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히어로물

엔드게임 리뷰 : 왜 캡틴아메리카는 승리하고 타노스는 패배했나

4월 24일 개봉날 본 엔드게임 리뷰를 이제야 남겨본다. 감독인 루소 형제가 공식적으로 ‘스포일러 금지령’을 해제했으니 안심하고 쓸 수 있게 됐다.

이전에 올린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전작 <인피니티워>에서 어벤져스는 타노스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완패했다. 첫째는 물리적인 패배였고, 둘째는 사상적인 패배였다. 타노스는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빌런이다. 급기야 다수와 소수의 균형을 반반으로 맞춘다.

어벤져스는 이런 타노스 앞에서 어설픈 몇몇의 희생으로 타노스와 맞서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완다는 마인드스톤을 지닌 비전을 희생시켜 타노스를 막으려 했고, 닥터스트레인지는 타임스톤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더 큰/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타노스의 사상으로 타노스와 맞서려 한 것이다. 애초에 이길 수 없었던 싸움이었다.

타노스의 사상의 정반대에 서 있는 히어로가 바로 우리의 미국대장 캡틴아메리카다. 캡틴아메리카가 비전의 희생에 반대하며 했던 말 “we don’t trade lives”는 <인피니티워>에서 타노스의 사상에 반대하는 주된 논리다. 캡틴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억압하는 조직과 집단의 규제, 통제에 반대한다.

캡틴은 <시빌워>에서 히어로들의 활동에 제약과 통제가 가해져야 한다는 ‘소코비아 협정’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법과 조직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건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는 길”이며, 그렇게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다보면 진짜 필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히어로에 통제가 필요하다는 아이언맨과 이에 반대하는 캡틴아메리카의 대립은 <시빌워>의 핵심 주제였다.

타노스는 이대로 가면 모두 망하는 예정된 미래가 있으며, 인간의 힘으로 그것을 해결할 수 없기에 우주의 절반을 먼지로 만들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급진적 공리주의자’이다. 반면 캡틴아메리카는 언젠가 모두 죽을 거라는 공포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통해 인간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자유주의자다.

타노스와 캡틴, 양측의 신념 모두 강렬하다. 두 명의 사상가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사실은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점이다. 캡틴은 <윈터솔져>에서 “자유의 대가는 크다. 그리고 난 그 큰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자칫 자신이 쌓은 명성을 모두 날려버릴 수도 있음에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미국 정부 전체와 홀로 맞서 싸운다.

타노스도 마찬가지다. 타노스는 우주의 절반을 먼지로 날려버리며 그 희생대상에 자신까지 걸었다. (루소 형제에 따르면 타노스가 인피니티워에서 핑거스냅을 한 후 놀란 표정을 지은 이유는 자신이 먼지로 사라지지 않아서라고 한다) 소울스톤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가모라를 희생시켰고, 대업을 이룬 뒤 인피니티스톤을 이용해 인피니티스톤을 파괴해버린다.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 힘을 스스로 파괴해버리고, 토르에 의해 목이 잘려 죽는다.

따라서 <엔드게임>을 대표하는 대사는 “whatever it takes”다. 몇몇을 희생시켜 타노스의 발걸음을 저지하겠다는 얄팍한 수로는 타노스를 막을 수 없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신념을 지킬 수 있다는 태도. 엔드게임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캡틴의 사상이 어벤져스 전체로 퍼져 가는 과정이었다.

대업을 이루고 죽은 2018 인피니티워 타노스에 비해 엔드게임의 빌런이었던, 과거에서 온 ‘2014 타노스’는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 2018 타노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한 자기희생의 가치를 아는 빌런이기에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겪는 아이언맨에게 존경을 표하고, 비전을 잃은 스칼렛위치를 위로한다.

<인피니티워>에서 맞붙은 타노스와 캡틴. 힘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지만, 신념의 대결을 극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런 차이는 성장과 경험의 차이로 밖에 볼 수 없다. 2018 타노스는 소중한 것들(부하인 블랙오더, 딸 가모라 등)을 잃어가며 하나하나 스톤을 얻었다. 반면 2014 타노스는 자신이 미래에 성공한 것을 알게 되었고, 과거에서 미래로 넘어와 어벤져스가 갖고 있던 스톤을 손쉽게 얻으려 한다. 우주의 균형을 위해 희생을 각오한 2018 타노스와 달리 2014 타노스는 지구에서 벌이는 싸움이 즐겁다고 말한다.

급기야 2014 타노스는 “온 우주를 산산조각 내어 원자 단위로 분해한 다음에 너희들이 모아 준 스톤으로 새 우주를 창조하겠다”고 말한다. 그 우주란 “자신의 삶에 감사할 줄 아는” 우주다. 우주를 지키겠다는 대의는 사라지고,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빌런의 모습만 남았다. 너무나 손쉽게 자기 맘에 드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독재자만 남았다. 2018 타노스와 2014 타노스는 얼굴만 같지 사실 완전히 다른 캐릭터다.

이런 모습은 어벤져스와 타노스의 마지막 전투에서도 잘 드러난다. 캡틴은 몰려오는 타노스의 대군 앞에서 도망치거나 움찔하지 않는다. 부서진 방패를 다잡고 홀로 맞서기 위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어떻게 저 군대와 싸울 수 있느냐는 두려움도, 결국 또 패배하고 말 것이라는 절망도 없다.

그를 돕기 위해 포털을 통해 지구와 우주의 히어로 연합군이 도착한다. 리더로 선출된 적도, 리더로 군림한 적도 없지만 모두가 캡틴을 리더로 받아들인다. “Avengers assemble”이라는 캡틴의 말에 모두가 타노스 군대에게 돌진한다. 캡틴아메리카는 토르나 캡틴마블처럼 강력한 힘을 지닌 히어로도 아니고, 닥터스트레인지처럼 위대한 마법을 사용하는 히어로도 아니지만 그 모든 히어로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히어로다.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윈터솔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캡틴은 쉴드를 장악한 하이드라에게 맞서 싸우자며 쉴드 요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이 무리한 요구임을 안다. 하지만 항상 그래왔듯 자유의 대가는 크다. 그리고 난 그 큰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 나 혼자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캡틴은 자신을 따르라고 명령하지도 지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으로 무장한 채 맞서 싸우고, 자연스럽게 리더가 된다.

<윈터솔져>의 한 장면. 캡틴아메리카가 자유의 가치로 쉴드 요원들을 설득하는 장면은 캡아 최고 명장면 중 하나다.

반면 2014 타노스는 뒤에 있는 군대에게 명령하고 지시하는 독재자였다.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부하들의 목숨은 상관없이 일단 무차별 폭격하라고 지시한다. 우주를 살리겠다는 대의는 사라지고, 자기 살겠다고 부하들은 신경도 안 쓰는 찌질이 독재자로 전락했다.

모든 임무를 마친 캡틴아메리카는 히어로의 삶을 내려놓고 과거로 돌아가 사랑하는 연인 페기카터와의 데이트 약속을 지켰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캡틴의 동료 팔콘이 “캡틴아메리카가 없는 세상에 살게 되는 건 슬프다”고 말했듯이, 앞으로의 마블 영화에 캡틴아메리카가 없다고 생각하니 매우 슬프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엔드게임>을 통해 어벤져스 전체로 캡틴의 사상이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p.s 글을 써봤는데 너무 길어서 (1)편 (2)편으로 나눴다. 2편은 아이언맨 서사에 입각해서 엔드게임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포스터 중심에 있는 우리의 미국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