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세금 들여 실체없는 전투기 사는 꼴 못본다”
“막대한 세금 들여 실체없는 전투기 사는 꼴 못본다”
공군 예비역 등 차기전투기 F15 도입 반발 확산…정치권도 “부적합 기종, 가격만으로 결정 안돼”
미국 보잉사의 F-15SE가 차기전투기(F-X) 사업의 유력 후보 기종으로 굳어져 가는 움직임과 관련해 역대 공군총장들과 몇몇 국회의원들까지 반대 의사를 밝히고 나서 주목된다.
유로파이터(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 스텔스 기능을 갖춘 F35A(록히드마틴), 그리고 F-15SE(보잉사)가 F-X사업에
입찰했지만, 유로파이터와 F35A는 총사업비 8조 3000억 원을 초과하는 금액을 적어내 사실상 탈락했다.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총사업비 8조 3천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 차기 전투기로 선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방사청은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F15SE를 단독 후보로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이하 방추위)에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방추위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 주재로 추석연휴 이후인 25~26일 열릴 예정이며, F15SE의 차기 전투기 선정 여부가 이날의 방추위에서
최종 결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이한호 예비역 대장 등 역대 공군참모총장 15명은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공군회관에서 ‘국가 안보를 위한 진언’이라는 건의문을 작성하고 박근혜 대통령, 국회 국방위원,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보냈다.
공군 예비역들은 건의문에서 “F-15SE는 1970년대에 제작된 구형전투기를 기본모델로 하여 개조 개발할 계획으로 아직 생산된
적이 없는 설계상의 항공기로 개조의 효용성에 많은 의문성이 제기되고 있는 기종”이라며 “국민들은 8조 3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여 아직 실체도 없는 4세대 전투기를 확보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는 점은 공군 예비역들의 주장대로 F35A를 구매하는 것이 한국군에 이득이 될 것인가이다. 공군 예비역들은 건의문을 통해
“스텔스 기능을 갖춰야 북한의 조밀한 방공망을 뚫고 은밀하게 침투하여 북의 핵위협을 제거할 수 있고 주변국 위협에도 대비할 수
있다”며 스텔스 전투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스텔스로 무장한 주변국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략무기인 스텔스기를
확보하는 것이 답”이라며 박정희 대통령이 69년 최신예 전폭기인 팬덤 F-4D를 도입한 이후 북한의 공중도발이 일체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기술이전’을 고려하면 F35A 도입이 한국군에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F15SE가 노후 되었다는 문제제기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F35A를 사자는 건 더 위험한 발상”이라며
“F35A는 기술이전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 공군이 현재 한국형 차기전투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서 차세대 전투기로부터의 기술
이전이 필요한데, F35A의 경우 기술이전에 많은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예산을 늘릴 수 있을지 없을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공군 예비역들은 대통령이 국가안보차원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 국방예산 범위 내에서 사업간 예산을 조정해 스텔스기능을 구비한 차기 전투기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백윤형 방사청 대변인은 1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예산을 늘릴 수 없다는 입장을 이미 밝혔다”며 “2006년 이후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예산 증대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06년 이전에는 개략적인 예산 규모를 정해놓고 가격
협상을 한 뒤 집행을 승인하면 예산이 확정되는 방식이었다면, 2006년 이후 사업이 승인되면 총사업비가 확정되는 식으로 정부
예산관리 지침이 바뀌었기 때문에 예산을 늘리려면 사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은 1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방사청은 행정절차상 예산 증대가 어렵다는 입장인데, 상식적으로 행정절차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전 참모총장은 “성능이 좋으면 비싸도 살 수 있고, 가격이 싸도 성능이 떨어지면 못
사는 것인데, 방사청은 가격 하나만 가지고 구입을 결정하려고 한다”며 “우리는 가격이나 성능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방사청은 행정절차상 안 된다는 입장만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업 재검토’가 필요한 걸까. 이희우 충남대 군수체계종합연구소장은 “공군 참모총장들 지적대로 단순히 가격만 가지고
결정하는 건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며 “F15SE는 실제 있는 비행기도 아니며 이런 비행기는 다른 나라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더라도 기종 선정을 다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군은 딜레마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공군의 노후한 전력을 개선하기 위해 F35A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사업 재검토가 이루어질
경우 상당기간의 전력공백이 예상되며 재검토를 한다고 해서 F35A를 선정할 수 있다는 보장도, 예산확보가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이한호 공군참모총장은 “재검토한다고 해도 어떤 결론이 나올지 미지수고, 따라서 최대한 빨리 전력 보강을 해야 한다는 게
공군의 입장이다”며 “예비역들 입장에서는 때려치고 다시 하고 싶지만 공군의 입장도 있으니 그렇게 주장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재검토보다는 가격에만 의존하지 말고, 종합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치권에서도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F15SE는
앞으로 4~50년간 우리의 영공을 지킬 차세대 기종의 핵심성능인 스텔스 기능이 없어 부적합하다”고 지적했다.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
역시 “현재 있지도 않은 비행기이고 스텔스 기능도 약하고 그런 면에서 가격 조건에다 대수를 맞추다 보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장병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F15SE가 우리 영공 방어 능력에서 차세대 기종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역대 공군참모총장들이 반대하는 상황을 정부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도 “임무수행
능력, 군 운용적합성, 수명주기 비용, 경제적·기술적 편익의 4개 평가 항목 중 오직 경제적 항목에 의해서만 기종이 결정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