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네 식구들’의 이유 있는 ‘막장’ 엔딩
‘왕가네 식구들’의 이유 있는 ‘막장’ 엔딩
“시청률 위해 막장 전개하다 해피엔딩 급마무리”…“전가의 보도 ‘가족애’ 문제”
높은 시청률로 시청자들의 주말 저녁을 책임졌던 KBS <왕가네 식구들>이 지난 16일 50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하지만 황당한 결말로 마지막까지 ‘막장드라마’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첫 방송된 뒤 6개월 동안 화제를 몰고 다녔던 주말연속극 <왕가네 식구들>이 16일 종영했다. 반복되는
불륜과 가족들 간의 갈등으로 막장 드라마라는 논란을 일으켰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왕가네는 빼앗겼던 집을 다시 되찾았고,
고민중이 오순정의 딸 미호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오순정과 재혼하는 등 등장인물들의 사랑은 모두 이루어졌다.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시청자들은 ‘해피’하지 않은 모양이다. 왕가네 마지막회가 방영되고 시청자게시판과 SNS에는 <왕가네>의 결말이 황당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왕가네>의 결말이 비판받은 이유는 해피엔딩이 갑작스럽게 전개됐기 때문이다. 49회까지 고민중과 오순정, 그리고
고민중의 전 부인 왕수박은 재혼과 양육문제 등을 두고 대립했고 이 갈등은 마지막회 후반부까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왕수박이 고민중의 눈물을 보고 개과천선한 뒤 오순정을 찾아가 자신의 아이들을 부탁하고, 유학을 떠난다. 오순정은 이를 받아들여
고민중과 재혼하고, 왕수박의 두 딸 애지와 중지를 맡아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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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주말연속극 ‘왕가네 식구들’ |
꼬일 대로 꼬인 족보도 시청자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마지막회에서 왕가네의 둘째 사위 허세달의 어머니 박살라와 셋째 사위 최상남의 아버지 최대세가 재혼한다. 고민중과 재혼한 오순정은 최대세의 처제다. 가족관계로 얽힌 등장인물들이 사랑에 빠지고, 이들이 모두 결혼에 성공한 결과다. 그 결과 드라마 등장인물 전원이 가족이 됐다. 왕가네 둘째딸 왕호박이 “촌수가 어떻게 되지? 복잡하니 그런 거 따지지 말자”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황당함의 끝은 ‘30년 후’ 왕가네의 모습을 그린 엔딩이었다. 종영 5분 정도를 남겨두고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30년 후’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백발에 노인 분장을 한 등장인물들이 “100세 시대라더니 진짜 100살까지 살 줄 몰랐다” “병원 장례식장이 다 망해간다” 등의 대화를 나눈다. 젊은 배우들이 골골거리며 노인 연기를 하는 모습은 이 드라마가 연속극인지 시트콤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누리꾼들은 시청자 게시판과 SNS에 ‘막장 엔딩’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누리꾼들은 “오로라공주가 정상으로 보인다” “개그콘서트 미리 본 기분” “30년 뒤에도 기억될 막장 엔딩” “느닷없는 30년 워프 후 무병장수와 일부이처의 꿈을 시전한 드라마” 등의 평을 남겼다.
<왕가네>의 엔딩은 무리한 전개에 따른 무리한 결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작가의 개입이 명확히 보여 시청자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것”이라며 “작품이 내적인 흐름에 의해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벌려놓은 여러 가지 일들을 수습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 번에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무리한 엔딩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50회 가까이 작품을 보았던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왜 봤지’라는 허탈한 심정일 것”이라며 “‘30년 후’라는 설정을 마련한 이유도 문제 상황들이 30년의 거리를 둬야 해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또한 “결말이 권선징악이라도 ‘막장’이 될 수 있다”며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40부 정도를 속 터지는 상황을 반복하고, 끊임없이 막장요소를 끄집어낸 뒤 나머지 10부를 통해 착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러다보니 마지막엔 시간이 없어 대충 정리한다”고 평가했다. 이앙금과 왕수박은 이기적인 ‘민폐’ 행동을 반복하며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했으며, 드라마 속에서는 자작 납치극, 며느리 오디션, 강제 임신 등 현실성 떨어지는 막장 요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시청률은 이미 뽑을 대로 뽑았으니 마지막에 급하게 정리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로 시청자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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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가네 식구들’ 마지막회 갈무리 |
김헌식 문화평론가 역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상황을 극단적으로 벌려놓은 뒤 개연성 있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상황이 극단화되면서 시청자들은 이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해서 드라마를 계속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드라마는 주인공들이 갑자기 화해를 한다거나 시간을 훌쩍 점프하는 식으로 사건이 봉합된다”며 “막장의 요소가 많은 드라마일수록 그런
유형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모든 갈등과 대립을 전부 ‘가족 간의 사랑’으로 해결하는 방식도 문제다. 어머니로부터 이유 없는 차별을 받던 왕호박이 아이를
유산한 뒤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장면이나 바람 핀 남편을 ‘그래도 부부’라는 이유로 이해하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전가의 보도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해법으로 가족애를 내세운다. 가족이니까 참아야지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주말드라마는 보수적인 가치관을 많이 담고 있는데, 문제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가족을 위해 참아야한다는 식으로 갈등을 봉합할 뿐 해법을 모색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가족 구성원들이 가족 제도
하에서 받는 고통을 부각시켜 눈길을 끌지만, 구체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선 고민이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