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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운동은 말이나 글 아닌 목숨 걸어야 하는 운동”

조본좌 2013. 11. 23. 12:11

“언론운동은 말이나 글 아닌 목숨 걸어야 하는 운동”
언론노조 25주년 기념식… 국정원 특종 한겨레 정환봉 기자, 민주언론상 수상

“기자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노동조합에 너희는 노조가 아니라고 말하고, 밀양 주민들의 땅에 이건 너희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땅이 아니라고 말하는 시대, 기자들이 기사를 쓰려면 외압이 들어오고 검사가 수사를 하려면 사표를 써야 하는 이 시대,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이기에 기자라는 정체성을 지키는 것의 의미가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22일 저녁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3회 민주언론상 시상식에서 국정원 사건을 특종 보도한 정환봉 한겨레 기자가 ‘민주언론상 본상’을 차지했다. 정환봉 기자는 지난 1월 국정원 여직원이 오늘의 유머에 댓글을 달았다는 사실을 최초로 보도했고, 국정원 댓글작업에 ‘원세훈 국정원장 지시 강조말씀’이 있었다는 점을 폭로해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3회를 맞는 올해의 민주언론상 후보에는 정환봉 한겨레 기자 외에도 밀양 송전탑 문제를 전국적 이슈로 부각시킨 경남도민일보, 족벌사주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이룬 한국일보 노조, 언론 투쟁의 현장에서 벌어진 각종 법률 분쟁과 해고 및 징계를 막기 위해 법적인 싸움을 전개한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등이 후보에 올랐다. ‘조세피난처’ 단독보도를 통해 전두환 추징금 환수까지 이끌어낸 뉴스타파도 후보에 올랐다. 방송분야에서는 추천된 후보가 없었다. 심사를 맡은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극심한 언론탄압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 중 경남도민일보가 보도부문 특별상을 받았고, 신인수 법률원장이 활동부문 특별상을 수상했다.

김종철 위원장은 “민주언론상 규정인 ‘언론민주화와 언론노동운동 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기준으로 심사숙고 한 끝에 심사위원 모두 민주언론상 본상에 한겨레신문 지부 정환봉 기자를 선정했다”며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이라는 국기문란 사건의 실체를 지속적으로 파헤친 정 기자의 노고는 민주주의 수호라는 언론민주화의 최우선적 과제에 가장 근접해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한 “뉴스타파도 공동수상으로 결정했으나, 이 소식을 들은 지방에 있던 강성남 언론노조위원장이 올해부터 규정이 바뀌어서 신청하지 않은 팀은 상을 주지 않기로 했다기에 아쉽게 공동수상이 취소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한국일보가 승리 거둔 건 틀림없지만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일치된 의견이 있었다. 자유언론과 공정언론을 만드는지, 한 해쯤 더 지켜보자는 말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보도부문 특별상은 경남도민일보에게 돌아갔다. 표세호 경남도민일보 차장은 “밀양 주민들은 8년 싸움을 해오며 언론사마다 성향까지 다 파악해버렸다. 한 농성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출입금지 언론사 목록이 적혀있을 정도”라며 “주민들은 ‘경남도민일보는 보도 잘해주지’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도 기분이 좋거나 뿌듯하지 않다. 오히려 부끄러워진다”고 밝혔다. 표 차장은 “밀양 주민들에게 대한민국 언론은 그런 존재였다. 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면 칠순 어르신이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숨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밀양 송전탑 취재는 이런 부끄러움에서 시작됐다. 언론은 밀양 할매‧할배들의 절규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활동부문 특별상을 수상한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깊은 강이 있다”며 “많은 언론인들이 사실과 진실 사이의 강을 메우기 위해 교각을 세우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 강에 빠지는 것을 보며 고통스러웠지만, 그 강을 함께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밝혔다. 신 원장은 “변호사가 언론상을 수상하는 것은 기자가 올해의 판사가 되는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다시는 나 같은 부적격자가 수상하는 일이 없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본상을 수상한 정환봉 한겨레 기자는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 어려운 이 시대에 자기 정체성을 쉽게 지키는 분이 딱 한 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라며 “한 사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다른 사람들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이 시대, 그래서 '민주언론상'이라는 이름 앞에 붙은 민주라는 단어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정 기자는 “국정원 사건 1월부터 취재했다.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다”며 “기자로서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시민으로서는 불행한 시기를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기 존재를 증명하게 만들도록 열심히 기사 쓰겠다”고 말했다.

이날 전국언론노조 창립 제25주년 기념식도 함께 열렸다. 하지만 축하의 메시지보다 현재 언론상황에 대한 개탄과 투쟁의 목소리가 더  많이 나왔다.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은 기념사를 통해 “이 땅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우울한 자화상처럼 1만2천여 언론노조 동지들은 결코 희망만을 말할 수 없는 현실을 서 있다”고 밝혔다. 강 위원장은 “수구신문과 종편, 그리고 갈수록 침묵하고 보수화되는 공영방송의 삼박자가 지금의 언론현실을 다시 20~30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언론자유를 위해, 특권과, 반칙, 부당함과 싸워 나가자”고 말했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역시 축사를 통해 “언론은 ‘천부의 권력’이라는 말을 들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 계신 분들에게 천부란 민중이자 노동자, 농민이었으면 좋겠다”며 “한 곳으로 힘을 모아내는 투쟁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80만 조합원들이 거꾸로 가는 역사 바로세우고 이 땅의 민주주의 바로세우기 위해. 언론노동자들의 힘 있는 투쟁에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기념식에 참여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언론을 우리 말로 ‘딱소리’와 ‘딱맞이’라고 한다. 딱소리는 깨우쳐지는 것으로, ‘정론’을 뜻한다”며 “딱맞이란 아무리 이야기해도 깨우쳐지지 않으면 몸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 소장은 “이 땅의 언론운동은 딱맞이, 말이나 글로 하는 운동이 아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기념식 중에 언론노조 모범 조직 및 모범 조합원상 시상식도 열렸다. 모범조직상은 풀뿌리신문지부 옥천신문분회, 방송사비정규지부 KBS분회, 전주방송지부가 수상했다. 모범 조합원상은 김혜주 한겨레신문지부 교육부장, YTN지부 김종욱(11대 지부장), 하성준(11대 사무국장), 임장혁(11대 공정방송추진위원장) 조합원과 고용우 경향신문지부 부지부장, 오은지 전자신문지부 11대 부지부장이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