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기사

한전, 밀양 송전탑 ‘공사재개’로 답은 정해져 있다?

조본좌 2013. 9. 20. 09:27

한전, 밀양 송전탑 ‘공사재개’로 답은 정해져 있다?

한전 ‘밀양 송전탑’ 설문조사하며 편향적 문항 논란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선로 공사를 두고 설문조사를 실시했지만, 편향적인 설문조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9월 17일 페이스북에 밀양 송전탑 관련 설문조사 링크를 올렸다. 한전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한전이 지금 가장 많이 고민하고 늘 마음이 무거운 사안이 바로 밀양 송전선로 공사”라며 “공공재인 전기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공사 재개가 시급한 상황이다. 설문 조사로 '공사 재개'에 대한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밝혔다.

   
한전이 실시한 설문조사 문항
하지만 설문조사 내용이 공개되자 이내 SNS는 한전의 설문조사를 비판하는 글들로 가득 찼다. 설문조사 문항이 ‘공사재개’만을 염두에 두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설문조사의 문항은 연령이나 성별을 묻는 질문 외에 사실상 “밀양 송전선로 공사재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세 가지이다. 첫째, 공익적인 차원에서 일부 밀양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 둘째, 송전선로 공사는 반대측 밀양주민들과의 대화는 병행해 진행해야 한다. 셋째, 전력수급에 어려움이 따르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반대측 주민들과 합의한 뒤에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 즉 세 가지 문항 모두 결국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는 내용이고, 공사 자체에 반대하는 의견은 반영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전 페이스북에는 수백개의 비판 댓글이 달렸다. 누리꾼들은 “설문조사 문항이 잘못된 것 같다. 편파적이다” “문항 자체가 한전의 의견에만 치우쳤다” “페이스북 통해서 여론동원 하는거냐” “어떻게 설문조사 풀이 찬성, 보수적 찬성, 중립적 찬성 등 전부 찬성 풀인가요” “원전부실 등에 의한 전력부족 사태에 대해 진지한 사과와 반성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등의 의견을 올렸다. 한 누리꾼은 트위터를 통해 한전의 설문조사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 계의 신기원’이라고 말했다.

   
한전 페이스북에 달린 누리꾼들의 댓글들

한전이 편향적인 설문조사로 비판을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한전은 작년 9월 부산․경남개발처가 주민 7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주민 3분의 2 이상이 송전탑 건설의 필요성을 지지하고 있다는 식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설문조사는 고압 송전선로가 이미 건설 중인 부산 기장군 정관면 521명과 밀양시 청도면 184명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로,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시 상동·부북·산외·단장면 등 4개면 주민들은 제외한 내용이었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한전은 이미 공사에 합의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결과를 이용해 외부에 여론호도용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편, 이번 설문조사에 서는 응답자의 52%인 784명이 공사는 재개하되 대화는 병행해야 한다고 대답했고, 37%인 553명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주민들과 합의한 뒤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반면 공익적인 차원에서 반대를 무릅쓰고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11%인 165명에 그쳤다.

논란이 커지자 한전 측은 페이스북 댓글을 통해 “이번 조사는 중단을 거듭해온 밀양 송전선로 공사에 재개를 어떻게 하느냐를 묻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래서 공사 백지화 등은 보기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한전 측은 비속어 표현이 많다는 이유로 누리꾼이 단 댓글 중 일부를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