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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이집트 여행기

2023 이집트 여행기 ① 출국, 그리고 ‘또(카)이로’

2023731, 이집트 출국 날이 다가왔다. 비행기 시간은 오후 555. 오후 늦은 비행기였으나 조금 일찍 집에서 나섰다.

이집트 출국 전에 해야 할 일이 딱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환전이다. 원화를 달러로 환전한 다음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 가서 이집트 파운드로 환전하면 된다. 그래서 출국 며칠 전에 주거래 은행인 국민은행에 800달러(한국 돈 100만 원 조금 넘는다)를 환전해두었다.

또 다른 일은 여행자보험 가입이다. 5년 전에이스 보험에서 이집트는 보험 가입이 안 된다고 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바로 삼성 보험에 가입했다. 여행자보험 가입 시 이집트에 간다고 하면 꼭 이집트 어디에 가는지 물어본다. 이스라엘 등과 국경을 마주한 시나이반도는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난 그 쪽 방향으로 가지 않았기에 보험 가입에 문제는 없었다. 보장이 많이 되는 추천형으로 가입했는데 가격은 46,140원이었다.

밥도 먹고 모든 준비를 완료한 뒤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번 일정은 UAE의 아부다비 공항을 경유하여 오전 5시반에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집트로 가는 직항은 없다. 보통 카타르(도하)UAE(두바이, 아부다비)를 경유해서 가는 경우가 흔하다.

아부다비 공항의 좋은 점은 WIFI가 된다는 것이다! 역시 근본 있는 아랍의 강국다웠다. 반면 카이로 공항은 돈 내야 쓸 수 있다. 와이파이 박시시;;

UAE 공항에서도 여전히 뜨거운 와이파이 형제애

 

카이로까지 가는 길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카이로로 가는 걸 후회한 첫 번째 순간이다. 표를 끊을 때 복도 자리도 괜찮으신가요?’ 해서 생각 없이 괜찮다고 했는데 화장실 바로 옆의 자리였다. 사람들이 존내 왔다 갔다 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옆에 앉은 정신 사나운 아랍인 새X는 뭘 잘못 쳐먹은 건지 아니면 성인 ADHD인지 한 시간에 한 번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는가 싶었는데 그냥 일어나서 체조도 하고, 뭘 떨어뜨렸다고 주변을 막 수색하고 별 염병을 다 했다. 심지어 잠도 안 잤다.(뭐지?)

아부다비 공항에서 4시간 대기여서 공항 의자에 앉아 좀 졸다가 다시 카이로행을 탑승했다. 그 정신 사나운 새X를 다시 만났다. 날 보더니 ~i knew you~”이 ㅈㄹ을 했는데 카이로로 가는 놈이었나보다. 다행히 이번엔 옆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긴장한 탓인지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리고 카이로에 도착!

카이로 공항에서 가면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이 두 곳 있다.

 

첫 번째, ‘banque misr’이다. banquebank란 뜻이고, 보통 카이로를 미스르’(misr)라고도 부른다. 이집트의 공식 국호도 미스르 아랍 공화국이다. 미스르는 이집트 사람들을 가리키는 기독교 성서 속 단어 미즈라임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즉 직역하자면 ‘banque misr’이집트 중앙은행쯤 되겠고, 실제 역할도 비슷하다.

‘banque misr’에선 두 가지를 처리해야 하는데 첫 번째가 비자 발급이다. 이집트 여행을 하려면 도착 비자를 받아야 한다.. 25달러만 내면 아무런 절차 없이 살 수 있다. 두 번째 할 일은 환전이다. 미리 달러로 바꿔온 돈을 이집트 파운드로 환전해준다. 시내 환전소나 여기나 환율을 비슷하기에 그냥 여기서 하면 된다.

이집트 비자는 이렇게 생겼다.
돌이켜보니 너무 많이 환전했다. 이 정도 돈으로 5일이면 파라오도 부럽지 않을 정도다.

 

다음으로 들려야 할 곳은 ‘vodafone’이라는 통신사다. 이곳에서 관광객용 유심칩을 살 수 있다. 그러면 이집트 번호를 받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다. 우버를 부르거나 길을 찾을 때 인터넷이 꼭 필요하니 유심칩은 꼭 사는 게 좋다.

10기가 255파운드라고 해봐야 원화 만 원 조금 넘는 돈이니 사는 게 좋다.

 

하나 더 체크할 것! 이집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선 자신의 인적 사항과 여행 정보에 대해 적는 종이카드를 준다. 뭐라고 써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직원이 내용을 하나도 읽지 않고 그냥 대충 글자 비슷한 게 적힌 것 같으면 도장만 찍고 보내주기 때문이다. 사실상 도장 찍기 연습장이다.

, 이걸 작성해야 하므로 펜은 하나 미리 준비해가는 게 좋다. (이놈들 펜도 잘 안 빌려준다.)

비행기 연착에 여러 절차를 거쳐 오전 630분쯤 되어 공항 밖으로 나왔다. 내가 카이로에서 머무는 호텔은 ‘UP TOWN HOTEL’이라는 곳이었다. 후에 설명하겠지만 카이로의 중심지인 타흐리흐 광장 앞에 위치한다는 것 빼곤 장점이 하나도 없는 곳이다.

숙소는 카이로 공항에서 30분 거리라 택시를 타야 했다. 카이로 공항에 내리면 택시 기사 혹은 짝퉁 택시 기사 삐끼들이 떼로 접근한다. 미터기 같은 건 당연히 없기에 머리에 떠오르는 높은 숫자를 아무거나 부르고, ‘’(no)라고 하면 숫자를 낮춰 부른다. 재수 없으면 바가지 된통 뒤집어쓰고 별도로 박시시까지 해야한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여기가 카이로’임을 시각, 후각, 청각이 알려준다. 먹잇감을 찾았다는 삐끼들의 씩 웃는 미소, 쉴 새 없이 울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 서울의 미세먼지보다 심각한 매연까지. 5년 전과 그대로다. 아니, 더 심해졌나?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

 

오자마자 삐끼들과 실랑이 벌이는 건 싫었기에 5년 전처럼 'getyourguide'라는 사이트에서 private taxi 서비스를 예약해두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데려다주는 데 5달러 조금 넘게 냈다. 택시비 가지고 ‘up and down’ 게임이나 하는 삐끼들에 비하면 매우 합리적인 가격이다.

사이트 참고 :

https://www.getyourguide.com/cairo-l92/private-cairo-airport-transfer-to-cairo-or-giza-city-t25303/

삐끼들의 헛소리를 자체 음소거 하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하마다 하르하쉬라는 이름의 이집션이 나를 찾아와서 내 이름을 크게 적은 종이를 보여준다. 비행기 옆자리의 정신 사나운 새끼를 제외하면 처음 인사한 이집션이다. 그를 따라 private taxi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택시 운전은 좀 어려보이는 이집션이 했고, 하마다는 일종의 가이드였다.

5년 전에 같은 회사 택시를 탔을 땐 이집트가 어떤 나라인지 소개만 해주었는데, 하마다는 나에게 적극적으로 투어 영업을 시도했다. 장사가 잘 안 돼서 투어까지 겸업하는 것인지 아니면 잘 돼서 사업을 확장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기자 피라미드와 사카라, 멤피스까지 둘러보는 하루짜리 가이드 투어를 소개했다.

하지만 난 기자 피라미드를 저번에 가봤기에 이번에는 갈 생각이 없었고 카이로는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경유지였기에 거절했다. 그러자 하마다는 우리는 다른 삐끼들과 다르고, 검증된 투어 전문 회사라며 과거에 자신이 가이드했던 관광객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 관광객들 표정이 활짝 웃고 있지 않냐며 너한테도 즐거운 경험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럼 피라미드 앞에서 울겠니?)

나는 계속 권하길래 호텔에 있는 친구(사실 혼자임, 착한 거짓말..)와 상의해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알았다며 더 이상 권유는 안 했는데, 끈질기게 메일로 관련 링크를 보내주었다.

링크 들어가 보니 호텔에서 관광객 팔아넘기는 가이드 투어보다 확실히 싸고 알찬 프로그램이긴 했다. 다음에 생각 있으면 사용해봐야겠다

 

팁을 하나 전하자면 이집션들이 뭘 팔아먹거나 추천하려고 말을 걸 기세면 거꾸로 질문을 하는 게 좋다. 대표적으로 아랍어 회화에 대해 물어보면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이들이 피라미드 전문가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아랍어 네이티브인 건 사실이잖아..?

그래서 30분 이동하는 동안 강사 하마다와의 아랍어 교실이 펼쳐졌다. ‘hi/hello’마르하반’이다. 보통 앗살라무 알라이쿰으로 알고 있는데 이건 이슬람교도들끼리 주고받는 인사이기에 마르하반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how are you케이파 할루크’, thank you는 슈크란, I‘m from korea아나 민 꾸리야‘, i’m sorry아시프등등. 고개를 끄덕이며 발음을 연습했다. 내 지능을 의심한 것인지 하마다가 메모해야 기억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금까지 이 인사말들을 기억하고 있다.

여기서 카이로에 온 걸 후회한 두 번째 사건이 벌어졌다. 택시타고 가는 중에 내 여권이 없어졌음을 인지한 것이다. 순간 패닉이 왔다. 차 안에 없으면 백퍼 공항에서 잃어버린 것이기에 일단 차 돌려를 시전했다. 5분 만에 차를 돌려서 공항으로 왔는데 천만다행히도 나에게 유심칩을 판 vodafone의 직원이 내 여권을 든 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유심칩 사느라 여권을 보여주고 정신 없이 거기다 놓고 온 것이다. 참 착한 이집션이었다.

그렇게 여권까지 찾고 아랍어회화 교실까지 무사히 마치고 호텔로 왔다. 하마다는 한 가지 명언도 남겼다.이집션이 말하는 ‘one minute’은 사실 ‘one hour’이니 주의하라.” 모든 이집트 여행객들이 명심해야 할 띵언이다. 이집션들은 입에 '원 미닛'을 달고 살지만 그건 진짜 1분 걸린다는 뜻이 아니다. 30분일지 1시간일지 하루종일 인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감사의 뜻으로 하마다에게 50파운드를 박시시했다. 아랍어 회화도 알려주고 물도 하나 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여권 찾으러 중간에 택시를 돌렸으니 사실 박시시라기보다 합당한 추가 비용이었다.

숙소 바로 앞. 저 탑 있는 광장이 바로 이집트 혁명이 벌어졌던 타흐리흐 광장이다.

 

그리고 문제의 숙소, ‘up town hotel’로 들어갔다. 이 호텔의 서비스는 정말 최악이었다. 일단 입구가 눈에 띄지 않아서 한참을 서성였다. 5층 프론트에 갔더니 12시부터 체크인이라며 기다리라고 한다. (지금 오전 7시인데.) 그러더니 다른 방을 쓰려면 52달러를 내라고 했다. 카이로의 더위와 한숨도 못 잔 피곤함에 지친 나는 그냥 52달러 낼 테니까 문 열어달라고 했다.

와이파이도 잘 안 되고, 뭘 물어보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급기야 밥 먹고 잠시 쉬러 들어왔더니 갑자기 모든 전기가 나가버린다. 물어보자 원 미닛을 외쳤으나 1시간 걸렸다. 당연하다는 듯 이유도 안 알려준다. 뭐지? 신종 기후 위기 대응책인가?

이 순간 나는 카이로에 온 것을 세 번째 후회했다. 하지만 나에겐 이 개떡같은 호텔에 온 이유가 있다. 바로 카이로 국립 박물관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는 것

기분도 울적하니 더욱 유물이 마려워져서 밀린 잠도 안 자고 바로 호텔을 나섰다.

국립박물관과 카이로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다음편 : <5년 만의 카이로 박물관과 코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