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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3사 뉴스에 ‘박근혜 퇴진’ 분신은 없다

조본좌 2014. 1. 3. 10:34

방송3사 뉴스에 ‘박근혜 퇴진’ 분신은 없다

[비평] JTBC만 ‘특검요구 분신’ 소식 전해…조선일보는 ‘개인 빚, 신용불량’ 강조

“국민들은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계시다. 모든 두려움은 내가 다 안고 가겠다. 국민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 주셨으면 한다”

2013년의 마지막 날 분신한 한 남성이 남긴 ‘다이어리’의 내용이다. 그는 1일 오전 7시 55분경 숨졌다. 하지만 1일 방송3사 뉴스에 이에 관한 소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던 이남종씨는 31일 오후 5시 30분 경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라고 적힌 7m 길이의 플랜카드 2개를 고가 밑으로 내던지고 몸에 불을 붙였다. 이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숨졌다. 이씨의 죽음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고, 장례식장에는 시민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이씨가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라는 플랜카드를 던지고 분신했다는 점에서 이씨의 분신에는 정권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씨가 숨진 장소에서 발견된 다이어리에는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의 17줄짜리 메모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가 남긴 유서를 본 박주민 변호사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대선 당시 정부의 불법적인 선거개입 정황을 비판하고, 이를 개인적 일탈로 치부한 박근혜 정부가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고 적었다.

   
▲ 배우 한정수씨 트위터 갈무리
하지만 1일 저녁 지상파 방송3사 뉴스에서는 이씨의 소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박근혜 퇴진과 특검을 외치며 분신한 남성의 이야기도, 서울역에서 사망한 남성의 이야기도 없었다. 배우 한정수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서울역 분신, 결국 이런 일 생길 줄 알았다. 더 어이없는 건 어느 뉴스에서도 이 사건은 보도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글을 남긴 이유다.

이씨의 분신도 죽음과 전하지 않는 방송3사와 달리 <JTBC 뉴스9>는 1일 ‘서울역 분신 남성 숨져…수첩엔 ‘안녕들하십니까’ 메모‘에서 “서울역 앞 고가도로. 한 남성이 특검 수사를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시위를 한다. 잠시 후 이 남성 주변에서 불길이 크게 치솟는다”며 분신 소식을 전했다. 이어 “경찰은 이 씨가 일주일 전 보험 수급자를 동생 명의로 바꿨고, 신용 불량 상태였다며, 빚과 어머니 병환 등을 이유로 분신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며 “하지만 이 씨가 현장에 남긴 수첩에선 '안녕하십니까'라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적은 17줄 짜리 메모가 발견됐다”고 분신 이유에 대해 전했다.

   
▲ 2일자 JTBC 뉴스9 갈무리

몇몇 언론은 경찰의 주장을 근거로 이씨의 죽음이 ‘생활고’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씨가 빚과 어머니 병환 등 생활고 때문에 분신했다는 것이었다. 이씨의 동생이 경찰 조사에서 “형이 분신 일주일 전 보험 수급자를 나로 바꿨다. 신용불량 상태에서 가족이 진 빚 독촉까지 받아 힘들어했다”고 진술한 점, 경찰이 “이씨의 형이 7, 8년 전 사업 때문에 이씨 카드로 3,000만원을 빌렸고, 이씨는 대출금 상환을 독촉하는 고지서를 자주 받았다”고 밝힌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중앙일보는 2일 10면 기사를 통해 이씨가 “형의 빚을 떠안아 신용불량 상태”였으며 “일부 시민단체가 이씨가 남긴 글과 현수막 등을 근거로 그를 ‘민주열사’로 추대하기로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역시 2일 12면 기사를 통해 “경찰이 이씨가 경제적 문제로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좌파 진영에서는 이씨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조선일보의 온라인판 조선닷컴은 1일 ‘박근혜 비판하는 유서를 썼으나 알고 보니 개인 빚이 많았고 보험 명의까지 바꿨다’는 내용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서울역 분신 남성 사망, 온 몸에 스스로 불 지르고 ‘최근 보험 가입’” “서울역 분신 남성 사망! ‘박근혜 사퇴’ 적었지만 본인 빚이…” “서울역 분신 사망, 문성근이 알려…보험 명의 바꾼 뒤 몸에 불 붙여” 이씨의 분신 원인을 박근혜 정부 비판이 아닌 개인 빚이나 신용불량 등 생활고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제목들이다.

   
▲ 이씨의 사망 소식을 전한 조선닷컴 기사목록

언론의 이런 보도태도에 대해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가족의 동의 없이 이 분의 경제사정이나 부채, 개인 사생활 관련 내용을 마구 공개 유포하고 보도하며 애써 이 분이 죽음으로 주장하려던 박근혜 대통령 사퇴와 국정원 사건 특검 도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막고 돌리려는 한심한 작태에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경찰조사에 입회해 이씨의 유서를 직접 본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남대문경찰서가 유가족의 정식 의견청취하기도 전에 빚이나 보험 등의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뿌렸다. 동생의 진술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씨는 동생이 아닌 형과 같이 살고 있었고 채무관계 역시 형과 관련 있으므로 형의 이야기를 들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원하는 대답이 하나 나오자 그거 가지고 경찰이 보도자료를 쓰고, 언론들이 이를 그대로 받아쓰기 했고 영악한 언론은 이를 확대 재생산했다”며 “이씨 죽음의 진짜 의도가 밝혀지는 걸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는지 의심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