 회장은 이어 “고대사 부분에도 40년 전에 쓰던 ‘부족’, ‘부족장’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등 새로운 개념에 대한 이해가 없다”며 “교과서를 정확하게 쓰기 위해 자료를 탐색하고, 원 자료를 검토할 역량 자체가 안 되는 사람들이 교과서를 쓴 것 같다”고 말했다.

국사편찬위원회 편사기획실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기준에 따라 검정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며 “다시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 유기홍 의원은 “교학사 교과서는 이념논쟁을 할 교과서 수준도 되지 못한다”며 “이번 국정감사에서 국사편찬위의 심사 채점 결과를 비롯해 평가 과정의 공정성을 철저하게 검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