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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탈북자 탄원서’ 공개했다 기사 내린 이유는?

조본좌 2014. 4. 9. 16:54
문화일보, ‘탈북자 탄원서’ 공개했다 기사 내린 이유는?
탈북자, 비공개 증언 北에 유출됐다며 탄원서 제출했으나 문화일보가 탄원서 공개…“출처 밝힐 수 없다”

유우성씨 사건 재판에서 증언한 탈북자 A씨가 증언 내용과 관련 탄원서가 유출돼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고초를 겪었다며 탄원서 내용을 보도한 문화일보를 고소했다. 문화일보의 관련 기사는 현재 홈페이지 등에서 삭제됐다.  
 
A씨는 지난 7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유우성씨 항소심 재판에서 증언한 증언내용을 유출한 사건 관계자들과 탄원서 내용을 유출한 2차 유출자 문화일보를 고소한다고 밝혔다. 
 
A씨의 기자회견 내용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토대로 상황을 정리해보자. A씨는 지난해 12월 6일 국정원의 요청으로 유우성씨 간첩사건의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검찰은 유씨 남매가 두만강을 건넜으며 두만강의 국경 경비초소인 ‘뱀골초소’를 통해 북한을 출입했다고 생각했고, A씨는 재판에서 일반적인 도강의 방식이나 초소에 대해 증언했다. 

관련 인터뷰기사 : <“北 가족 위험해 기사 내려달라했는데‥”>
                       <“국정원서 언론 인터뷰 종용…해준 것 없이 뒤통수만 쳐”>
 
한 달이 지난 1월 6일 A씨는 자신의 증언 내용이 북한 보위부에 알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북한에 있는 A씨의 딸이 전화를 걸어 북한 보위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전한 것이다. 보위부 요원들이 A씨가 ‘남조선 재판소에 가서 공화국의 위신을 훼손시키는 행위를 하고 있다’며 딸을 추궁했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1월 14일 자신의 증언이 유출되었음을 깨닫고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한다.

A씨는 탄원서 제출 이후, 증거조작 논란이 불거진 2월 중순 국정원이 탄원서 제출 경위에 대해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A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위험해질까봐 인터뷰를 못한다고 했다. A씨는 “국정원이 다른 언론사 두 곳과 더 인터뷰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일보가 지난 1일 1면 머리기사 <탈북자 ‘비공개 법정증언’ 北에 유출>에서 A씨의 법정 증언이 유출됐으며 A씨가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내용을 보도한다. 문화일보는 3면 기사에서 A씨 탄원서 전문까지 공개했다. 
 
A씨는 8일 CBS ‘시사자키’와의 인터뷰에서 담당 기자와 사회부장에게 기사를 내려달라고 했지만 이후 기사 두 건이 더 나갔고 탄원서 원본까지 공개했다고 밝혔다. A씨는 “(당일 저녁) 7시에 전화가 와서 ‘자기네 홈페이지에서는 이미 기사 몽땅 다 삭제했다’ 하더라. TV에서 다 나오는데 나는 어떻게 살라는 건가”고 말했다. 
 
A씨는 인터뷰에서 ‘탄원서가 어떻게 유출됐느냐’는 질문에 “심증은 간다. 사회부장도 내가 (기사 나가는 것을) 승인한 걸로 알고 있더라”며 “내가 승인을 안했는데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 그 사람 좀 알려달라고 묻자 알려줄 수 없다더라”고 밝혔다. A씨는 문화일보 보도 이후 가족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고 이에 법정 증언을 유출한 사건 관련자들과 탄원서 내용을 보도한 문화일보를 고소했다. 

  
▲ 4월 1일자 문화일보 1면. 왼쪽은 1일 배달된 신문, 오른쪽은 이후 기사가 삭제된 아이서퍼 갈무리.

 
▲ 4월 1일자 문화일보 3면. 왼쪽은 1일 배달된 신문이고 오른쪽은 이후 기사가 삭제된 아이서퍼 갈무리.

박민 문화일보 사회부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A씨가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부분 중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며 “A씨는 기사가 올라간 뒤 항의를 했지만 이후에 기사가 두 건 더 올라가고, 탄원서 전문도 올라갔다고 말하는데, 기사는 동시에 올라갔다”고 말했다. 
 
A씨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기사에 대해 항의하자 문화일보가 누군가 기사를 ‘승인’했다는 듯이 말했고, 그 사람이 누군지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민 사회부장은 “내가 명색이 사회부 10년, 정치부 10년 한 사람인데 취재원에 대해 그렇게 임의로 이야기 했겠나”며 “두 가지 부분이 사실이 다르고, 법적인 조치를 취할지 생각 중”이라고 강조했다. 
 
박 부장은 탄원서의 출처에 대해 “기자니까 잘 알 것”이리며 “기자가 취재원에 대해 말할 순 없다”고 말했다. 박민 사회부장은 이외에 질문에는 “알아서 정리해서 쓰라”며 답하지 않았다.
 
현재 해당 기사들은 문화일보 홈페이지와 아이서퍼(신문 스크랩 서비스) 등에서 모두 삭제된 상태다. 문화일보는 A씨의 항의를 받고 기사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 부장은 “본인의 요청에 따라 내부 협의를 통해서 기사를 내렸다”고만 답변했다. 
 
문화일보는 4월 2일자 사설 <간첩사건 비공개 증언의 北유출 경로 반드시 밝혀내야>에서 “비공개 재판임을 믿고 ‘양심과 위증의 벌’까지 선서한 탈북자 증인이 ”천만번 후회 한다“고 자책하기에 이르렀고, 북에 남은 자녀의 안위를 위협하는 지경이 됐다”며 “공안 당국은 물론 사법부까지 유출 과정을 밝혀내야 할 책임이 무겁다”고 밝혔다. 

  
▲ 4월 2일자 문화일보 39면 사설

하지만 A씨의 말대로라면 문화일보는 본인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탄원서 내용을 그대로 공개해 A씨의 가족들을 위협에 빠뜨렸다. A씨의 고소로 인해 “비공개 증언의 유출를 경로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던 문화일보의 사설은 본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자아비판이 되어버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