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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밀양 송전탑 공사재개 ‘명분’ 있나

조본좌 2013. 10. 3. 21:06

한전, 밀양 송전탑 공사재개 ‘명분’ 있나

“전력난 해결 위해 송전탑 건설 필요”… “보상 아닌 생존권·안전의 문제”

한전이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를 선언함에 따라 반대 주민들과 한전 간의 물리적 충돌이 우려되는 가운데, 한전이 무리하게 공사를 밀어붙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전은 1일 새벽 여섯시부터 단장면 바드리, 동화전 마을 등 송전탑 공사 현장에 직원과 인부들을 투입했다. 경찰 1200여명도 투입됐다. 한전이 반대주민들과 밀양 765KV 송전탑반대대책위(이하 대책위)에 “금주 내 공사 재개”라는 입장을 밝힌 지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한전(사장 조환익)은 1일 오전 10시 반 대국민호소문을 발표해 밀양 송전탑 공사재개를 선언했다. 한전이 내세우는 이유는 전력난이다. 한전은 “내년 여름철 전력피크에 신고리 원전 3,4호기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더 이상 공사를 늦출 수 없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한전은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전과 대책위는 지난 5월 29일 40일 간 공사를 중단하고, 한전 추천 3인, 대책위 추천 3인, 여야 추천 3인 등 9인의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전문가협의체는 우회송전 및 지중화 등 대안을 검토한 후 국회 산업위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한전과 대책위는 산업위의 권고를 따르기로 했다. 한전은 “6대 3의 다수결로 우회송전과 지중화가 어렵다는 압도적 결론이 나왔다”며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대 주민들과 대책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책위는 전문가협의체가 애초에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한전 위원들이 전문가협의체 회의에서 전력당국의 기존 보고서를 베낀 보고서를 내놓았고, 대책위 위원들이 이에 항의해 회의에 불참하면서 협의체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협의체 위원장이 회의를 소집하지 않은 채 이메일로 의견을 묻고, 이 결과를 국회에 보내 날치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회는 협의체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채 양측이 대화하라고 권고했다.

대책위 위원으로 참여했던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보고서를 그대로 베끼면서 반대 측 위원들이 제기한 안은 전혀 검토가 안 됐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공개 TV토론을 제안했지만 한전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신고리 원전의 안정적 가동을 위해 공사를 서둘러야 한다는 한전의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재 신고리 3호기는 핵심부품인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 위조 사실이 드러나 성능 테스트를 거치는 중이며 불합격으로 부품 교체가 결정될 경우 1년 이상 준공이 유예된다. 곽빛나 대책위 간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신고리 3호기에 위조부품이 있는데 내년 여름에 가동한다는 것은 위조부품을 그냥 쓴다는 말이냐”고 말했다.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는 반대주민들이 생존권을 외치는데 한전은 보상으로 대답하기 때문이다. 한전은 전력수송을 위해 송전탑을 반드시 건설해야 하며, 보상 확대를 통해 갈등을 풀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1800여 가구에 400만원 씩 주겠다는 보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반대 주민과 대책위는 안전과 생존권을 주장하며 삶의 터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한다. 반대주민들과 대책위가 송전선을 땅에 묻는 지중화, 밀양구간을 우회하는 우회송전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준한 대책위 공동대표는 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주민들은 (400만원 보상안에 대해) 가구별로 400만원 씩 걷어 줄 테니 받고 물러가라고 한다”며 “한전은 반대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보상금을 더 주겠다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시골 어르신들에게 이 문제는 단순한 재산권이 아니라 생존권의 문제”라며 “송전탑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보상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이 2일 11시부터 농성장을 철거하고 공사를 재개할 것이라 밝히고, 반대 주민들 역시 물러서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어 물리적 충돌이 예상된다. 대책위는 2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할 것이며, 문화제와 1인시위, ‘탈핵희망버스’ 행사 등을 통해 반대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