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이집트 여행기 Intro : 이집트 여행이 어려운 세 가지 이유
“나일의 물을 마신 자, 반드시 그 달콤한 물을 다시 맛보게 되리라”
이집트의 오래된 속담이 실현된 걸까, 아니면 기자 피라미드를 갔다가 받아온 파라오의 저주였을까. 2018년 여름에 찾았던, 그 개고생을 했던 이집트로 5년 만에 다시 향했다.
쉬려면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길거리에서 씨발 씨발거려도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곳, 하지만 사람이 바글거리지는 않는 곳. 그러다 문득 이집트가 떠올랐다.
그때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알렉산드리아는 어떨까? 어차피 이번 휴가 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5~6일 정도로 저번처럼 룩소르, 아스완, 후루가다, 카이로 등을 돌아다닐 여력은 없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행 비행기를 찾았지만 결국 포기했다. 무엇보다 알렉산드리아 ‘엘 보그’ 공항의 접근성이 너무 떨어졌고, 공항에 환전소가 없다는 말도 들어서 여행이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바로 가는 비행기표도 별로 없고(그리고 비싸고) 그래서 결국 카이로를 들렀다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여행은 혼자 여행이었다. 난 혼자서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다.
5년 전에도 많이 겪었으니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이번엔 5일밖에 안 되잖아? 그러나 이집트는 언제나 전혀 예상치 못한 난관을 선사한다. 이집트는 여전히 강했고 난 이집트에 비해 약했다.
그래서 기록 차원에서, 또 이집트 여행을 가려는 분들이 내가 겪은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 겪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번에도 생각나는 모든 것을 기록하려고 한다.
여행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집트 여행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집트를 다녀온 사람들이 꼽는 이집트 여행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무시무시하게 다양한 종류의 삐끼다. “이 세상의 모든 삐끼보다 많은 삐끼가 이집트에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내가 잘 거절하면 되지? 궁금하면 한 번 도전해보시라. 주머니가 털리던지 멘탈이 털리던지 둘 중 하나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거절 마스터’도 이집트에 가면 그저 애송이일 뿐이고, 어떤 성인군자라도 삐끼를 두들겨 패는 상상을 하게 된다.
5년 전 여행기 때도 말했지만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비행기 타는 그 순간까지 내 발걸음 하나하나에 삐끼들이 매달린다. 한 20분을 따라와서 진심으로 패버릴까 고민한 적도 많다. 음식점 같은데 들어가면 밖에서 내가 나올 때까지 삐끼들이 기다리고 있다.
‣삐끼에 대한 나의 분노를 추체험하고 싶다면 열독 추천 : <삐끼 천국 룩소르, 나는 왜 이집트 현지 옷을 샀을까>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익숙해지는 것이다. 삐끼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에, 들려오는 소음을 자동 음소거 하는 데 익숙해지면 된다. 나는 ‘라’(‘no’라는 뜻의 아랍어), 혹은 ‘라 슈크란’(=no thanks)이라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빙의하는 것이다. 다른 말을 꺼낼 필요가 없다.
결론 : 선글라스와 아이팟으로 무장하여 눈과 귀를 가리고 입으론 미친놈처럼 ‘라 슈크란’을 중얼거리면 된다.
둘째, 중동권에 있는 독특한 문화, ‘박시시’다. 그런데 이집트에선 박시시가 앞에 설명한 ‘삐끼 군단’과 결합하여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한다. 일각에선 박시시를 ‘팁’이라고 부르는 데 개인적으로 그건 팁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팁은 (물론 과해지면 문제지만) 노동과 서비스의 대가 아닌가? 박시시는 ‘팁’과 ‘구걸’이 뒤섞인 ‘적선의 문화’라고 봐야 한다.
일전에 이집트에 갔을 때 유적지 안에서 갑자기 노래 부르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엔 버스킹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박시시를 달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배를 타고 섬으로 이동할 때 서핑보드 같은 걸 타고 따라와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도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세이렌이 바로 이집트에서 '드럽게 많은 숫자로' 환생했다.
혹시라도 이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흥얼거리거나 둠칫 둠칫 몸을 흔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바로 돈을 달라고 한다. 내가 해달라고 한 적 한 번도 없지만 너는 나의 서비스(음악)로 인해 무언가를 얻었으니(즐거움) 그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다.
‘내가 원치 않는데’라는 상황이 핵심 포인트다. 화장실 밖에서 휴지를 내밀어서 멋 모르고 그걸 사용하면 돈 달라고 손을 내민다.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하는데 누가 갑자기 와서 짐을 옮겨준다. 그리고 돈을 달라고 한다. 심지어 이 사람들에겐 당연한 권리이기에 아주 당당하다. 안 주면 '팁!'이라고 외친다. 전에 아스완 가서는 심지어 어린 아이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담배를 내밀며 ‘원 달러 원 달러’하는 경우도 봤다. 쓰레기 떠넘기고 돈까지 달라고?
하지만! 이것도 해결 방법이 있다. 가장 쉬운 해결책은 그냥 돈을 주는 것이다. 한 번에 20파운드 정도면 충분하다. 20 파운드라면 요새 환율로 계산하면 800원이다. 마음을 비우고 ‘아 박시시 좀 해볼까?’라고 생각하면 가장 편하다. 물론 잘못 주면 비둘기 밥 주는 아저씨처럼 박시시 무리가 몰려 올 수 있으니 상황에 따라 유도리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주기 싫다면? 도움을 안 받으면 된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라 슈크란! 박시시 무리들과 동선을 최대한 안 마주치게 짜면 편하다. 사실 이번에 다녀온 알렉산드리아에는 박시시꾼들이 거의 없었다. 주로 유적지나 유명한 관광지, 아니면 시장 등에 몰려 있다.
만약 무언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같은 관광객이나 경찰에게 부탁하시라. 예컨대 박시시꾼들은 원치도 않았는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또 자기가 가이드가 되어주겠다고 접근한다. 그게 싫으면 돈 주고 가이드를 고용하면 되고, 사진은 다른 관광객에게 찍어달라고 하면 된다. 또 이집트는 관광지마다 대부분 ‘관광 경찰’을 배치하고 있는데 이들은 돈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공무원이니..) 가끔 경찰이 돈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나는 그런 일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집트 여행이 어려운 세 번째 이유, ‘가격 흥정’이다. 대부분 중동권이 그렇지만 이집트에선 상품에 정해진 가격이라는 게 없는 경우가 많다. 정찰제가 익숙한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건 개인적으로 이집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느 관광지, 심지어 한국 시장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그냥 안 사면 된다. 근데 사고 싶다면? 자신만의 기준이 있으면 된다. 나 같은 경우 항상 한국과 비교한다. 예컨대 파피루스 책갈피를 시장에서 사려는데 상인이 200파운드를 부른 적이 있다. 200파운드면 약 8,000원이다. 나는 책갈피는 한국에서도 8,000원 주고 살 일이 없기에 등을 바로 돌렸다. 그러면 보통 가격이 반 이하로 떨어진다.
최근에는 이런 흥정을 불편해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정찰제 가게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예컨대 카이로 바자르(시장)의 유일한 양심으로 불리는 ‘조르디’(JORDI)가 대표적이다. 삐끼와 박시시, 가격 흥정에 지친 이집트 관광객들의 안식처 같은 곳이다. 다만 가격대가 조금 있는 편이다. 그런데 어쩌랴? 물건은 사고 싶은데 가격 게임 하고 싶지 않으면 조금 비싸도 사는 수밖에.
나는 5년 전의 이집트 여행을 통해 위의 세 가지 고난은 나름대로 극복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혼자 이집트 여행을 선택했다. 하지만....새로운 고난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본격적인 여행 이야기는 다음 편부터 시작하겠다.
▶다음편 : <출국, 그리고 '또(카)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