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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이집트 여행기

2018 이집트 여행기 ⑥ 삐끼 천국 룩소르, 나는 왜 이집트 현지 옷을 샀을까

629, 이집트 남부 룩소르의 아침이 밝았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이베로텔 룩소르(Iberotel Luxor)라는 곳이었다. 와이파이도 잘 되고 숙소도 나쁘지 않았으나 여기도 서비스가 일못이었다. 뭘 부탁하면 되는 게 없었다. 달러를 small bill로 바꿔달랬는데 (분명 달러가 잔뜩 있는 걸 봤는데도) 없다며 바꿔주지 않는다. 아스완으로 가는 기차에 대해 물어보니 본인이 표를 예매해주겠다고 했는데 일이 진척이 안 된다. “내가 도와준 걸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이해할 수 없는 비밀요원 같은 말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도와준 게 없으니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호텔인데 물을 따로 사먹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무려 큰 병 하나에 30파운드였다. 밖에 나가서 사먹으면 6~7파운드인데, 호텔에서 사면 30파운드이다. 나중에 카르나크 신전이라는 관광지에서 같은 크기의 물을 사봤는데 10파운드였다. 관광지에서 10파운드인데 호텔에서 30파운드에 판다! 물장사하는 게 봉이 김선달 급이다.

여튼 30유로짜리 물을 들고 룩소르 첫째 날 여행에 나섰다. 룩소르 여행의 주의점은? 딱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덥다.

엄청 덥다.

졸라 덥다.

개덥다.

 

 

검색해보니 기온이 42, 체감온도가 48도다. 아침 9시에 집에서 나섰는데도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것 같다. 햇빛이 날 때리는 것 같이 덥다. 다만 햇볕만 피하면, 그늘에 가면 습도는 없어서 그나마 좀 시원하긴 하다. 2L짜리 물을 들고 다니면서 벌컥 벌컥 마시게 된다.

더위에 지친 몸에 이어 내 정신을 괴롭히는 건 삐끼들이다. 밖을 나서면서부터 택시 택시’ ‘페리 페리라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내 귀를 어지럽힌다. 페리는 룩소르 동안에서 서안으로(다음편에 소개할 왕가의계곡 등 유적지가 있는 곳) 갈 때 타는 작은 배를 뜻한다. 하지만 동안과 서안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굳이 페리를 탈 필요가 1도 없다. 여기에 말 택시까지 나타나서 우리를 괴롭힌다.

니하오” “차이니즈?” “코리안 굿” “고니치와외국어 초급회화 시간에 등장할 법한 각종 인사말들이 총출동한다.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성은 말 택시를 탄 삐끼들이었다. 페리야 배가 정박되어 있으니 쫓아오는 데 한계가 있고, 택시도 차를 타고 쫓아올 순 없을 테니까. 말 택시는 아주 여유롭게 우리를 따라오면서 계속 말을 건다.

성질이 나서 한 삐끼한테 “DO NOT TALK ME"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말라고 되려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는 노려본다. 손 감자 큰 거 하나 먹여줄까 하다가 일이 커질까봐 참았다.

내 인성을 시험한 또 다른 삐끼는 한 스무살도 안 되어 보이는 녀석이었는데, 정말 한 20분을 우리를 쫓아왔다. 콜라 사러 상점에 들렀을 때도 안 가고 기다리고 있었다. “코리안 베리 굿이런 잡소리나 하면서. 지 마음대로 룩소르 여행계획에 대해 브리핑하더니 얼마에 해주겠다고 한다. 노땡스를 한 30번 정도 한 것 같다. 안하겠다고 소리를 지르자 “WHY?"라고 되려 소리를 친다. 나는 화가 나서 ”WHY!!!!!!"라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소리를 지르니까 쏘리 쏘리를 반복하더니 사라진다. 그러더니 유치하게 코리안 노 굿이라고 외쳤다. 내 짝도 열 받아서 이집션 노 굿을 외쳤다. 아까 그놈에게 못 먹인 손 감자를 먹여줬는데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생각났다. (뫼르소는 아랍인을 총으로 쏜 뒤 강렬한 태양빛 때문에 쏘았다고 말했다.)

 

룩소르 신전의 거대한 기둥들.

 

10분 간 걸어서 삐끼와 더위를 뚫고 도착한 첫 번째 방문지는 룩소르 신전이었다. 해가 질 때가 되면 야광조명이 일제히 나오면서 진짜 예쁘다는 데 우리는 잘 몰라서 오전에 갔다. 룩소르 신전은 신왕국 제18왕조의 아멘호텝 3세의 치세 때 지어진 것으로, 이집트 신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아문신에게 바치기 위해 만들어진 신전이다.

 

룩소르 신전의 벽화

 

굉장히 웅장하고 또 벽화의 색깔이 아직까지도 보존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얼마나 화려했을지 짐작이 간다.)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건 높이가 24미터에 달하는 오벨리스크였다. 람세스 2세가 세운 것인데, 원래 두 개였는데 무식한 프랑스 놈들이 하나는 떼 갔다고 한다. 뜰로 들어가면 100미터에 달하는 기둥머리를 올린 열 네 개의 열주가 늘어져 있는데, 나름 장관이다.

 

룩소르 신전 입구의 오벨리스크

 

신전 입구에는 스핑크스들이 잔뜩 늘어서 있다. 뭔 스핑크스들이 이렇게 많나 싶었는데 이것이 '스핑크스의 길'이라고 한다. 북부에 있는 카르나크신전까지 3km미터 가량 뻗어있는 엄청난 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파괴되어 완전히 연결되어 있진 않다고 한다.)

 

스핑크스가 이런 식으로 길처럼 계속 늘어서 있다.

 

룩소르 신전을 다 보고 나오니 10시반 쯤 됐다. 너무 더웠다. 그래서 우린 활로를 찾아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빅사이즈 콜라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맥도날드 3층에서 본 룩소르 신전의 모습.

 

맥도날드에서 좀 쉬다가 다시 10분여를 걸어 룩소르 박물관(Luxor Museum)에 도착했다.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처럼 수많은 석상과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나일강변에 위치하고 있고, 테베 지역 유물들이 주로 보관되어 있다.

이집트 박물관과 달랐던 점은 유물 보관이 매우 잘 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물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던 이집트 박물관과 달리 이곳의 유물들은 온도와 습도를 잘 지켜서 보관되고 있었다. 처음 들어가면 직원이(이 사람도 삐끼인가 싶어 처음에 노땡스라고 했다.) 룩소르 박물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여준다. 잘 듣고, 박물관을 두루 감상하면 된다. (에어컨이 너무 시원해서 나가기가 싫어진다.)

 

룩소르 박물관 바로 밖에는 이렇게 나일강이 흐른다.

 

룩소르 박물관에서 나온 우리는 식당을 찾아 걸었다. 식당까지 가는 길에 수없는 삐끼들이 있었다. 삐끼들을 헤치고 간 식당은 Al-Sahaby Lane Restaurant. 이곳에서 고기, 야채가 섞인 밥 등을 먹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고양이가 다가와서 야옹야옹 거렸다. 사람이 먹는 걸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냥 무시하고 먹었는데 계속 와서 울어대서 마음에 걸렸다. 그 때 레스토랑 직원이 나타나 고양이를 쫓았다.

 

점심으로 먹은 고기들.

 

쫓겨난 고양이가 다시 내 옆에 와서 앉아 있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콩 같은 걸 줬다. 손에 콩을 올려놓으면 와서 얌전하게 먹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마구잡이로 때린 다음 내가 콩을 놓치자 주워먹는다. (역시 냥아치;;;)

그렇게 콩 몇 개를 먹더니 또 안 먹는다. 고기를 줄 순 없어서(내가 먹어야 하니까) 그냥 무시하고 먹었다. 그랬더니 그제야 던져준 콩을 먹기 시작한다. 콩을 안 먹는 척 해서 고기를 얻어내려던 전략이었다. 이집트의 고양이 삐끼였다!

 

이 녀석도 삐끼였다.

 

식사를 마치고 아까 본 룩소르 신전에서 스핑크스길로 이어진다는 카르나크 신전으로 향했다. 멀어서 걸어갈 수는 없는 거리였다. 말 택시를 타기로 했다. 가격 흥정이 필수다. 50인가 40을 불렀는데 20파운드에 가기로 하고, 말 택시에 탔다. 말 택시의 구성은 간단하다 말 택시는 한 마디로 돈 받는 마차다. 뒤의 공간에 승객들이 타고, 말 위에 한 명이 타서 운전한다. 때로 운전자 외에 삐끼가 한 명 더 타고 있을 때도 있다.

말 택시를 탄 이후에도 삐끼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20파운드 더 주면 바자르(시장)를 한 바퀴 구경시켜주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냥 가던 길이나 가라고 했다. ‘말 안 걸면 두 배라고 했으면 좀 조용했을까? 아무튼 말을 타고 10분 정도 와서 카르나크신전에 도착했다. 우리를 태워준 삐끼는 우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몇 시간 걸릴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상관없다고 그냥 기다린단다. 기다리든 말든 알바 아니라고 하자 그제야 다시 장사를 하러 사라졌다.

카르나크신전은 이집트 최대 신전이다. ‘아몬, 그리고 태양신인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었다. 남북으로 540미터, 동으로 500미터, 서로 600미터의 사다리꼴 형태다. 탑문만 10개가 있고, 오벨리스크와 스핑크스(룩소르에서 연결되는)가 나란히 서 있는 길이 있다. 역대 왕들이 건설한 작은 신전들과 야외 박물관, 중앙 정원, ‘성스러운 연못까지. 신전이라기보다 하나의 소도시 같았다.

 

카르나크신전에도 오벨리스크가 있다.

 

그래서 모두 돌아보는 데 졸라 힘들다. 물을 얼마에 팔든 사먹게 된다. (그래도 30파운드에 팔던 우리 호텔보단 싸다.) 나도 지쳐서 끝까지 돌아보지는 못했고, 짝은 내가 쉬는 동안 성스러운 연못까지 보고 왔다.

 

짝이 찍어온 연못 사진.

 

거대한 신전인 만큼 신전 안에는 각양각색의 삐끼들이 NPC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늘 같은데 물 한 병 끼고 누워 있다가 관광객이 오면 잽싸게 일어난다. 잘못 말을 붙이면 미션을 수행하고 돈까지 줘야 한다. 한 삐끼는 계속 설레발을 치면서 이 장소에 오면 오벨리스크를 더 멋있게 볼 수 있다고 컴온 컴온을 반복했다. 보고 우리가 감탄했으면 돈 달라고 했을 거다. 무시하고 난 뒤 도대체 뭐가 있기에 호들갑인가 싶어서 가봤더니 별 것도 없었다.

또 다른 삐끼는 가이드 코스프레를 하며 묻지도 않았는데 우릴 오라고 하더니 막 신전에 대해 설명해주려 했다. 벽화를 가리키며 이 그림이 아몬신이고, 이 그림이 라신이고, 이 그림이 람세스2세라면서 떠든다. 나중에 다시 가서 자세히 보니 그냥 손 가는대로 아무 거나 가리키면서 아무 말을 해댄 것 같았다. (우리가 고개라도 끄덕였으면 돈 달라고 했을 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중에는 전통의상 입고 머리에 터번 같은 거 두른 이집션만 봐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분명 그 중에는 선의로 뭔가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광객 입장에선 구별이 안 가니 미칠 노릇이다.

 

웅장한 카르나크 신전의 모습들.

 

웬 서양인 남자애도 갑자기 우리한테 와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얼떨결에 같이 셀카를 찍었는데 사진 찍고 난 뒤 사진을 보며 기분 나쁘게 낄낄거렸다. 동양인을 원숭이처럼 보는 건가 해서 기분이 나빴는데 나중에 보니 마주치는 모든 외국인들과 같이 셀카를 찍고 기분 나쁘게 웃는 그냥 관종이었다. (“이집트에서 외국인 100명과 셀카 찍기미션 같은 것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카르나크 신전을 다 돌아보니 예상대로 출구 앞부터 말 택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한 삐끼와 흥정을 해서 20파운드인가 주고 다시 숙소인 이베로텔로 돌아왔다. 저녁은 이베로텔 안에 있는 저녁 뷔페를 이용했다. 카이로에서 먹어본 스텔라와 함께 이집트 2대 맥주라는 사카라를 마셨다.

 

이집트의 2대 지역 맥주 중 하나라는 사카라 골드.

 

삐끼와의 모든 조우가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우린 가장 고단수의 삐끼 한 명을 마주한다. 알린이라는 이름의 삐끼였다. (아마 이 이름도 가명일 가능성이 높다.) 물이 너무 비싸 밖에 물을 사러 나간 게 화근이었다. 길을 걷다 마주친 그는 자신이 이베로텔 호텔의 식당에서 일하는 요리사라고 했다. 그리고 조리하면서 우리를 봤다고 했다. 물을 사러 간다고 하자 같이 봉이 김선달 짓을 하는 이베로텔 호텔을 씹어주면서 우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물이 가장 싸다는 바자르의 상점으로 안내했다. 싸게 사긴 했다. 호텔에서 30파운드하던 물을 6~7파운드에 샀으니까. 큰 병으로 물을 세 개 샀다. 그는 요리사답게 향신료 가게에 들러 다양한 향신료들을 소개하고 우리에게 냄새까지 맡게 해주었다.

바자르 구경을 시켜주더니 이윽고 도착한 곳은 웬 기념품 샵이었다. 알린은 독심술에도 소질이 있는 게 분명했다. 마침 룩소르 여행을 하루 동안 하고 난 뒤 현지 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였다. 저 긴 옷으로 햇볕을 가리면 덥지 않을까? 저게 더 시원할까?

 

삐끼한테 낚인 채 옷까지 입어본 호구.

 

알린과 친구처럼 보이는 기념품 샵 주인은 나에게 이집트 현지인들이 입는 옷 젤라비아를 추천했다. 입어 보니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가격을 물어보니 무려 1000파운드였다. 30파운드 짜리 물에 분노했던 입장에선 안 사는 게 합리적 소비자다운 일이다. 같이 온 짝도 너무 비싸다고 했다.

그 순간 깊은 번뇌에 빠졌다. 알린을 따라 이곳에 온 이상 이 옷의 구매는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 아닌가? 이 정도 정성의 삐끼라면 속아 넘어가 주는 것도 예의가 아닌가? 적어도 알린은 우리가 만난 수많은 이집트 삐끼들에 비해 노력하고, 스스로를 개발하는 삐끼가 아닌가? 하루종일 흥정에 시달리고, 여기까지 와서 내가 이 옷쪼가리 때문에 또 다시 흥정을 시도 해야 하는가? 우리를 기분 좋게 하기 위해 열심히 영어로 떠드는 알린의 모습까지 뇌리에 겹쳐졌다.

그래서 1원도 흥정하지 않고 쿨 하게 1000파운드 내고 현지 옷을 샀다. 한국 돈으로 6만원이다. 솔직히 개비싸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이 순간만큼은 흥정하고 싶지 않았다. 알린은 우리를 다시 호텔로까지 데려다줬다. 우리는 알린에게 원달러 팁까지 건네 주었다.

 

옷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알린은 헤어지기 전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내가 도와줬다는 것을 호텔의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 된다. 그럼 내가 해고될 수도 있다.” (리베로텔의 한 직원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린 늦게까지 호텔에 있었지만, 호텔 식당에서 알린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다음편은 룩소르 2일차, 룩소르 서안의 왕가의 계곡 탐방과 이집트 최남부 아스완으로 가는 길 이야기다.

다음편 : <왕가의 계곡, 그리고 이집트에서 만난 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