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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기자들에게 “송전탑 건설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써라”

조본좌 2013. 10. 13. 08:15

MBN, 기자들에게 “송전탑 건설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써라”

“5대 5로 보도했는데도 주민입장 받지 말라 지시”…보도본부장 “사실무근. 기억 안 난다”

MBN이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문제를 두고 기자들에게 밀양 주민들 입장을 배제하고 한전의 입장에 맞춰 기사를 쓰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29일 MBN은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를 앞두고, 한전과 주민 측의 입장을 보도했다. <[앵커큐브] 첨예한 '밀양 송전탑 갈등' 쟁점은?> 을 통해 “반대 주민들은 발암 가능성을 우려하며, 선로를 땅에 묻는 지중화를 고집하고 있지만, 한전은 전자파 피해가 과학적 근거가 없고 지중화도 공사기간이 길고 사업비가 많이 들어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기자 리포트 <밀양 송전탑 공사 임박…무덤까지 파고 ‘결사항전’>을 통해 “구덩이를 파고 다 죽을 것”이라는 주민 할머니의 입장과 “불법행위는 엄정 대응할 것”이라는 이성한 경찰청장의 입장을 동시에 전했다.

 
▲ 9월 29일자 MBN 뉴스 갈무리.

하지만 이 뉴스가 나간 이후 보도본부장이 “왜 주민 이야기 들려주냐. 한전이 공사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쓰라고 했잖느냐”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사회부 기자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사회부장으로부터 받았다. “오늘 (일요일) 기사 지적. 밀양 송전탑은 할머니 입장을 너무 들어서 리포트 했음. 앞으로 송전탑은 건설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기사 방향을 처리하길”

   
MBN 사회부 기자들이 지난 9월 29일 받은 문자 
MBN의 한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밀양 송전탑 관련해 기자들은 주민 편도 아니고 한전 편도 아니고 공정하게 5대 5로 취재를 해왔다”며 “그런데 회사에서 밀양 관련해서 한전에 우세하게 보도하고 가급적 주민입장은 받지 말라고 했다. 간부회의에서 결정되어 부장 등을 통해서 구두로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MBN 사측에서 밀양 송전탑 관련 기사에 개입하려 한 사례는 또 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지난 10월 7일자 MBN 8시 뉴스 큐시트에는 보도국장이 직접 수정한 기사 제목이라며 <[집중취재-밀양] 외부세력 누가, 언제 개입 했나>는 제목이 등장한다. 하지만 보도국장이 수정하기 이전의 제목은 ‘구덩이 파줬다…외부세력 논란’이었다. 

결국 7일자 MBN 뉴스에는 보도국장이 수정하기 전의 제목과 유사한 제목의 기사가 나가긴 했지만(“자해 구덩이 파 줬다”…또 외부세력 논란), 기자들이 ‘논란이 있다’ 정도로 처리한 부분을 보도국장이 나서 ‘외부세력’이 확실히 개입했다는 식으로 처리하려고 시도한 것은 사안을 왜곡하거나 일방의 의견만을 확대보도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MBN의 한 기자는 이에 대해 “밀양에 아예 외부세력이 있다는 식으로 단정해서 뉴시스나 조선일보 기사를 그대로 베껴 쓰라는 지시”라고 말했다.

   
10월 7일자 MBN 큐시트

여기서 더 나아가, MBN이 밀양 송전탑 공사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을 취재로부터 배제시켰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10일 MBN은 <[밀양] “원한다”, “안 원한다”…누구 말 믿어야>를 통해 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강행과 관련해 “국민들이 송전탑 공사를 원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반대 주민과 시민단체는 “아니다”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놨다며 “이젠 여론조사마저 믿지 못할 지경이 됐다”고 전했다.

MBN의 한 기자는 “한전 여론조사도 못 믿겠고 주민들도 못 믿겠고 혼란스럽다는 입장을 5대 5로 실었는데 그 보도가 나가자마자 또 지시가 내려왔다”며 “밀양 관련 취재는 사회부 기자들이 쓰지 말고 경제부 기자가 쓰라는 지시였다”고 밝혔다. 이후 11일 MBN은 밀양 관련 기사를 두 건(<한전, 송전탑 현장 인근 농가 일손돕기 나서>,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 경찰에 분뇨 뿌려…한전 “공사 확대”>) 내보냈는데, 이 두 건의 기사는 경제부 기자가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 10월 10일자 MBN 갈무리

이에 대해 이계삼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은 “밀양 송전탑 관련해 나오는 기사를 보며 반언론적인 행태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으나, 실제 그랬다니 놀랍다”며 “기자정신도 없는 싸구려 깡패집단이 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조현재 MBN 보도본부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사실이 아니다”며 “누가 그런 말을 했냐”고 되물었다. 본지 기자가 지난 9월 29일 보도에 대해 언급하자 “밀양 보도가 한 두 건이 아니지 않냐. 잘 모르겠다”며 “나는 임원실에 있는 사람이라 보도에 대해 관여하고 있지 않다. 보도국장하고 이야기해보라”고 말했다.

이동원 보도국장 역시 본지와의 통화에서 “없는 말 만들지 마라”며 “우리는 누구 입장에서 쓰거나 그러지 않는다. 모든 부분에서 공정하게 하는 것이 기사의 모토이자 지론”이라고 밝혔다. 기사 제목을 수정한 것에 대해 묻자 이 국장은 “보도국장이 일일이 기사를 고치고 그런 자리가 아니다. 기사 제목을 수정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한 사회부 기자들을 배제하고 경제부 기자들에게 밀양 송전탑 관련 기사를 맡겼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냐. 쓸데없는 이야기”라며 “이런 보도에 사회부 경제부 그런 게 어딨냐. 그 기사를 누가 쓰든 경제부 기자들이 쓰면 한전 입장에서 쓰는 거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