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기사

‘법외노조’ 위기의 전교조, 참교육으로 돌파해야

조본좌 2013. 10. 23. 22:48

‘법외노조’ 위기의 전교조, 참교육으로 돌파해야

“전교조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한다”…해직교사 품지 못하면 ‘참교육’도 없다

오는 10월 24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법외노조가 된다. 지난달 23일,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해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규약을 한 달 이내에 시정하지 않으면 설립을 취소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에 전교조는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규약 개정 시정명령 총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 68.59%의 조합원들이(투표율 80.96%)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지난 99년 합법화 된지 15년 만에 법외노조가 될 위기에 처했다. 전교조가 합법노조의 지위를 잃게 될 경우 노동조합법 상에서 노조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다. 교육부, 시·도 교육청과 단체교섭을 맺을 수 없으며, 전국적으로 200여명의 노조 전임자들이 모두 학교로 복귀해야 한다.

재정 상황도 어려워진다. 법외노조가 되면 조합비를 조합원 월급에서 원천징수할 수 없게 돼 조합원들에게 일일이 조합비를 걷어야 하므로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생긴다. 노조사무실 임차보증금, 행사 지원비, 사무실 비품 등의 명목으로 교육부로부터 지원받던 52억 원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전교조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조합비를 CMS로 걷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 1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청운동 사무소 앞에서 전교조 16개 시도지부장과 임원들이 박근혜 정부의 전교조 설립 취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조윤호
 
보수진영 “전교조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한다”

전교조는 보수진영의 비판과도 맞서야 한다. 보수진영은 전교조의 투쟁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전교조 교사들이 연가를 쓰면서 수업을 거부하는 연가투쟁을 하고, 수업에 신경 쓰는 대신 거리로 나선다면 부실한 수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교육선진화운동 등의 보수 시민단체는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교조의 집단 연가투쟁은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불법투쟁”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도 동참했다.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22일 국감중반 대책회의에서 “수능이 보름정도 남은 시점에서 전교조 소속 선생님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투쟁하고 있어 학생들과 학부모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투쟁을 중단하고 학생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말했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새누리당 간사인 김희정 의원도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노동자이기 전에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며 대정부 투쟁을 한다면 선생님이길 포기하는 것”이라며 “전교조의 원래 목적이 학생의 학습권 보장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있음을 잘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몇몇 언론도 비슷한 논조로 전교조를 비판하고 있다. “전교조의 강경 투쟁으로 학습권이 침해되는 등 학교 현장의 피해가 우려된다”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는 물론 학교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한국경제) “학생들의 수업권이 저해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수능을 앞둔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서울경제) “평일 집단 연가투쟁을 벌일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 몫이 된다”(국민일보) “전교조가 법외 노조 상태에서 총력 투쟁에 몰두할 경우 학교 현장의 혼란과 갈등이 확산될 우려도 크다”(동아일보)

사회문제에 적극 행동하는 것도 교육의 일환

전교조 관계자들은 이러한 비판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학생의 학습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선에서 연가권을 행사할 것”이라며 “2006년 교원 평가 반대 때를 포함해 그동안 세 차례 진행한 연가 투쟁에서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신영 전교조 서울지부 혁신학교특별위원장은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집회를 할 때도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야간이나 주말에 하고, 수업이 있는 낮에는 수업을 맡지 않는 노조 전임자들이 활동한다”고 밝혔다.

김영주 전교조 대전지부장 역시 “교사들이 연가를 쓰면 일주일 전쯤 신청을 하고, 학교도 강사를 구해 수업결손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 한다”며 “보수언론은 전교조가 연가 투쟁을 하면 수업결손이 발생해 학교에 혼란이 벌어질 것처럼 묘사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교육의 의미를 협소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박신영 위원장은 “단순하게 교과서 내용만 가르치는 것이 교사가 할 일이 아니다”며 “어떤 정책이 위에서 내려온다고 그냥 따르는 게 아니라 찬성이든 반대든 의사표명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일종의 교육”이라고 밝혔다. 이수호 전 전교조 위원장은 “교사는 단순 지식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며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 터졌을 때 교사들이 행동하는 것도 인성교육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해직 교사 포용, 참교육과 무관하지 않아

전교조 교사들의 투쟁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은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해 제기되는 일반적인 비판과 다르지 않다. 철도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시민들의 교통에 불편을 준다거나 언론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시청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식의, ‘이기적인’ 노동조합 활동이 다른 이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리다.

전교조가 이러한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참교육’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 전교조의 시정명령 거부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참교육을 위한 싸움이라는 것이다.

송원재 <교육희망> 편집위원(전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2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전교조 해직교사 9명은 사학의 비리를 고발하거나 경쟁적 일제고사, 특권교육 등에 반대하다 해직된 교사들로 전교조가 내건 참교육의 가치를 앞장서서 실천한 사람들”이라며 “이들을 배제하라는 요구는 곧 전교조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이런 이유로 조합원들이 시정명령을 거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부영 전 서울시 교육위원은 “전교조가 해직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면 교사들이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을 비판하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해직자 배제’ 요구가 전교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박근혜 정부의 준비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신영 위원장은 “보수정권은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거나 경쟁적 제도를 도입하는 등 참교육을 저해하는 교육정책을 내놓을 것이고,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해직자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에 대비해 전교조에 시정명령을 내린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는 조합원들의 결정에 따라 정부의 시정명령을 탄압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전교조는 21일 ILO(국제노동기구)에 고용노동부를 제소했다. 또한 이달 안으로 유엔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UN특별보고관의 방한을 요청할 계획이다. 고용노동부가 예정대로 24일 노조설립취소를 통보할 경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소송과 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40명 규모의 공동변호인단도 꾸렸다.

김영주 전교조 대전지부장은 “보수진영은 연가투쟁을 걱정하지만 전교조 지도부와 현장 교사들은 연가 투쟁 외에 다양한 방식의, 학부모와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참교육이라는 전교조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투쟁 방식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노조 설립 취소할 수 있나 없나
노동부 “법령에 따라 설립취소”…전교조 “시행령 자체가 위법”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둘러싼 핵심쟁점 중 하나는 ‘행정관청이 노조 설립 취소를 할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노조법 시행령’이 있다.

고 용노동부는 전교조 법외노조화의 근거로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을 내세우고 있다.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설립 신고증을 교부받은 후 설립신고서의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 행정관청은 시정을 요구하고 나아가 노조설립 취소 통보를 할 수 있다.

방하남 고용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전교조에 시정명령을 내리며 “그동안 자율 시정 기회를 충분히 줬기 때문에 이번에도 위법 상태를 시정하지 않으면 법령에 따라 ‘노조 아님’ 통보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반 면 전교조는 시행령 자체가 위법이라는 입장이다.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지난 1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시행령은 반드시 모법에 근거를 둬야하지만 노동조합법 속에는 근거법률이 없다”며 “따라서 이 시행령은 위법적이며, 이런 취지로 이 시행령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전교조 자문변호사를 맡고 있는 강영구 변호사 역시 “우리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기본권이 제한되는 효과와 범위를 최소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과잉금지원칙”이라며 “그런데 현재 노동부는 해직자 9명을 이유로 6만 조합원의 노조의 지위를 박탈하겠다고 한다. 과잉금지원칙 위반”이라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를 둘러싼 논란에 동참했다. 인권위는 22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성명을 통해 “고용노동부가 시정요구의 근거로 제시한 위 시행령 조항은 우리 위원회가 이미 인권침해성을 인정하여 삭제할 것을 권고한 제도”라며 “좀 더 약한 수준의 제제조치가 가능함에도 조합원 자격 때문에 노동조합 자격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단결권과 결사의 자유를 침해 한다”고 밝혔다. 

인 권위가 언급한 권고는 2010년 9월 30일 인권위 결정이다. 당시 인권위는 노동조합설립신고제도는 본래 “노동조합의 지도·감독에 철저를 기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된 제도인데, 현행 제도는 노조 설립을 통제하는 허가제로 기능할 위험과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 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의 ‘설립취소통보’ 부분을 삭제하고, 노조가 시정요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설립취소 외에 다른 제재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위원장 개인의 성명이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다”며 “전교조에 대한 방침은 바뀐 게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