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프랑스 방문, 미술관 관람이 ‘문화외교’?
박 대통령 프랑스 방문, 미술관 관람이 ‘문화외교’?
해외순방 때마다 반복되는 ‘동향 보고’…“청와대 하는 말 그대로 받아쓰나”
박근혜 대통령이 서유럽 순방 중 프랑스를 방문함에 따라 4일·5일자 아침종합신문과 주요 방송사들이 박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루었지만, ‘동향 보고’ 이상의 보도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유럽 순방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오후 6시 40분(현지시각) 쯤 첫 방문국인 프랑스에 도착했다. 박 대통령은 3일 프랑스
첫 일정으로 현지 한류팬 모임인 ‘봉주르코레’의 드라마 파티에 참석해서 현지인의 k-pop 공연과 댄스공연을 관람하고, 오르세
미술관에 들러 미술작품을 관람했다. 4일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프랑스경제인연합회 인사 240여명이 참석한 한·프랑스
경제인 간담회에 참석했고, 이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박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을 전하며 박 대통령의 일정을 일일이 소개하고 박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한
‘동향 보고’를 했을 뿐, 박 대통령이 왜 프랑스에 들렀고 무슨 성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보도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혜 대통령의 ‘문화외교’다. 언론은 박 대통령이 프랑스 방문의 컨셉을 ‘문화외교’로 정하고, 박 대통령이 문화외교를 펼쳤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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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자 MBC 뉴스 갈무리 |
“박 대통령은 일요일인 3일에는 ‘문화외교’에 힘썼다”(동아일보)
“19세기 인상파 작품의 보고인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해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관람하면서 문화를 통한 상호 이해와 소통을 강조하는 등 문화외교를 이어갔다”(서울신문)
“이번 순방에서도 문화외교가 돋보이고 있다”(MBC)
“문화 융성에 대한 의지가 읽힌다”(KBS)
“한국 드라마의 열기가 가득한 유럽 문화의 중심지 파리에서 문화융성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프랑스 3대 박물관인 오르세 미술관에도 들렀다. 문화융성을 위해 세계 문화관광대국인 프랑스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YTN)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문화외교’의 내용이란 박 대통령이 드라마 파티에 들러 공연을 보고, 참가자들에게 “나도 어릴 때 샹송을 많이 따라 불렀고 프랑스 영화를 즐기고 있다”며 “두 나라가 문화를 매개로 더욱 가까워지길 바란다”고 말한 것, 오르세 미술관을 들러 미술품을 관람한 것이 전부다. 어떤 언론도 ‘문화외교’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는다. 미술관에 들러 미술품을 관람하고 드라마파티에서 공연을 보는 게 왜 문화외교일까. 언론은 박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도 박 대통령이 한복을 입고 패션쇼에 올라간 것을 ‘문화외교’라고 칭했다.
박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둘째 날 일정은 ‘경제외교’였다. 박 대통령은 5일 경제인 간담회를 방문해 연설을 했는데, 연설 중에 ‘양국 간 창조경제협력’을 강조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르노 전기차 체험관’에 방문해 자동차회사인 르노가 LG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아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전기차 사업이야말로 창조경제의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언론은 일제히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 세일즈’에 나섰다고 보도하며 박 대통령의 행보와 프랑스 방문 성과를 ‘창조경제’와 연관시켰다. 박 대통령과 올랑드 대통령이 친환경자동차, 항공, 정보기술, 제약, 생명과학, 로봇, 스마트그리드 분야에서의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 ‘창조경제 세일즈’의 성과라는 식이다. 언론은 박 대통령이 방미 때 미국 기업인들과 만났을 때도 ‘창조경제 세일즈’를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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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자 세계일보 4면 |
“프랑스는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9월 친환경자동차 등 미래 신산업 34개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와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 신성장 동력 프로그램이다”(동아일보)
“한국과 프랑스가 창조경제 협력의 실천을 통해 공동번영의 미래를 열어가자는 제안을 프랑스어 연설로 제시해 친근감을 극대화했다”(세계일보)
“박 대통령은 일찍부터 문화 미디어 등 창조산업을 육성해온 프랑스와 창조경제 분야의 협력 기반을 구축하는 세일즈 외교를 적극 펼칠 예정”(YTN)
대통령의 행보 하나하나를 ‘창조경제 세일즈’에 끼워 맞추다보니 다음과 같은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도 나온다. YTN은 박 대통령의
오르세 미술관 방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도 늘 창조경제라는 것이 꼭 연구실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박물관 이런 곳에서 영감이 나온다고 말해왔다며 그런 차원에서 미술관을 방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은 박 대통령의 ‘외국어 연설’을 추켜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경제인 간담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20분 간 불어로
기조연설을 했고, 올랑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마무리 발언을 불어로 했다. 몇몇 언론은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영어 연설’을,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중국어 연설’을 칭찬하며, 발음이 좋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까지 덧붙여놓았다.
“갸타즈 프랑스 경제인연합회 회장은 ‘박 대통령의 불어는 흠잡을 데 없다’며 웃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교민은 ‘불어에서 어려운 r 발음과 연음을 잘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조선일보)
“박대통령이 연일 선보이는 프랑스어 실력은 교민사회에서도 화제다. 박 대통령의 프랑스어 실력이 30년 전 6개월 유학을 했던 경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실력이라는 것”(동아일보)
“루이 갈루아 한-프 최고경영자클럽 프랑스 측 위원은 ‘정말 존경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름다운 불어를 구사한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중앙일보)
“박 대통령은 양국 경제인들의 협력 강화를 당부하는 연설문을 20여 분에 걸쳐 또박또박 프랑스어로 낭독하며 좌중을 사로잡았다.
과거 유학 경험 등 프랑스와 각별한 인연을 가진 한국 대통령의 프랑스어 연설에 양국 경제인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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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자 동아일보 6면 |
언론의 취재관행에 따라 대통령의 순방 시 ‘동향 보고’ 이상의 보도가 나오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강윤 시사평론가는 “보통 대통령 순방 시 풀 기자단이 취재를 하는데, 풀 기자단이 대통령의 동선을 나눠서 취재를 맡는다. 예컨대 티타임 할 때는 어느 기자가 맡는다는 식으로 세부적으로 역할이 나뉜다”며 “조각조각 난 취재물들을 모아서 기사를 쓰기 때문에 동향 보고 이상의 결과물이 나오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