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7.10.10 16:38

http://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24371


언젠가부터 뉴스를 잘 믿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정치세력과 손잡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민을 기만하는 일부 언론의 모습을 지켜보며, 언론은 세상을 비추는 조금 더러운 거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영화 <공범자들>에서 고발하는 부끄러운 지식인들의 모습도 한몫했다. 그들은 공영방송을 장악해 감시견이 되어야 할 언론의 입을 막아 버렸다.

  한때 언론인을 꿈꾸며 신문방송학과 진학을 준비하던 시절, ‘뉴스’가 주제였던 학교 도서전에서 이 책을 만났다. 언론의 순기능만을 역설하는 입문용 책이 아닌, 한국 언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꼬집는 책이 필요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얕고 방대한 뉴스들이 손바닥 안을 떠다니는 지금, 언론사를 취재하는 언론 <미디어오늘>의 조윤호 기자는 <나쁜 뉴스의 나라>를 썼다. ‘기레기’라는 말이 상징하는, 언론을 향한 대중의 불신을 뼈아프게 인정했다. 그리고 독자에게 언론이 썩었다고 욕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한국 언론의 관행과 시스템에서 비롯된 어두운 그림자를 직면하라고 외친다. ‘그럼 그렇지’라고 눈 감고 외면하는 순간, 변화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항상 진실만을 말하지는 않는 뉴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조윤호 기자는 그 인식을 바탕으로 더 분석적으로 뉴스를 읽을 것을 제안한다. 미디어의 의도와 맥락을 알게 되면서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현명한 지침서가 되어주는 책이다.

  침묵하는 미디어가 무서운 이유는 뭘까? 집회나 행진이 있을 때 누가 무슨 이유로 하는 것이며, 그들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침묵하다가 충돌이 발생하면 그제야 보도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진짜 알아야 할 것은 숨기고 본질과 무관한 자극적인 면을 부각하는 것이다. 뉴스에 별 관심이 없거나 뉴스를 의심하지 않고 무심코 지나친다면, 우리는 미디어의 의도에 맞게 움직이게 된다. 미디어는 현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 나간다. 우리는 이미 그걸 겪고 있다.

  나쁜 미디어는 나쁜 대로 내버려 둬야 할까? ‘세상이 원래 그래’라고 자조하며 머물러야 할까? <나쁜 뉴스의 나라>라는 제목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 섬뜩하다. 이 책에서는 “언론과 미디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보여 주고 싶은 것을 부각시키며 의제를 만들어 내고 자신들이 설정한 프레임에 맞춰 뉴스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이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본심을 숨긴 뉴스에 익숙해져 현실에 더 무감각해질지 모른다.

  의미를 생각할 틈도 없이 오늘도 수많은 미디어로 눈과 귀를 채우는 우리들, 늦기 전에 뒤돌아보자. ‘나쁜 뉴스의 나라’에서 잘 살아 가고 있는 것인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글 | 손유라 (미디어 17)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7.10.03 11:13

https://univ20.com/75913

[Question] MBC, KBS는 없어도 된다고?

우리가 주인이다, 이제 언론을 장악하자.

“MBC, KBS 없어도 돼. JTBC 뉴스 보면 되지. 드라마는 tvN 보면 되고.” 얼핏 맞는 말처럼 들린다. KBS 뉴스가 여론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끝났고, ‘드라마 왕국 MBC’도 이제 옛말이다. MBC와 KBS, 두 공영방송 없이도 우린 재밌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게 다일까?

 

음수사원(飮水思源). 상암 MBC 사옥에 걸려 있는 글귀다. 풀이하자면 “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언론인들이 언론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언론의 근원은 어디일까? 시청자일까?

 

안광한 전 MBC 사장은 2014년 9월 MBC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해 ‘음수사원’에 대해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청자 여러분, 여러분의 고마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글귀에는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MBC 대주주인 정수장학회의 전신, ‘5·16 장학회’에 친필로 남겼던 글귀가 바로 ‘음수사원’이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MBC에 걸려 있는 이 글귀의 의미가 색다르게 다가온다. 권력자는 늘 여론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어 하고, 이를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 언론 통제였다.

 

따라서 권력자가 말하는 ‘음수사원’이란 “시청자를 생각하라”가 아니라 “권력의 눈치를 보라”는 말로 들린다. “너희들의 진짜 주인이 나라는 거, 알지?”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언론의 근원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MBC와 KBS, 두 공영방송 언론인들이 방송 독립을 외치며 파업 중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언론인들의 ‘방송 장악’이라 말한다. 글쎄, 아마 언론의 근원을 정치권력에서 찾고 있는 이들이라면,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자는 언론인들의 요구가 자신들의 것을 빼앗아가기 위한 ‘장악’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방송 장악은 필요하다. 공영방송을 마침내 국민의 것, 우리의 것으로 가져오기 위한 장악 말이다. 공영방송은 공공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해 방송을 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MBC와 KBS의 언론인들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그것은 우리가 MBC와 KBS를 포기해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뉴스룸> 같은 뉴스를 만들지 못해도, <도깨비> 같은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MBC와 KBS가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예능, 젊은 층의 니즈를 겨냥한 드라마, 한층 더 깊이 들어가는 뉴스는 케이블 채널과 종편이 더 잘 만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방송은 우리 것이 아니다. 다른 주인이 있다. 그 주인의 이름은 사주, 광고주 등등으로 다양하다. 우리나라 방송법에는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에 관한 규정이 있다.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 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방송법 제6조 5항의 내용이다.

 

왜 소수자나 약자를 대변하라고 법으로 규정했을까? 기득권과 강자는 자신의 입장을 외칠 수 있는 마이크도 많고 뜻을 관철시킬 수단도 너무 많은데, 소수자나 약자는 그런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방송이 나서서 그 불균형을 바로잡아주라는 뜻이다.

 

MBC와 KBS가 사라진다면, 또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사그라든다면 우리는 어떤 언론에 이런 공공성을 요구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억울할 때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미디어 경쟁이 극에 달해, 언젠가 시장의 논리가 방송과 언론을 완전히 지배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언론의 공공성과 공익성은 좋은 시절 한가한 소리로 취급 받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니다. 내일도 아닐 것이다. 여전히 방송의 공공성을 붙들고 있는 언론인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인이다, 이제 언론을 장악하자.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7.10.03 11:12

2017년 9월 둘째 주 좋은 기사 솎아보기

1. 자살 위기자, 주거형태 보면 알 수 있다

죽음을 미리 예측하고 막을 수 있을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 죽음이 자살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경향신문과 비영리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은 인구와 지리정보, 과거 자살자 통계 등을 이용해 자살 위기자가 많이 사는 지역을 파악했다.

변수는 주거 환경이었다. 지역과 관계없이 20평 이하, 월세로 사는 이들 중에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는 자살 위기자가 가장 많았다. 자살의 원인을 파악할 때 우울증 같은 심리적 문제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남도 예외가 아니었다. 화려해 보이지만, 실은 오피스텔과 고시원이 밀집해있고 1인 가구가 전체의 60%를 차지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데이터는 정부의 정책 결정에 직접 적용할 수 있다. 자살 예방 인프라를 확대할 때 필요한 우선순위를 정하고 보조금을 편성할 때 필요하다. 데이터와 데이터를 통한 정책 집행이 만나면 ‘자살률 OECD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경향신문

경향신문 큐레이션

2. 대학가를 떠나지 못하는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들

자살의 변수가 될 정도로 주거환경은 한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다. 머니투데이가 집 이야기만 나오면 한숨 나오는, 집이 짐이 되는 대한민국의 주거 현실에 대해 짚었다. 대학생들은 닭장 같은 방에서 숨만 쉬는데 3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재학생 10명 중 2명만 기숙사 거주가 가능할 정도로 주거가 온전히 민간의 시장 영역에 떠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졸업 후, 취업 후, 심지어 결혼 후에도 대학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도 많다. 주거비 부담 때문이다. 수요가 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대학생들이 오히려 대학 가에서 밀려나는 현상도 발생한다. 이러한 주거 대란은 사회의 재생산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국토연구원이 1인 청년 가구(총 5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주거비 부담이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출산·양육(86.7점) △결혼(83.1점) △연애(65.4점) 등이 제시됐다.

청년들이 살 집이 없다는 것은 단지 청년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결혼을 앞둔 자식의 집 마련을 위해 중장년층이 살던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 주거를 해결해야 사회 전체의 삶이 개선될 수 있는 이유다.

● 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3. 예견된 눈물, 사학법이 낳은 괴물

문재인 정부 들어서 적폐청산 작업이 한창이다. 이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사학 적폐’다. 사립학교 총장과 총장 일가의 각종 비리에 대해서는 잘 알려졌지만, 사실 이런 비리는 ‘사학법이 낳은 괴물’에 가깝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사학 적폐 청산이 사학법 개정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한다.

전국에 있는 404개의 대학교 중 사립학교는 354개. 이들 사립 대학 가운데 분규사태를 겪은 학교만 약 86개에 달한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분쟁을 조정하기는커녕 분쟁을 키웠다. 논란이 된 상지대 김문기 전 이사장의 둘째 아들을 이사로 복귀시키는데 기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이런 사학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를 이명박, 박근혜 등 보수 정치인들이 촛불집회까지 해가며 막았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부터 사학 적폐는 국가 권력과 결탁해 키워졌다. 1986년 상지대는 총장 비리를 고발하려는 학생들을 상대로 ‘용공 조작’ 사건을 일으켰고, 이는 당시 안기부와도 관련되어 있었다. 사학의 엽기적인 비리 행각보다 더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비리를 조장하고 방조한 국가 권력과 제도다. 국가가 사학에 교육의 책임을 외주화한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짊어졌다.

● JTBC 스포트라이트

스포트라이트 큐레이션

4. 국가가 함께 만든 ‘교육사업 하면 돈 번다’ 는 말

사립유치원들이 뭇매를 맞고 있다. 국공립 유치원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며 집단휴업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강경 대응과 여론의 부정적인 반응에 밀려 휴업을 사실상 포기하긴 했지만, ‘아이들을 볼모로 사익만 추구하려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학에 이어 사립유치원들도 또 다른 괴물이 돼버린 걸까? 시사IN은 사립유치원들이 성장하게 된 과정에서 이들의 반발을 읽어냈다. 역시, 문제는 정책과 제도였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에서 사립 유치원 수가 급증했다. 유치원 취학률을 38%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숫자를 채우기 위해 사립 유치원을 마구잡이로 허가해준 결과다. 시설 규정은 대폭 완화되고 유치원비 제한도 없어졌다. 사학과 달리, 법인 전환도 없이 개인들이 사립 유치원을 설립했고 초중고 감사에도 허덕이던 교육부는 사립유치원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무상보육을 한답시고 2012년부터 사립 유치원에 대한 국고 보조금을 늘렸다. 돈만 주고 감시는 하지 않은 셈이다. 사립유치원들에는 호시절이었다. 유치원 원장들은 일가족을 채용해 보조금을 받고, 누리과정 지원금으로 아들의 오피스텔 구입 계약금을 내고, 비자금을 조성했다.

이들은 “교육 사업을 하면 돈 번다’는 사고는 우리가 만든 이야기가 아닌 국가가 조장한 데에서 비롯된 이야기”라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 호시절은 끝났고, 국공립 유치원 늘리기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잘 나가던 대선 주자 안철수도 ‘병설’ 유치원이니 ‘단설’ 유치원이니 말 잘 못했다가 한 번에 훅 가지 않았나.

● 시사IN

시사인 큐레이션

저작자 표시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