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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잃은 더민주, 문재인 내보내면 다음은?

호남 잃은 더민주, 문재인 내보내면 다음은?

안철수를 대안으로 선택한 호남, ‘새누리당 막자’로는 안 된다… "이제 너희도 경쟁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책임을 지기도, 책임을 지지 않기도 애매하다.

4‧13총선의 결과 가장 애매한 위치에 처한 사람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문 전 대표는 여러차례 총선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지난해 2월 당 대표 선거 때도,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총선 결과에 무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만 보면 더민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모두가 ‘100석 미만’을 예측하던 선거에서 새누리당 과반을 저지했고, 야권분열로 1여다야 구도가 형성된 서울을 싹쓸이했고 부산, 대구, 강남 등 새누리당의 텃밭에서 균열을 일으켰다.

다 른 정당이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내세운 것과 달리 더민주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단독으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더민주의 선거체제는 실질적으로 투톱 체제였다. 선거 첫날 김종인 대표가 수도권으로 향하는 동안 문재인 전 대표는 부산으로 향했다. 선거 내내 문 전 대표는 부산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원유세를 펼쳤다.

문제는 더민주가 호남에서 참패했다는 것이다. 전체 28석 의석 중 25석을 국민의당이 싹쓸이했고, 특히 광주는 8석 모두를 국민의당이 가져갔다.

문재인 전 대표는 앞서 8일 518 광주묘역을 참배한 뒤 발표한 글에서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며 “호남의 정신을 담지 못하는 야당 후보는 이미 그 자격을 상실한 것과 같다. 진정한 호남의 뜻이라면 저는 저에 대한 심판조차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당장 문 전 대표가 호남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1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는) 광주에 와서도 호남이 나를 지지하지 않으면 나는 정계를 은퇴하고 대통령 후보를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 (이 말을)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며 “문 전 대표가 그렇게 말했으면 무신불립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 지원 의원은 선거 막판 문 전 대표의 호남 방문에 대해서도 “문 전 대표가 지나간 지역은 호남에서 (더민주가) 다 낙선했다.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가 호남을 방문하고 사과해도 효과가 없었으니 문 전 대표가 책임져야한다는 주장이다.

하 지만 문 전 대표의 호남 방문에 대한 더민주의 평가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정청래 더민주 의원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문 전 대표가) 호남에 가서 보인 진정성이 야권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수도권 승리를 견인해 냈다”고 평가했다. 김해을에서 당선된 더민주의 김경수 당선인은 14일 경남CBS ‘시사포커스 경남’에 출연해 “(문 전 대표가) 호남에서 솔직하게 사과하시고 대권 불출마까지 말씀하셨던 것이 수도권 지역에서 선전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의 사과가 호남의 반더민주, 반문 정서를 회복시키진 못했더라도 수도권 유권자, 더 정확히는 수도권의 호남 출신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김종인 대표 역시 14일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전 대표께서도 고군분투 수고하셨다. 수도권에서 우리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셨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당내에서는 부산 등 영남지역에서의 더민주의 선전에 문 전 대표가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지배적이다.

더욱이 호남 민심이 단순히 문 전 대표 때문에 돌아섰다고 평가하기도 힘들다. 김종인 대표의 국보위 전력이나 비례대표 공천 파동 등 호남의 더민주 지지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다양하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철희 더민주 비례대표 당선인은 14일 TBS ‘열린아침 김만흠입니다’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가 막판에 선거에 투입됐기 때문에 호남의 선거결과를 온전히 문 전 대표에게 책임지울 것이냐에 대해서는 좀 아니라고 본다”며 “문 전 대표도 당도 마찬가지로 호남민심에 대해 깊이 생각할 대목이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당 전체의 책임이라고 보고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남 차별에 대해 다룬 책 ‘아주 낯선 상식’의 저자 김욱 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문 전 대표가 선거 막판 호남에 왔는데, 민심이 거의 결정된 상태에서 온 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특별히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수십 년간 호남 제1당에 쌓인 피로감,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어진 반발이 누적 되서 국민의당에 대한 몰표가 나온 것”이라며 “그걸 몇 번의 방문으로 뒤집을 수도 없는 일이고 문 전 대표가 와서 한 이야기가 특별한 말도 아니었다. ‘호남이 거부하면 대선 출마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한 말”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한 “문 전 대표가 ‘대선 불출마’ 이야기까지 했는데 국민의당을 찍었다는 건 ‘그게(불출마가) 내가 원하는 거다’라고 생각한 사람도 상당수 있다는 뜻 아닌가. 국민의당을 찍은 사람들이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에 나온다고 해서 문 전 대표를 찍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문 전 대표가 정계 은퇴나 대선 불출마선언을 한다 해도 이는 상징적 의미만 있을 뿐 실제 호남 민심을 되돌리는 데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라는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대선 불출마는 더민주 입장에서 유력한 대선주자 한 명을 잃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애매한 상황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애매한 입장만 내놨다. 문 전 대표는 14일 자택 앞을 찾은 기자들에게 “‘야권을 대표하는 대선주자가 호남의 지지 없이는 어렵다’고 말한 것에는 변화가 없다. 호남 민심이 저를 버린 것인지는 더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결국 더민주가 호남 민심을 얻고 싶다면 문 전 대표가 대선을 출마하느니 마느냐를 두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호남이 더 이상 텃밭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수도권이나 여타 경쟁지역을 공략하듯 장기적으로 호남의 민심을 얻어야한다는 것이다. 더민주는 수도권에서 ‘정권 심판’이라는 다소 막연한 구호 대신 ‘경제심판’이라는 중도 무당층에 먹혀들만한 의제를 던졌다.

김욱 교수는 “이번 선거는 호남이 새누리당을 거부하듯 더민주를 거부하는 차원이 아니라 ‘너희도 경쟁하라’는 뜻을 보여준 선거다. 결과적으로는 (국민의당) 몰표로 나타났지만 몰표의 양상이 다르다”며 “예전의 더민주 지지는 새누리당은 찍을 수 없는 유권자가 인질이 된 상태에서 나타난 몰표였다면, 지금은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의 몰표”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한 “이제 ‘새누리는 막아야지’라며 호남을 인질로 잡아 표를 받겠다는 생각은 해선 안 된다. 국민의당이라는 다른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라며 “호남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지 자기들이 원하는 걸 호남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건 이제 안 먹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