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게임 리뷰(2) 토니 스타크와 세 번의 “I’m iron man”
며칠 전 페북에 “왜 캡틴아메리카는 승리했고 타노스는 패배했는가”라는 주제로 어벤져스 엔드게임 리뷰를 올린 적이 있다. 캡틴아메리카 말고도 엔드게임의 또 다른 주역이 바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이다.
토니 스타크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정비공’이다. 아이언맨3에서 만난 꼬마 할리 키너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토니는 자신을 “정비공”이라고 소개한다. 스타크인더스트리를 거느린 대기업 오너에, 아이언맨 슈트를 수도 없이 개발한 천재과학자이며 히어로이지만 그는 자신을 정비공이라 소개한다. 이 말이 토니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정비공은 기계에 결함이 생기면 이를 고쳐서 더 나은 상태로 만드는 직업이다. 토니 스타크의 인생이 그랬다. 이는 캡틴아메리카와 극명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캡틴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가 “수많은 시련과 고뇌에도 불구하고 강박증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과거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강박증적으로 애쓰는 사람이다.
토니 스타크는 원래 군수산업의 수장이었다. 전쟁 범죄에 기여한다는 기자의 질문에 “세상이 완벽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무책임하고 제멋대로인 재벌2세다. 하지만 <아이언맨1>에서 그는 테러단체에 납치당하고 난 뒤 자신이 만든 무기가 테러에 이용된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 과오를 씻기 위해 군수산업을 관두고 아이언맨을 개발해서 세상을 구하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첫 번째 “I’m iron man”이 등장한다. <아이언맨1> 마지막 장면에서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다.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앞으로 세상을 구하는 일을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동안 비공개로 숨어서 활동하는 수많은 히어로들을(배트맨이 대표적이고, 스파이더맨만 해도 정체를 숨긴다) 보았던 사람들에게, 내가 아이언맨이라고 선언하고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아이언맨은 매우 신선한 매력을 지닌 히어로로 다가왔다.
그는 왜 자신의 히어로 활동을 공개했을까? 자신이 실수를 바로잡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언맨 활동을 공개한 이후에도 그는 자신이 세계평화를 위해 애쓰고 있음을 떠벌리고 다닌다. 그는 어마어마한 돈을 써가며 엑스포와 각종 박람회를 열고 자신의 기술력이 세계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광고한다.
<아이언맨2> 초반부에 그가 지닌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한 개인이 아이언맨 슈트 같은 위험한 물건을 지니고 있음을 우려해 그를 청문회장에 불러낸다. 토니 스타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있어서 미국이 안전한 거니까 내 물건 뺏을 생각하지 마세요. 난 정부를 대신해서 세계평화를 이뤄냈다고. 근데 뭘 더 바랍니까.”
캡틴아메리카는 그래서 아이언맨에게 매우 정확한 팩폭을 했다. “너는 너 자신을 위해 싸울 뿐이야.”라는 말이다. 토니스타크가 세계평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너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싸우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캡틴은 다시 한 번 토니에게 물었다. “슈트가 없다면, 넌 뭐지?”
<아이언맨3>는 토니스타크가 캡틴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이었다. <어벤져스1> 뉴욕전투의 트라우마로 인해 토니는 잠도 자지 않은 채 미친 듯이 아이언맨 슈트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또 다시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 인해 테러단체에 의해 집을 모두 파괴당하고, 겨우 목숨만 건진 채 한 꼬마 아이(할리 키너)의 집에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다시 빌런들을 막기 위해 돌아온 그는 적들을 물리친 후 자신이 만든 아이언맨 슈트를 모두 폭파시켜버린다. 가슴에 달았던 아크 리액터를 제거해서 던져버리며 “I’m iron man”이라고 말한다. 첫 번째 “I’m iron man”이 “나의 과오를 바로잡고 사람들을 구하며 살겠다는 히어로 선언”이라면, 두 번째 “I’m iron man”은 아이언맨 슈트 없이도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히어로의 의미에 대해 깨달은 선언이었다.
이런 그의 성장을 보면 <시빌워>에서 토니가 소코비아 협정에 찬성한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토니는 <어벤져스2>에서 완다의 환각에 빠져 외계인의 침공으로 지구가 멸망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울트론이라는 기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울트론은 오히려 지구를 위협으로 몰아넣는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토니는 온 힘을 다하지만 결국 소코비아 사태가 벌어진다. <시빌워>에서 MIT 강연을 마치고 나온 토니에게 한 여성이 다가온다. 그녀는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아들이 소코비아 사태 때 죽었다고 말한다. “돈이 많으니 돈으로 다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따지고, 토니는 할 말을 잃는다.
과거 토니는 청문회장에서 정부를 엿 먹일 정도로 조직의 구속, 통제에 진저리치던 사람이었다. 재벌2세로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은 채 제멋대로 살았다. 하지만 그는 실수를 반복하며 자신의 힘에 국가의 통제를 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소코비아 협정에 찬성한다. 이처럼 아이언맨은 실수에 실수를 반복하며 자신의 생각을 바꿔먹고, 조금씩 히어로로 성장해나가는 캐릭터다.
<인피니티워>는 토니 스타크에게 가장 끔찍한 결말이다. 자신의 실수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또 위협받은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거듭해서 세상을 구하려 애쓰는 그의 앞에, 자신은 살아남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버리는 결말이 펼쳐진 것이다. 쉴드의 국장 닉 퓨리는 토니에게 “너에게 있어 최악은 다 죽고 너만 안 죽는 거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이 현실로 실현되어버렸다.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우주로 따라오자 불같이 화를 낸 이유도 토니 스타크가 다른 사람의 희생을 눈앞에서 보는 것을 가장 괴로워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앞에서 먼지가 되었고, 이 사건은 그가 <엔드게임>에서 죽은 사람들을 되돌리기 위한 양자 시간 여행에 나서는 계기가 된다.
<엔드게임>에는 토니 스타크와 비슷한 캐릭터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나타샤 로마노프, 블랙 위도우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통해 블랙위도우는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내기 위해 어벤져스 활동을 시작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엔드게임 초반부에 그녀는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계속 우울해한다. 그런 그녀는 사건을 실마리가 보이자 누구보다 기뻐한다. 호크아이와의 보르미르 여행에서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인다. 다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너무나 기뻤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랙 위도우는 보르미르에 가서 기꺼이 호크아이 대신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5년 간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고 말한다. 그녀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었던 운명적 사건을 바로잡을 기회가 왔기에 기꺼이 내 목숨을 던지겠다는 기쁨에 차 있었다. 그녀의 선택은, 가족이 있는 호크아이를 대신해 희생했다기보다 자신에게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벤져스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토니 스타크의 선택도 마찬가지였다. <엔드게임> 초반부에서 타노스는 “나는 필연적인 존재다”라고 하며 토르에게 목이 잘려 사망한다. 타노스의 말대로 어벤져스는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필연적인 사건을 마주하며 할 말을 잃고, 절망에 빠졌다.
<엔드게임> 마지막 장면에서 타노스는 다시 한 번 “나는 필연적”이라며 핑거스냅을 시도한다. 하지만 인피니티스톤은 아이언맨 손에 쥐어져 있었고, 아이언맨은 “and I’m iron man”이라고 말하며 핑거스냅을 한다.
아이언맨이 히어로인 이유는 그가 슈트로 무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변화하려하기 때문이다. 캡틴아메리카가 히어로인 이유가 단지 슈퍼솔져 혈청을 맞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과 같다. 나는 필연적이라는 타노스 앞에서 “그럼 나는 아이언맨이다”라고 말하며 그를 저지하는 아이언맨의 모습은 자신이 히어로인 이유를 몸소 보여준 선언이었다.
핑거스냅에는 부작용이 있을 것이다. 타노스의 핑거스냅이 그랬듯 헐크의 핑거스냅도, 아이언맨의 핑거스탭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건을 일으킬 것이다.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를 지닌 히어로들의 활동이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는 마블의 연쇄고리를 이해한다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어벤져스1 뉴욕전투의 파장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배경이 되었고, 어벤져스2 소코비아 사태의 파장은 시빌워의 배경이 되었다.
아이언맨의 핑거스냅으로 죽지 않았어야 할 누군가 죽을 수도 있고 예측 불가능한 다른 현실들이 펼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자신의 선택이 다른 실수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그것을 회피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하고 그걸 바로잡기 위해 또 다른 애를 쓰는 히어로다. 그래서 마지막 핑거스냅은 가장 아이언맨다운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