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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시민과 기자는 다 나가라”는 경찰, 가만히 있으라

조본좌 2014. 5. 21. 09:11

“일반시민과 기자는 다 나가라”는 경찰, 가만히 있으라

[기자수첩] ‘세월호 진상규명’과 ‘대통령 퇴진’ 외치는 시민들 ‘범법자’ 취급한 경찰, 언론이 방해되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34주기였던 지난 18일, 청계광장과 광화문 등지에서 시민들의 ‘만민공동회’와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이 있었다. 경찰은 만민공동회 이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던 시민들을 막아섰다. 경찰은 ‘가만히 있으라’ 시민들의 행진도 막아섰고, 1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을 강제 연행했다.

각종 집회에 나가봤지만 어제처럼 참혹한 현장은 오랜만이었다. 경찰은 손에 종이 한 장 밖에 들지 않은 시민들이 기자회견 장소인 청와대 앞으로 이동하는 것을 원천 봉쇄했다. 청와대로 가는 길이 막혀 광화문 앞으로 기자회견 장소를 변경하자 수많은 경찰들이 광화문 앞 일대를 에워쌌다. 해산하지 않으면 검거하겠다는 방송은 몇 번이나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경찰은 한손에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꽃 한 송이, 다른 한 손에는 ‘가만히 있으라’는 손 피켓을 들은 학생과 시민들의 침묵행진을 가로막았다. 그들이 해산하지 않자 100여명을 강제 연행했다. 시민들의 비명과 항의소리, 경찰과의 몸싸움으로 광화문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그들이 들고 있던 꽃은 갈기갈기 흩어지고 짓밟혀 광화문 광장에 뿌려졌다.

경찰은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했다’며 해산명령을 내리고 시민들을 강제 연행했지만, 자신들이 시민들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방해했다는 점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경찰은 또한 시민들이 신고범위를 이탈했다며 해산을 명령했으나 ‘신고범위를 이탈했다 하더라도 집회나 행진을 평화롭게 진행하면 해산하거나 금지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 18일 광화문 앞에 취재차 모인 기자들이 경찰의 포위망에 갇혀 있는 모습. 사진=조윤호 기자
기자들도 수난을 겪었다. 기자회견 장소인 광화문 앞에 먼저 도착한 10여명의 시민들과 먼저 가서 취재를 하려던 10여명의 기자들은 순식간에 경찰에 의해 포위당했고 30여 분간 그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경찰은 우리를 위협이라도 하듯 점점 포위망을 좁혔다.

몇몇 기자들이 밖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경찰은 포위망을 열지 않았다. 기자들이 신분증을 보여주며 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지 설명하라고 했으나 책임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한 기자는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맞는지 모르겠다. 기자들까지 감금하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고, 다른 기자들도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뒤늦게 광화문 앞으로 오던 기자들을 경찰이 막아서면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본 경찰 간부가 경찰들에게 “야 기자들을 왜 막냐. 이 사람들(시민들)을 막아야지”라고 지시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한 외신 사진기자는 신분을 확인했음에도 경찰이 왕래를 막자 언성을 높였고, 그 결과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구로경찰서로 연행됐다(이 기자는 결국 풀려났다). 명백한 취재 방해 행위였다.

취재 방해보다 더 무서운 건 경찰의 방송 내용이었다. 경찰은 검거명령을 내릴 때마다 “일반 시민과 기자는 나가라”고 경고했다. 나가지 않은 기자들은 밖으로 끌어냈다. 기자도 경찰에 의해 네 차례나 밖으로 끌려 나갔다. 기자라고 말하면 “일단 끌어내고 나가서 확인해”라는 간부의 말이 들려왔고, 신분증을 보여주면 “검거에 방해되니까 비키라”며 밖으로 홱 밀어내는 일이 반복됐다.

경찰이 끌어내는 데도 기자들이 계속 안으로 들어오고 화단 위에서 올라가서 사진을 찍자 경찰은 화단 위에 올라선 기자들을 끌어내리려고 했다. 여러 사람들이 밀착해 있는 상황에서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화단 위에 올라있던 한 기자는 경찰을 향해 “기자들 다 나가면 여기서 무슨 짓을 해도 아무도 모를 텐데 왜 다 나가라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꼭 필요한 이유는 언론의 역할 중 하나가 공권력을 감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공권력이 행사되는 과정에서 불법은 없었는지, 혹은 인권 침해는 없었는지 감시하고 이를 위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경찰이 1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강제 연행하고 시민들이 이에 격렬히 저항했던 어제 같은 현장에서 기자들은 절대 나가면 안 된다. 기자들이 없으면 경찰이 시민들을 폭행하거나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해도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의 참혹한 현장 앞에서 기자로서 많은 무력감을 느꼈다. 눈앞에서 시민들이 끌려가는데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기록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공권력은 기자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한 셈이다. 기자들에게 기록하지 말라고, 눈을 감고 밖으로 나가라고 명령한 것이다. 경찰은 기자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다. 그런 명령은 시민들의 평화로운 행진과 추모를 막아서는 경찰들에게 되돌려져야 한다.

경찰이 이런 태도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은 “일반시민들과 기자들은 나가라”고 요구했다. ‘박근혜 퇴진’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일반 시민이 아니라 ‘특수시민’이라도 되는 걸까?

경찰은 일반시민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범법자로 규정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실제 현장을 지휘하던 간부들은 방송을 통해 “범법자들 하나하나 얼굴 다 채증해”라고 명령했다. 시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정을 위해 범법자들을 잡아가는데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으니 얼마나 방해됐을까. 하지만 경찰에게는 이들을 범법자로 규정할 권한이 없다. 집시법 위반 여부는 경찰이 아니라 사법부가 판단한다.

5월 18일 대한민국 경찰은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행동을 했다. 경찰에게는 기자들을 나가라고 할 권한도, 시민들을 범법자 취급할 권한도 없다. 가만히 있어야할 것은 경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