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8.06 09:20

‘그알’의 ‘이재명 조폭연루설’ 편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논란이 되고 있는 SBS <그것이알고싶다>의 ‘파타야 살인사건 편’을 보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조폭 연루설’을 심층 취재한 바로 그 편이다. 논란이 한참 확장되고 나서야 뒤늦게 보았는데 보는 내내 한 가지 커다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대체 이번 편의 제목인 ‘파타야 살인사건’과 이재명이 무슨 상관이라는 걸까?

‘파타야 살인사건’은 <그것이 알고싶다>가 약 1년 전에 취재했던 사건이다. 2015년 11월 태국 파타야의 고급 리조트 주차장에서 25세의 임모씨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던 김형진은 지난 4월 검거되었다.



‘그알’은 김형진의 검거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포착해낸다. 김형진이 쫓기면서도 버젓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고 다니고, 심지어 카지노에서 일까지 했다는 것이다. 잡히면서도 전혀 반성이 없는 모습. 그리고 검찰 수사과정에서 살인죄가 사라진다. ‘그알’은 이 석연치 않은 일의 배후에 김형진이 속한 조직 ‘성남국제마피아파’가 있다고 의심한다.

이어 파타야 살인사건과 김형진에 대한 이야기는 성남국제마피아파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성남국제마피아파 출신의 이모 대표가 경영하는 코마트레이드가 나온다. ‘그알’은 전직 경찰까지 포섭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성남국제마피아파의 석연치 않은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은수미 성남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로 향한다. 결론적으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마피아파와 결탁되어 있다는 몇가지 의혹을 제기한다. ‘그알’이 제기한 의혹은 아래와 같다.

1) 2007년 성남국제마피아 조직원들 47명이 기소된 사건에서 변호사 이재명이 그 중 2명의 조직원을 변호하였음(코마트레이드 이모 대표도 함께 재판을 받았음) 
2) 성남시장 시절인 2016년 7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모 대표에게 성남시 중소기업인대상 장려상을 수여함 
3) 성남시청 산하 성남청소년재단수련관에서 성남국제마피아파 조직원과 관련 있는 기관과 MOU를 체결함 
4) 성남시 및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성남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이 딜러로 재직 중인 주차관리회사와 4천만원 수의계약을 체결하고, 성남시가 해당 주차관리회사를 두 차례에 걸쳐 성남시 고용우수기업으로 선정함.



이 여러 의혹을 보고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런 의혹들이 파타야 살인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지?

‘그알’은 파타야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둘러싼 석연치 않은 점에 착안해 그 배후로 성남국제마피아파를 지목했다. 따라서 ‘그알’이 입증해야 되는 가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조폭 조직이 성남에서 기업을 만들고 이 기업을 통해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까지 장악했다. 이 힘을 통해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김형진이 거리를 맘대로 활보하도록 만들었고, 있는 죄까지 없어지게 만들었다”

‘그알’은 방송 초반부에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각도로 취재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가 갑자기 이재명으로 틀어진다. 그리고 이재명과 성남국제마피아파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위에서 정리한 네 가지 의혹)

‘그알’이 파타야 살인사건으로 시작한 취재의 결론을 이재명으로 내리고 싶다면 아래 세가지 중 하나의 가설을 입증해야만 했다.

1. 이재명이 성남국제마피아와 결탁하여 살인사건 용의자를 풀어주도록 수사기관에 압력을 행사했다.
2. 성남국제마피아가 이재명과 쌓은 친분, 네트워크를 통해 살인 용의자의 죄가 삭감되거나 살인 용의자가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힘을 발휘했다.
3. 이재명이 성남국제마피아파에 준 특혜를 바탕으로 성남국제마피아파가 살인 용의자의 죄가 삭감되도록만들거나 살인 용의자가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그알은 위 세 가지 가설 중 어느 것도 입증하지 못했다. 파타야 살인사건에서 제기된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이재명이 마피아파 조직원의 변호를 맡았고 그들에게 기업인상을 수여하고 수의계약으로 특혜를 줬다는 의혹만 쌓아뒀다.

과연 성남국제마피아파가 이재명과 ‘연루’되어 얻은 게 무엇인가? 변호행위? 기업인상? 4천만원의 수의계약? 유력 정치인과 힘들게 관계를 쌓아 얻은 이익이라고 하기엔 민망하지 않은가? 이런 (이재명과 조폭조직의) 몇 가지 관계맺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관계맺음을 통해 이재명과 성남국제마피아파가 ‘더 큰 무엇’을 얻었는가/혹은 도모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알은 방송 맨 처음에 파타야 살인사건을 배치해 ‘더 큰 무언가’가 마치 이 살인사건에 대한 공모행위인 것처럼 묘사했다. (나도 방송 보기 전에 그런 종류의 의혹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알이 제기한 의혹은 살인사건과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파타야 살인사건이라는 자극적인 제목 옆에 이재명 얼굴까지 박아서 방송했다.



‘그알’이 가진 장점은 수많은 정보들을 이야기처럼 재구성해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이다. 이 스토리텔링에는 정보를 얻은 순서도, 취재한 순서도 중요하지 않다. 이 스토리텔링은 정보와 취재 결과물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결국 여러 가설과 의혹을 제거한 채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하지만 ‘파타야 살인사건’ 편에서 그알은 본인들의 취재 순서를 그대로 늘어놓았다. 파타야 살인사건을 파다 보니 성남국제마피아의 실상이 나왔고, 이걸 파다보니 이재명과 관련된 의혹들이 나왔다. 인과관계가 아니라 취재의 순서대로 보도를 구성한 셈이다. 

그동안 그알이 따라온 스토리텔링 방식대로라면 여기서 버릴 건 버리고, 필요에 따라 순서를 뒤집어서 배치했어야 한다. 파타야 살인사건의 미스테리를 다루고 싶으면 거기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파타야 살인사건을 빼버리고 이재명 조폭연루설을 팩트체크하거나. 적어도 이번 ‘파타야 살인사건’ 편에서 그알은 스토리텔링에 실패했다.


P.S
한 가지 더, 취재 대상의 언론에 대한 태도가 그 대상에 대한 의혹 제기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재명 지사가 보도를 앞두고 SBS 윗선에까지 전화를 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의도와 무관하게 언론보도 개입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재명의 언론에 대한 거칠고 무례한 태도가 이재명에 대한 의혹이 사실임을 입증하진 않는다. 이 점은 명확히 해야 한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7.13 14:53

72,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이날의 투어는 전날 만난 흑인 가이드 아저씨와 함께하는 일정이다. 전날 있었던 아부심벨 투어와 보트투어 및 누비아 마을 방문, 오늘 오전 투어까지 비용은 2인 기준 190달러였다. 혹시 아스완 투어가 필요하신 분들은 비용 참조하시길...

 

오후 2시에 아스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카이로 공항으로 가는(그리고 한국으로 가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오전 일정은 빠듯했다. 6시에 일어났다. 현인 알-아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640분쯤 손수 아침을 준비해주셨다. 이집트식 빵에 삶은 계란, 과일 등을 주셨고 맛있게 먹었다.


(알 아민 게스트하우스 숙소 안에서 내다본 풍경. 이 풍경을 놔두고 가야한다니, 너무 아쉬웠다.)

 

아침을 먹고 7시에 정들었던 알-아민 게스트하우스를 떠났다. 아스완에 온다면 이 게스트하우스를 강력 추천한다. 비용도 2인 기준 23일에 44달러로 비싸지 않다. (22박인데 5만원 안 되는 꼴) 방에 팁으로 20파운드를 놓고 나왔다. 이집트 여행 하면서 가장 흔쾌히 놓고 나온 팁이었다.

 

짐을 들고 다시 배를 타러 나가는 우리에게 알-아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부킹닷컴’(booking.com) 평점을 잊지 말아 달라고 했다. 평점 관리까지 하는 센스! 나는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부킹닷컴에 들어가 10점 만점의 평점을 남겼다.


"제가 만난 어떤 호텔의 직원보다 주인 분이 친절했고, 서비스가 좋았습니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는 아스완 KFC 앞 선착장으로 향했다. 또 이집션 들이 배 값을 속일까봐 이번엔 아예 얼마인지 묻지도 않았다. 그냥 1인당 2파운드, 4파운드 동전을 미리 준비한 뒤 손에 쥐어주고 배에 타 버렸다.

 

가이드를 만나 가장 먼저 보러 간 것은 미완성 오벨리크스(Unfinished Obelisk)였다. 앞서 7에서 소개한 바 있는 이집트 유일의 여성 파라오, 핫셉수트가 만들려다가 못 만들었다는 오벨리크스다. 가서 보면 60파운드(학생증 있으면 반값)를 내고 들어가면 만들려다가 실패한 채 그냥 엎어져 있는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볼 수 있다.


(미완성 오벨리스크. 중간에 갈라진 틈이 보인다. 더 갈라질까봐 오벨리스크를 세우지 않고 포기한 채 채석장에 내버려뒀다고 한다.)

 

들어가면 직원이 네셔널지오그래픽에서 방영한 미완성 오벨리크스 관련 영상을 보여준다. (가이드가 미리 섭외한 것인지 원래 제공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완성되었다면 높이가 42m, 무게가 1200톤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오벨리스크였다. 오벨리크스를 만들려고 돌을 자르는 도중에 버려져서 미완성이 되었는데, 중간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금이 생겨서 제작을 포기했다. 채석장에 버려진 상태로 3500년이 넘게 있는 셈이다. 미완성 상태로 버려져서 현대인들이 고대 이집션들의 석조 기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고 한다.

 

(미완성 오벨리스크 앞에서.)


미완성 오벨리크스를 보고,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향수 가게였다. 가이드 투어의 단점이다. 투어 시간이 급박한 데도 꼭 투어를 하면 이런 데를 끼어 넣는다. 지난 번 피라미드 여행 때처럼 가게에서 콜라라도 줄까 하는 기대감에 암말하지 않고 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콜라는 없고 이집트 전통차만 줬다. 아무래도 상술인 것 같았다. 전통 차는 만드는데 시간이 좀 걸리고, 뜨거워서 다 마시는 데도 오래 걸린다. 고로 그 시간 동안 손님을 잡아둘 수 있다. 콜라를 주면 그냥 원샷해 버릴 테니까. 향수가게에서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아빠 선물로 향수를 살까 했는데, 뭔가 사기 같은 느낌이 나서 안 사기로 했다. (정품이 아닌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다만 향수가게에서 얻은 것도 있었다. 이집트 여행 내내 의문이었던 한 가지가 풀린 것이다. 이집트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서부터(두바이공항부터) 내 코를 강하게 찌르던 정체를 모를 향수 냄새가 있었다. 이집트 남자들이 주로 바르는 향수 냄새 같았는데, 이집트 여행 내내 이 강한 향수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무슨 향인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파피루스 향수였다. 향수가게 주인이 내 손등에 살짝 발라줬는데도 거의 하루 종일 냄새가 남아있을 정도로 강력한 향이었다.

 

향수 가게를 잠시 들렀다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필레 신전이다. 이시스 신전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지금은 아킬라섬이란 곳에 있는데, 원래 필레섬에 있었기 때문에 흔히들 필레 신전이라 부른다. 아부심벨도 그렇고,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이집트 정부가 유네스코 도움을 받아 지금의 위치에 이전했다. 신전을 이전할 때 전체를 다 분해해서 돌 하나하나에 번호를 붙인 뒤 퍼즐 맞추기를 하듯 복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전에 가서보니 돌 하나하나에 다 번호가 붙어 있었다.

 

(필레 신전 가는 길. 이집트에서 타는 마지막 배가 이 배였다.)


섬에 있기 때문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신전이다. 신전 입장료는 100파운드다. (학생증 있으면 할인) 배 값은 따로 받지 않았는데 아마 가이드가 낸 것 같았다.(투어 비용에 포함. 아마 가이드 없이 가는 사람은 배 값을 따로 내야할 듯.) 필레 신전은 섬에 있어서 그런지 경치가 정말 좋은 신전이었다.

 

필레 신전을 오가는 길에 탄 배는 모터만 달렸지 돛단배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작은 소형선이었다. 내가 왼쪽에 있다 오른쪽으로 움직이자 배가 휘청거렸고, 앉아서 손을 뻗으면 강물이 닿았다. (강물에 손을 대려고 몸을 기울여도 배가 휘청거렸다. 짝은 움직이지 말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너 때문에 집에 가는 날 나일강에 빠지고 싶지 않다며..)


(필레 신전 입구.)


(필레 신전 안에서.)

 

필레 신전 가는 길을 포함해서, 아스완은 배를 타고 보면 경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어디서 타든, 아스완에서는 배를 타고 여행을 해볼 것을 추천한다. 필레신전 오갈 때 배 값은 안 냈지만 가이드가 뱃사람들에게 팁을 주라고 해서 20파운드를 주었다.

 

필레 신전에는 고양이가 정말 많았다. 날씨가 매우 더웠는데, 큰 선풍기를 틀어놓은 카페테리아에 가니 이 동네 고양이들이 모조리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여기 고양이들은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있다. (시원해서 딴 데 가기 귀찮아서 그런 것 같다.) 섬에 콜라나 물을 파는 상점이 있는데 관광지답게 일반 상점보다 비싸다. 미리 물을 준비해가는 게 좋다.


(이집트에서도 고양이는 귀엽다.)

 

필레 신전 다음으로 향한 곳은 아스완 하이댐이다. 입장료는 1인당 30파운드였다. 필레 신전, 그리고 아부심벨 신전을 이전하게 만든 그 문제의 댐이다. 알다시피 고대부터 나일강은 자주 넘쳤다. 그리고 넘친 뒤 토양이 비옥해지면서 이를 바탕으로 나일강 주변의 문명이 발달했다. 그런데 인근 유역에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나일강 범람을 막고 관계 및 농경을 위해 전력 발전을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서 만든 게 아스완 하이댐이다.

 

52년 이집트공화국을 출범한 나세르 대통령이 댐을 쌓기 시작했다. 기존에 로댐이 있었는데 이걸로는 범람을 막고 전략발전을 이끄는데 부족해서 만든 게 하이댐이다. 처음에 미국과 영국이 돈을 대다가 사이가 틀어지면서 소련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준공기념탑에 아랍어와 러시아어가 함께 쓰여 있다.) 이 과정에서 수몰지역에 있던 아부심벨과 필레 신전을 옮겼고, 9만 명이 거주지를 옮겼다. 누비아 족만 빼고 대부분 댐 건설에 찬성했다고 한다.


(하이댐 위에서 바라본 풍경.)

 

하이댐은 볼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입장료가 30파운드...) 그냥 하이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을 듣고 댐 주변 경치를 둘러보는 정도다. 일정이 바쁘거나 빡세신 분들은 굳이 안 들러도 될 듯.

 

(하이댐을 배경으로. 이게 이집트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하이댐까지 구경을 마치니 오전 11시 반 쯤 되었다. 가이드가 아스완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 가이드에게 팁 20파운드를 주고, 바이바이 했다.

 

아스완 공항에서 2시 비행기를 타고 4시에 카이로공항 도착 예정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 이집트 공항에선 정시 출발을 기대해선 안 된다. 아스완 공항은 비행기 타러 가는 길에 피자 조각이나 샌드위치 같은 걸 파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남은 이집트 화폐도 해치울 겸) 이집트 국내선 공항에선 기내식을 주지 않고 비스킷 같은 것만 주기 때문에 밥을 먹고 비행기를 타야 한다.

 

아스완 공항에서 내려서 카이로 공항에 왔다. 한국으로 가려면 640분 비행기를 타야 했다. 카이로공항은, 정말 돌아가는 날까지 우리를 지치게 했다. 나랑 내 짝은 각자 다른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상황이었다.(짝은 다음날 새벽, 모스크바 경유 비행기) 내가 돌아가는 비행기 티케팅을 하기 위해 짐 검사를 한 뒤 안으로 들어왔고 내 짝도 같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들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공항 직원이 내 짝을 불렀다. (그리고 그 뒤 난 짝을 서울에서 만났다..)

 

짝은 다음날 비행기라서 아직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짝이 잠깐 인사만 하고 오겠다고 했으나 절대 안 된다고 했다. 8일을 같이 다닌 우리는...그렇게 카이로 공항에서 인사도 못한 채 헤어졌다.

 

티케팅도....굉장히 오래 걸렸다. 보통 우리는 비행기 타면 한 시간 전에 티케팅을 다 끝내고 기다리면서 이것저것 하지 않나? 그런 걸 이곳에서 기대하면 안 된다. 늦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비행기도 늦게 출발한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바이 경유를 통해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니 73일 오후 5시였다. (다음날 바로 출근을..ㅠㅠ) 624일 출국해서 73일 귀환, 9일 만에 꿈같았던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복귀했다.

 

(아스완을 떠나며 남긴 팔찌 사진.)


*이집트 여행 총평.

 

프랑스도 가보고 이탈리아도 가봤는데 유적지가 주는 웅장함은 이집트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느낌이 , 이 그림 진짜 잘 그렸다.”였다면 이집트의 유적지를 보면 ...사람이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지?”라는 생각이 든다. (+ “유럽 놈들이 훔쳐온 게 원래 여기 있던 거였구나!”)

 

이렇게 좋은 곳이지만 혼자 가는 건 비추다. 나도 한 번 가보고 나니 다음번엔 자신감이 생겨서 혼자 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처음 갈 때는 친구들이랑 가거나 단체 투어를 추천한다. 인도 삐끼도 심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집트까지 다녀와 본 어떤 사람은 이집트에 비하면 인도 삐끼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여행을 많이 다니진 않았지만 다른 나라에서 경험한 삐끼들은 그래도 최소한의 이라는 게 있었다. 싫다고 몇 번 이야기하면 다시 접근하지 않는다거나, 먼저 호감을 갖게 한 뒤 나중에 슬쩍 무언가를 팔려고 한다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달라고 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만난 삐끼들은 그런 게 아무것도 없다. 그냥 내 내면에 존재하는 짜증과 폭력성만 깨닫게 된다. 최소한의 노력도 안 하고 무작정 돈을 달라고 한다. (6에서 소개한 알린 정도의 삐끼라면 속아줄 수 있다.) 유적지 안에서 아무 유물이나 가리키면서 아무 소리나 해대고 돈을 달라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어떤 삐끼는 놀이터 모래더미에서 막 주은 것 같은 담배꽁초를 들이대며 원달러 원달러라고 했다. (원달러 주는 것도 안 내키는데 나보고 쓰레기까지 가져가라는 거냐?)


(인간의 폭력성을 실험하기 위해 사람들을 룩소르로 보내보겠습니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들까지 외국인만 나타나면 조각품 같은 걸 들고 "원달러 원달러" 한다. (많이 안타까웠다나라에 관광 말고 다른 산업이 없으니 어렸을 때부터 외국인 상대로 삐끼짓하는 것 말곤 먹고 살 궁리가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집트에서 본 많은 유적지와 잊지 못할 풍경과 야경, 그리고 (-알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을 비롯해) 그 안에서 찾은 이집트의 양심들. 그들이 떠올라 이집트는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다. 특히 후르가다와 아스완은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카이로는 공항이 거기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들러야 하겠지만, 삐끼천국이던 룩소르는 솔직히 다시 가고 싶지가 않다;;) 이번에 못 가본 알렉산드리아랑 다합도 다음 번엔 꼭 다시 가고 싶다.

 

그리운 이집트!

만약 다시 가게 된다면 또 여행기 형태의 기록으로 남겨보겠다.

 

그럼 이만, .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7.11 14:42

 

이집트 최남단 아부심벨로 가는 길은 71일 아침, 아니 새벽에 시작됐다.

 

전날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10시반 경. 씻고 이것저것 다하니 12시가 넘었다. 2시간 밖에 못 잘 것 같아서 난 그냥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짝은 잠들었고, 난 침대에 누워서 그동안 찍은 사진들 좀 보고 한국 소식도 검색해보고 하다가 2시가 좀 넘어서 일어났다.

 

씻고 두 시 반에 숙소를 나가려는데 옆방에 있던 한 외국인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에게 아부심벨에 가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하자 자기도 아부심벨로 가는 차를 타야 한다며 5분만 기다리면 같이 배를 타고 나가자고 했다.


(이른 새벽, 배를 타러 나가는 길.)

 

그래서 그 외국인과 함께 아스완 KFC(픽업 장소)로 가는 배를 탔다. 정류장에는 웬 흑인 소년이 혼자 배를 띄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룩소르까지만 해도 아랍인들이 많았는데 아스완부터는 아프리카라는 느낌이 확 났다. 여기서부터는 아랍인보다 흑인이 훨씬 많다.)

 

아침이나 낮에 타는 배는 각 2파운드 밖에 안 했는데 새벽에 타는 배 값은 25파운드나 했다. 같이 온 외국인이 새벽은 원래 비싸다고 들었다고 했다. 따지자면 그 흑인 소년이 아부심벨에 가는 우리를 태우기 위해 새벽에 나온 셈이다. 야간노동에 대한 값이라 생각하고 아무 말 하지 않고 50파운드를 냈다.

 

KFC 앞에서 그 외국인과 함께 픽업 차가 오길 기다렸다. 그녀는 독일에서 왔으며, 시리아와 터키의 국경지대에서 난민 관련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라고 했다. (삐끼들이 가득한) 이집트에 혼자 여행 온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이력을 듣자 수긍이 갔다.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을 텐데, 삐끼들 정도야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에도 난민들이 와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어디냐고 물어보길래 예멘이라고 했더니 바로 이해한 것 같았다. 제주도로 500여명의 예멘인들이 난민 신청을 하러 왔지만 한국은 단일민족국가이고 이런 일을 처음 겪어봐서 그런지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녀는 그런 우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그녀는 이집트에 와서 삐끼들한테 많이 시달렸다며 다음 행선지는 후르가다라고 했다. 우리는 후르가다는 쉬기 딱 좋은 휴양지이며, 독일인들이 매우 많다고도 전했다. (4편 참조) 픽업하러 온 차가 달라서 그녀와 우리는 서로 다른 차를 타고 헤어졌다. 그녀는 휴가를 마치고 다시 시라아 터키 국경지대로 간다고 했는데, 별 일 없이 자신의 임무를 다하길 기원한다.

 

여튼 우리는 아부심벨로 가는 봉고차를 탔다. 우리를 픽업하러 온 기사와 그 기사의 친구는 굉장히 시끄러운 놈들이었다. 그들은 아부심벨로 가는 3시간 내내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봉고차에는 우리 말고도 멕시코에서 온 남자 두 명과 (국적은 잊어버렸으나 직업이 교사라고 했던) 여성 한 명이 탑승했다. 멕시코 남자 두 놈도 굉장히 시끄러웠다.

 

아부심벨은 이집트 남부인 아스완에서도 3시간을 차타고 달려야 나온다. (아스완에서 280km 떨어져 있음) 수단과 국경지대로, 이집트 최남단이다. 3시간을 달려 6시 반 쯤 아부심벨에 도착했다. 우리를 맞이한 건 역시 삐끼들이었다. 그래도 아스완 삐끼들은 룩소르보다 낫다. 싫다고 하면 따라오진 않는다.


가이드가 우리들에게 한 명 붙었는데,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아부심벨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식으로 투어를 시작했다. 아부심벨에는 신전이 크게 두 개가 있다. 아부심젤 대신전이라 불리는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지은 신전으로, 입구에 4개의 좌상이 있다. 4명 모두 람세스다. 람세스 어렸을 때, 람세스 늙었을 때 등등 조금씩 다른 모습의 좌상들이라 한다. (람세스2세는 자기 과시가 굉장히 강했던 사람 같다.)


(아부심벨 대신전 앞에서. 저 뒤에 보이는 석상 네 개 모두가 람세스2세다;;)

 

신전 안은 매우 넓고 화려했다. 람세스2세의 자의식 과잉을 한껏 느낄 수 있다. 깜짝 놀란 건 신전 안에서 뭐가 시끄럽게 날아다니기에 새인 줄 알았는데 한 무리의 박쥐들이었다. 입구에 가면 웬 이집션이 굉장히 큰 열쇠 같은 걸 들고 관광객들한테 건네주는데, 이 열쇠 비슷하게 생긴 건 symbol of eternity라고 했다. 처음엔 삐끼인 줄 알았는데 삐끼는 아니고 그 열쇠를 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아부심벨 알바였다. (돈 안 줘도 됨)

 

(불멸의 상징은 요렇게 생겼다. 이집트 신전 안에서 이 문양을 많이 볼 수 있다.)

 

람세스2세가 지은 신전(룩소르신전, 카르나크신전, 아부심벨신전) 안에는 유독 저 “symbol of eternity”이 많았다.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거나 다른 사람이 왕에게 저 상징물을 바치는 장면이 벽화로 조각되어 있었다. 아마 모든 것을 손에 넣은 파라오가 유일하게 손에 넣지 못한 게 불멸이어서 거기에 집착한 게 아닐까 싶었다.


신전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돈 앞에 안 되는 게 어디 있으리. 돈을 더 내면(300파운드) 사진을 찍는 티켓을 준다. 안에서 사진 찍는 분들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 사진 찍으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는데 크게 들렸나보다. 그 분들이 한국어로 저희 돈 내고 샀어요~”라고 하셨다. 알고보니 한국에서 관광 온 비구니 스님들이었다.

 

아부심벨 대신전 옆에는 작은 신전이 하나 있다. 람세스2세의 부인이었던 네페르타리를 위해 람세스가 지은 신전이다. 람세스 2세 부인들이 많았는데, 그 중 람세스2세가 가장 아꼈던 부인이라고 한다. (소설 람세스에도 나온다. 투탕카멘의 의붓어머니인 네페르티티와는 다른 사람이다.)

 

(네페르타리 신전 앞에서.)


많이 사랑했으니 신전까지 만들었겠지 라고 생각하고 네페르타리 신전을 가보았는데, 신전 앞에 있는 6개의 입상 중에 2개만 네페르타리고 나머지 4개는 람세스2세였다. 기껏 부인한테 주는 신전을 만들어놓고 그 문 앞에 정작 자기 석상을 4개나(자기 부인보다 많이) 박아놓은 것이다. 참 자의식이 강한 파라오였구나 싶었다.

 

아부심벨 대신전 앞에는 바로 강이 펼쳐져 있다. 그 강 너머가 바로 수단이다. 아부심벨은 원래 이곳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있던 장소에서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가 함께 수단 국경지대인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것이다.

 

(저 강을 지나면 바로 수단이 보인다고 한다.)


아부심벨은 굉장히 유명한 유적지고 웅장하지만 정작 둘러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큰 신전 하나랑 작은 신전 하나에 주변 경치 정도다. 2시간 만에 다 둘러보고 8시 반에 다시 돌아오는 봉고차를 탔다. 앞의 두 놈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피곤해서 그런지 3시간 내내 잠들었다.

 

아스완에 다시 돌아올 때가 되자 버스 기사 옆에 앉아 있던 이집션이 우리한테 봉투를 건넸다. 팁을 넣으라는 거였다. 이놈들은 한 게 뭐가 있다고 대놓고 팁을 요구한다. (봉고차 기사야 운전이라도 했지 그 옆의 놈은 시끄럽게 떠든 거 말고 한 게 없었다.) 우리는 돈이 아까웠지만 억지로 5파운드를 넣었다.

 

봉고차는 멕시코인 두 명을 픽업했던 장소에 멈췄다. 아스완의 뜨거운 태양이 비추는 도로 한 복판이었다. 이집션들은 차 문을 열더니 여기서 내리면 5분 뒤에 너희 숙소에서 픽업을 하러 올 거라 했다. 멕시코인들은 여기 있다가 차가 오면 내리겠다. 밖이 뜨거워서 밖에 있고 싶지 않다고 하차를 거부했다. 이집션들은 “5분이면 온다고 했으나 멕시코인들은 너네가 하는 5분이란 말 안 믿는다.”고 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10분 넘게 지나서 차가 왔고 멕시코인들이 내렸다.

 

참고로 이집션들은 관광객들을 상대할 때 입버릇처럼 ‘5분만아니면 ‘1분만’(one minute)을 외치는데 절대 믿으면 안 된다. 그게 10분이 될지 30분이 될지 12일이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도 다른 외국인들과 작별하고 KFC 앞에서 내렸다. 배가 고파서 KFC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명색이 KFC인데 카드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카드기가 있었는데도. 가격은 매우 쌌다. 세트메뉴 2개를 시켰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만 원이 안 됐다. 하지만 싼 이유가 있다. 햄버거 내용물이 매우 부실했기 때문이다. 대신 감자튀김은 짜지 않고 맛있었다.


KFC 직원은 거스름돈이 1파운드 모자라자 "원 미닛"(1분만 기다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식사를 다 할 때까지 1파운드는 주지 않았다. 내가 다시 가서 1파운드 달라고 하자 그제야 거스름돈을 줬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배를 탔다. 근데 정류소에 있던 놈이 배 값이 1인당 10파운드라고 했다. 어제밤에 탔을 때 분명 2파운드였는데. 우리가 "어제 2파운드 내고 탔다. 우리는 가격을 알고 있다"라고 했더니 "리얼리?"라면서 그럼 2파운드만 내라고 한다. 이쪽 사람들은 가격을 물어보면 그냥 머리에 떠오른 숫자를 아무거나 이야기하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민망함도 없다. 

 

다음 투어 일정은 아스완 섬들을 보트로 돌아보는 보트투어였다. 하지만 오후가 되어도 여행사에서 어디로 나오라는 연락이 오질 않았다. 우리를 아부심벨에 데려다 준 일당들한테 물어봐도 아무것도 몰랐다. (우리는 분명 EYE OF HORUS라는 회사랑 계약했는데, 아부심벨 투어랑 보트투어가 각각 아스완의 다른 회사들에서 진행됐다. 아마 손님을 잡으면 커미션을 받고, 다른 여행사들에 팔아넘기는 시스템인 것 같다.)

 

여행사 사장한테 연락을 취해도 답이 없었다. 고민하던 순간에 우리 앞에 이집트의 현인, 엘 아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나타났다. (현인 이야기는 7편 참조) 우리는 현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고민을 듣고 있던 현인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잠시 뒤 우리를 안내해 줄 가이드에게 연락이 왔다. 숙소에서 쉬고 있으면 4시 반에 픽업하러 오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4시반에 가이드가 숙소 앞으로 보트를 끌고 우리를 픽업하러 왔다. 아아, 현인 엘-아민. 그저 빛...


(아...엘 아민. 그저 빛...)

 

숙소에서 뻗어서 자다가 일어났고, 네 시 반에 연락이 왔다. 나가보니 숙소 바로 앞에 보트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 보트를 타고 가이드와 함께 바로 보트 투어에 나섰다.


(보트 투어를 통해 둘러본 아스완 섬 일대.)

 

(아가사 크리스티가 틀어박혀서 소설을 쓴 아스완 호텔이라고 한다. 저런 데서 글 쓰면 진짜 잘 써질 것 같다.)


나일강 유역을 한 바퀴 도는 보트투어였다. 나일강은 물이 정말 깨끗했고 경치도 좋았다. 돈만 많으면 이런 데 집 하나 짓고 살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나일강에서 수영을 할 수 있냐고 물었고 가이드는 현지인들이랑 관광객들이 종종 수영하는 곳에 우리를 떨구어 주었다.

 

그래서 한 20분 동안 나일강에서 수영(이라기보다 몸 담구기)을 했다. 물이 너무 깨끗해서 안이 다 보일 정도였다. 물이 매우 시원해서 오래는 들어가 있지 못했다. 그래도 오들오들 떨리는 정도는 아니었고, 온 몸이 맑아지는 기분 좋은 시원함이었다.


(나일강 수역. 사람들의 안구 보호를 위해 몸은 자체 모자이크 처리했다.)

 

보트 투어 중에 한 섬에 도착했다. ‘엘레판티네(Elephantine)섬이었다. ’코끼리의 귀란 뜻으로, 섬이 코끼리 귀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그곳에는 이집트의 소수민족인 누비아 족이 사는 누비아 마을이 있다. 이 섬에서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누비아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열 전달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곳에 지어지는 건물은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고 했다. 건물도 형형색색 매우 예뻤다. 푸른색과 초록색을 좋아해서 독특한 색감의 그림 같은 건물들이 많았다. 여행 내내 엄마 선물로 뭘 살까 고민했는데, 여기서 수제 스카프를 득템했다. (5000원 밖에 안 함)


가이드가 한 집으로 들어가서(관광코스) 누비아 족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보여주었는데, 이 집에는 악어가 있었다. 원래 나일강에는 악어가 많아서, 고대인들은 악어 때문에 사투를 벌였다고 한다. 관광코스로 악어를 이렇게 집에 가둬놓는 것 같았는데, 악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해서 기르는 게 아니면 이런 악어는 그냥 풀어줬으면 좋겠다.


(건물이 진짜 예쁜 누비아 마을.)


(누비아 마을을 배경으로. 옆에 있는 흑인 아저씨는 가이드.)


(누비아에선 이렇게 낙타들이 개나 고양이처럼 흔하게 돌아다닌다.) 


누비아 마을에서 기억 남는 곳은 초등학교였다. 가이드가 방학 때문에 텅 비어 있는 누비아 마을 초등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외국인을 위해 관광 코스로 만들어놓았음) 교실에 들어가보고, 그곳에 있던 선생님이 아랍어와 누비아어 알파벳을 소개해주었다. 아랍어로 내 이름도 써보았다. 내 이름이 윤호라고 말하고, 알려주는 대로 썼는데 알고보니 내가 글자의 발음은 윤호가 아니라 유후에 가까웠다고 한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유후라고 알아들으신 모양이다.

 

(암기를 못해서 한국식 체벌 중....)


(아랍어 공부를 해보았다.)


(누비아 초등학교 교실의 안과 밖.)



해질녘의 아스완 섬 일대는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는 배 사공 두 명에게 30파운드를 팁으로 주었다. (가이드는 다음날 또 만날 거라서 다음날 주기로) 저녁은 보트 투어를 하다 마주친 누비안 레스토랑(nubian restaurant)에서 하기로 했다. 옆에 나일강이 보이는 매우 예쁜 레스토랑이었다.

 

(엘레판티네 섬의 선박장 모습,)


누비아 전통 빵과 누비아 전통 밥, 생선조림 등을 먹었는데 특히 생선 조림이 맛있었다. 토마토와 양파 소스에 절인 생선 조림이었는데, 입에 살살 녹는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특이한 맛이 났다. 혹시 아스완에 오면 한 번 먹어보길 추천한다. 엘레판티네 섬에서 배를 타고 5분만 가면 나오는 곳이다.

 

(누비안 레스토랑에서 마신 논알콜 맥주,)


(누비안 레스토랑의 전통 빵.)


(누비안 레스토랑에서 먹은 음식들. 오른쪽 빨간 물체가 토마토에 절인 생선조림이다.)


레스토랑에서 주문 받던 아저씨는 우리한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south or north?”라고 되물었다. 코리아라고 했을 때 이렇게 되물어본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웃으면서 남한이라고 하자, 그 아저씨는 북한의 젊은 지도자에 대해 알고 있냐고 물었다. “김정은?”이라고 다시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집트를 포함해 수많은 나라의 독재자/집권자들이 김정은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집트 정치인들도 매우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젊은 독재자가 (트럼프나 시진핑 같은) 세계의 주요 지도자들을 만나며 보여주는 모습, 그리고 앞으로 북한의 변화에 매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역만리에서 BTS 다음으로 대화 주제로 등장한 (노스)코리안이 김정은이었다...

(이 식당에도 고양이가 있었다.)

 

누비안 레스토랑에서는 아예 수상택시를 운영하고 있었다. 40파운드를 내니 엘 아민 게스트하우스 앞까지 데려다준다. 밥 먹고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왔다. 룩소르는 유적지들은 좋았지만 날씨도 덥고 삐끼들 때문에 정말 피곤해서 다시 오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스완은 또 오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기온 자체는 높았지만 강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시원했다.


(누비안 레스토랑의 야경.)

 

돌아가니 빛-아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우릴 기다리고 계셨다. 옆방이 비었다며 옆방으로 옮겨서 머물러도 된다고 했다. 지금 머무는 방은 에어컨 조정하는 게 바깥에 있어서 조금 불편했는데 옆방은 에어컨을 방 안에서 조정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 자신의 편의가 아니라(대부분의 이집션들은 이랬다) 손님의 편의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는 빛-아민. 우리는 현인의 제안대로 방을 바꿨다.

 

그렇게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밤이 흘러갔다.

 


다음 편은 아스완 2일차,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날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