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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가족모임 피난용’ 영화, 마이플레이스”

조본좌 2014. 2. 1. 20:06

“설 연휴 ‘가족모임 피난용’ 영화, 마이플레이스”

[인터뷰] 영화 ‘마이플레이스’ 박문칠 감독…“미혼모 가정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발견”

설 연휴, 또 하나의 가족 영화가 개봉했다. 30일 개봉한 박문칠 감독의 ‘마이 플레이스’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은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족이 아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없다. 2006년, 박문칠 감독의 여동생은 캐나다에 공부를 하러 갔다가 아이를 임신한 채로 돌아왔다. 영화는 박 감독의 조카, 소울이의 탄생과 소울이를 키우기 위해 새롭게 탄생하는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박문칠 감독은 2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동생이 임신했을 때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운 지점이 있었다”며 “이런 고민을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동생의 임신에 대한 고민을 풀기 위해 찍기 시작한 다큐는 어느 새 싱글맘에 대한 다큐가 되었다. 영화 작업은 7년 간 이어졌다. 카메라를 들기 시작할 때도 딱히 결론을 생각해둔 것은 없었다. 박 감독은 “어쨌거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살아나가는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밝혔다.

- 영화를 만든 계기는.
동생이 처음 임신했을 때,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운 지점이 있었고 그런 고민을 풀어보고 싶었다. 그 즈음 몇 편의 가족 다큐를 보았는데, 집안의 내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당시만 해도 싱글맘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 싱글맘이라는 소재는 가족 입장에서는 민감한 이야기다. 영화 제작에 대해 가족들의 거부감은 없었나
나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일방적으로 폭로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어, 찍는 것은 허락하셨고, 작품으로 공개하는 것에 대해선 좀 더 생각을 해보자는 입장이었다. 편집을 하면서 동생과 조카가 살기에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숨기거나 쉬쉬하기보다 내놓고 대화를 해보자는 방향으로 설득했다.

- 영화를 찍으며 결론을 생각해둔 것이 있나
뚜렷하게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씩씩하게 잘 살아나가는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가족은 다섯 명이다. 박 감독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박 감독, 박 감독의 동생(박문숙), 그리고 조카 소울이. 문숙은 아버지 없이 홀로 소울이를 키우기로 결심했고, 가족들은 의기투합했다.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생각할 때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싱글맘들은 부모와 의절하거나, 내 자식이 아니라는 취급을 당하거나 서로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집안의 분위기가 원래 인권이나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감수성의 배경에는 가족이 겪은 차별에 대한 경험이 있다. 박 감독의 어머니는 컴퓨터를 전공했으나 한국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캐나다로 건너왔다. 아버지는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민주화운동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었다. 이들 가족은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소외감을 겪기도 했다. 이런 차별의 경험이, 싱글맘을 이해하게 한 힘은 아니었을까.

“어머니는 본인이 경험하신 부분도 있고, 그래서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동생의 임신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한국사회가 워낙 관용이 없는 사회다보니 거기에 대해 걱정하는 것일 뿐, 그러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 이 영화에는 여러 가지 차별이 등장한다. 사회와 역사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 이야기를 해도 사회적으로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어야 사람들에게 볼 이유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만 하기는 힘들 것 같고, 그렇게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리 삶 자체가 사회적으로 규정받을 수밖에 없지 않나.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런 삶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어떤 모습을 돌아볼 수 있을지 고민했다.

- 동생이 싱글맘으로서 겪은 차별엔 어떤 것이 있나

동생은 많은 경우 한국에는 주로 1년만, 키울 때만 있었고 나머지는 캐나다에 갔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사회와 부딪칠 일은 없었다. 다만 간접적으로, 신문기사에 댓글이 달리는 걸 보거나 미혼모 카페나 들어가 사례들이나 이야기들 들으면서, 정말 심각하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싱글맘을 문란한 여자 취급하거나 무책임한 사람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 말이다.

- 싱글맘들을 불러 마이플레이스 시사회를 했다고 들었다. 싱글맘들의 반응은 어땠나
부럽다고 말씀하신 분들이 많았다. 가족이 이해하는 상황, 캐나다로 갈 수 있었던 상황은 흔한 기회는 아니다. 또 다른 반응은 자기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는 것이다. 들은 바로는 싱글맘의 6-70프로는 의절하거나, 관계가 있다 해도 서로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을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끼셨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마이플레이스를 싱글맘을 자녀로 둔 부모세대가 같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들이 싱글맘인 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어려울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영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특징은 한국의 현실을 비판하되 캐나다를 ‘이상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속 캐나다는 싱글맘에 대한 시선이 관용적이라는 점에서 한국보다는 선진국이지만, 역시 많은 문제를 드러내는 사회다.

“우리보다 소수자에 대한 관용, 인정은 있는 편이다. 하지만 먹고사는 것은 캐나다에서도 여전히 힘들다. 캐나다에서도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캐나다 지낼 때 알고 지내던 친구들 대부분은 도시에 일자리가 없어서 미국이나 해외로 떠났다. 인문계 졸업생들은 교사공무원으로 몰려들고, 경쟁률이 높아서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교육학을 전공한 문숙도 교사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다.

- 영화를 보면서 캐나다가 대단히 좋은 사회라는 생각은 안 들더라.
경제적인 문제들은 우리보다 더 심하다고 생각한다. 캐나다에서도 공공부문에 긴축이 많아지고, 동생도 아이를 키우면서 지원을 받기 위해 1년 넘게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아야 했다. 동생 역시 어머니의 도움이 없으면 공부도 하고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국가복지가 다 커버를 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영화 마이플레이스 포스터
- 소울이 다니는 캐나다 속 보육원에도, ‘정상가족’의 모습이 많다.
나도 찍으면서 놀랐다. 아, 소울이가 부딪칠 현실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애 나은지 얼마 안 되는 상황이라 부모가 다 같이 있는 경우가 많아 그랬던 것 같다. 좀 크면 이혼하는 가정도 많고, 캐나다에서 이혼가정도 이상한 취급을 받지 않는다.
캐나다에서도 싱글맘이 계층, 인종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동생이 가는 싱글맘 파티 같은 데 가보면, 싱글맘이 부유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저소득층이나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계층이 많았다. 싱글맘이라는 말에 계층적인 편견도 덧씌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종적으로 보면 흑인이거나 히스패닉 등 인종적 소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캐나다 사람들도 관용은 있지만 속으로는 약간 낮은 계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소울’이다. 영화 마케팅 할 때 소울이는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서로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던 가족들이 소울이의 탄생 이후 하나의 ‘가족’으로 재탄생하는, 즉 ‘마이 플레이스’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 소울이 가족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이 있나

‘전지전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큰 역할을 했다. 그 전에는 식구들끼리 서로의 이야기를 할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소울이의 탄생으로 우리 가족에게 ‘공동의 미션’이 주어졌다. 초반 1년 애를 다 같이 키우면서 서로 역할도 나누고 힘도 합치고, 소울이와 육아 등 이야기할 거리도 생겼다. 무엇보다 웃음이 많아졌다. 무뚝뚝하게 지내다가 웃을 일도 많아졌다. 또한 가족들이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면서 더욱 친해지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 소울이가 이제 9살이다. 아빠가 왜 없냐는 이야기를 한 적은 없나

아빠랑 왜 안 사냐는 식으로 질문한 적은 없다고 들었다. 소울이 입장에서는 아빠 없이 엄마랑 같이 살고 아빠, 엄마, 삼촌이 같이 있는 이런 가족 형태가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 걱정을 하고, 어른들의 걱정을 투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친구들이 물어봐서,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 차원에서 물어본 적은 있다고 한다.

마이플레이스 속 등장인물은 주류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박문칠 감독도 그랬다. 명문대학을 나와 국내 유명포탈에서 일을 하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그만두고 영화감독의 길을 걸었다.

“영화감독의 길을 선택하면서 차별이나 억압으로 괴로워한 적은 없었다. 다만 주변에서 조심스럽게 ‘나이’ 이야기를 한다. 네 나이에는 무엇을 해야하지 않나 등 나이에 대한 압박이 있다. 결혼에 대한 압박도 있다. 비주류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한국사회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질적인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면에서 ‘이제 독립영화 한편 찍었으니 상업영화 찍어야 하지 않냐, 천만감독 되어야 하지 않냐’는 말도 듣는다. 성공의 코스가 정해져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인식이 어떤지 한 번씩 확인하게 된다”

- 영화감독을 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큰 반대는 없었고, 믿어주신 편이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자 조금씩 ‘그래도 돈을 벌어야 되지 않냐’ ‘지금쯤이면 승부수를 던져야 되지 않냐’(웃음) 등 그런 걱정들을 하셨다. 그런 말을 전혀 안 하시는 분들이니 그런 걱정이 경각심으로 다가오긴 했다.

- 포탈에 계실 때는 무슨 일을 하셨나
영화 서비스 등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맡았다. 원래 대학 때 영화동아리 활동도 했었고 관심은 있었는데 마케팅 일을 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자극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며 ‘마이플레이스’를 찾았나
계속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다. 찾았다 싶다가도 다른 상황 때문에 다른 데로 가거나,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일시적이나마 영화, 다큐멘터리에 어느 정도 용기를 얻은 부분이 있다. 저나 이야기가 인정을 못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공간에도 조금 더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이 든다.

- 차기작 계획은. 상업영화 찍으실 건가
당장은 상업영화 찍고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마이플레이스를 찍으면서 캐나다랑 한국 사이에 껴 있는 존재들,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탈북자나 국제결혼을 한 사람 등 테마적으로는 ‘경계자들’에 대한 관심들이 생겼다.

마이플레이스에는 다양한 ‘공감’의 코드가 있다. 싱글맘들은 싱글맘을 이해해준 가족들에게 ‘멋지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하고, 박 감독의 어머니에게 ‘꿈은 뭐였냐’고 묻기도 한다. 유학이나 이민의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은 정체성이나 소속감의 문제에 공감하기도 한다. 이들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부러움과 질시를 보낼 뿐 이들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 고민하는 20-30대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문제에 많이 공감한다.

“설에 개봉한 이유는 가족들하고 같이 와서 보기 좋은 영화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 큰 자식들이 부모와 같이 봐도 좋을 것 같고, 묵혔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학교를 가야하냐고 질문하는 자녀 등 자녀교육으로 속을 썩이는 부모들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손자를 돌보는 노년층이 봐도 많이 공감할 것 같다”

마이플레이스는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 한 사람의 ‘플레이스’는 고정된 위치, 즉 어떻게 하면 정상적인 자리에 위치하느냐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관계망 속에서 규정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그래서 이 영화를 가족모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나이도 많고 결혼도 안하는 사람들이 편견과 정상성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가족모임 피난용’ 영화로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