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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한 자와 명령에 따른 자, 그 결과가 세월호 참사였다

명령한 자와 명령에 따른 자, 그 결과가 세월호 참사였다

[리뷰] 304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시스템과 평범한 악, 책임진 건 오로지 명령에 따른 자들 뿐


유대인 출신으로 독일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수백 만 명을 수용소로 이송한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했다. 그 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재판에서 지켜본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이라는 신념을 지닌 악마가 아니라 윗선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 ‘평범한 악’이었다는 것이다.

2년 전 304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세월호에서도 평범한 악이 넘쳐났다. 세월호 2주기를 맞아 지난 1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세타(Θ)의 경고! 세월호와 205호, 그리고 비밀문서’편은 그 평범한 악의 이야기다.

오 전 9시36분, 현장에 도착한 목포해경 123정이 침몰 중인 세월호의 승객들을 구했어야할 시간이다. 그 시간 123정장은 세월호의 기울어진 모습, 구조중인 장면 등이 보낸 사진을 전송한다. 구조가 시급한 시기에 이루어진 이상한 행동이다.

이 이상한 행동의 배경에는 청와대와 해경본청 상황실이 핫라인을 통해 나눈 대화가 있다.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은 사고를 인지한 오전 9시14분 해경본청 상황실에 전화를 건다. “카메라 나오는 건 없죠?” 현장 영상을 달라는 요구다. 현장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2분 뒤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은 다시 해경 본청에 전화를 건다. “배 이름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거냐” “배의 크기는?”

▲ 4월16일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그 시간 승객들은 해경의 구조만 기다리고 있었다. 청와대는 다시 “현지 영상 볼 수 있는 거 없냐”며 “VIP(대통령) 보고 때문에 그러니 영상으로 받은 걸 휴대폰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한다. 해경 본청은 123정장이 속한 목포 해경청에 “현장 화면을 못 보나”라고 계속 현장 사진이나 영상을 요구한다. 그리고 9시 39분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과 해경 본청은 현장 사진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9시36분, 123정 측에서 찍은 현장 사진이 해경에 전송된 직후였다.

구조가 시급한 현장에 전달된 청와대의 요구는 또 있었다.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은 “구조인원이 몇 명인지 확인 해달라”고 해경 본청에 요구한다. 123정에 탑승한 생존자 김병규씨는 ‘그것이 알고싶다’와 인터뷰에서 경황없는 와중에 유심히 보게 된 광경이 있었다고 말한다. 급박한 구조현장에서 “인원 수 체크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한겨레21 정은주 기자 역시 “해경 수뇌부가 세라고 하니까 구조를 안 하고 구조된 사람들을 세고 있었다. (출동한 해경) 13명 중 실제 구조에 나선 사람은 두 명 뿐”이라고 말한다.

오전 10시14분 세월호가 이미 90도 가까이 기운 상황, 현장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청와대는 해경에 ‘수심은 얼마인가’ ‘암초는 있었나’ 등을 계속 묻는다. 1시간 50분에 달하는 통화시간이다. 그 많은 통화에도 세월호의 상황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 4월16일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세 월호가 가라앉기 5분 전 청와대는 해경에 ‘VIP 메시지’를 전한다. “첫째 단 한 명도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그 다음에 여객선 내에 객실 엔진실 등을 포함해서 철저히 확인해서 누락되는 인원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현장 영상 몇 분 남았나’ ‘인원 파악 잘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린다.

청와대가 구조 인원 말고 나머지 승객들에 대해 질문한 것은 10시52분이다. “배가 뒤집어졌는데 탑승객들은 어디에 있나?”고 묻자 해경은 “대부분 선실 안에 있다”고 답한다. 그러자 놀란 듯 청와대는 “언제 뒤집어졌어요 배가?”라고 되묻는다. 이미 22분 전 세월호는 사실상 침몰한 상황이었다.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은 “아이씨. 보고 다 끝났는데. VIP한테”라고 탄식한다. 수백 명이 배 안에 갇힌 채로 배가 침몰했다는 사실에 대한 탄식이 아니라, 잘못된 보고를 했다는 것에 대한 탄식이었다.
▲ 4월16일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은 대통령 보고를 위해 계속 새로운 정보를 요구했고 해경본청은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따랐다. 해경 본청은 구조가 급박한 현장에 그 메시지를 전했고 해경도 그 명령을 따랐다.

‘그 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 김상중은 “참사당일 청와대 측이 해경 본청 상황실에 요구한 것들은 엄밀히 말해 부당한 것은 아니다. 정당한 요구라고 봐야 맞다”며 “사고에 대한 파악을 위해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변동 상황을 대통령에 보고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하는 업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다만 결과적으로 그 통화가 이루어진 시점이 구조에 총력 다 했어야할 시간이기에 아쉬움이 크다”며 “문제가 있다면 해경 수뇌부의 행동이다. 청와대의 요구를 스스로 해결하거나 끊지 못하고 123정에 전달한 그들의 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이해받거나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명령은 윗선에서 내려왔지만 책임은 오로지 현장에 출동한 123정장이 졌다. 해경 중 형사처벌을 받은 이는 123정장이 유일하다.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은 청문회에서 “제가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이걸 챙기나”라고 반문한다.

선 원들도 명령을 따랐다. 여객부직원인 강혜성씨는 참사당일 9시26분 경 양대홍 사무장으로부터 “선사 쪽에서 대기 지시가 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양 사무장에게 누군가 승객들을 대피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 지시는 배 안의 선원들에게도 전달됐다.

양 사무장에게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이 청해진해운 관계자인지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선원들이 이 명령에 따라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한 제보자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 “선원 조직이라는 집단은 피동적인 집단이다. 겁이 되게 많고. 바다에 떠있을 뿐이지 회사의 명령을 따른다”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국정원과 세월호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그간 뉴스타파, 한겨레21, 미디어오늘 등 몇몇 매체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적이 있지만 지상파에서 국정원과 세월호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처음이다. 세월호의 비상연락망에 국정원이 포함돼 있었고, 세월호 선원이 만든 ‘국정원 지적사항’이라는 문서도 발견됐다.

▲ 4월16일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국 정원이 세월호를 직접 관리한 것인지, 국정원 관계자들이  배에 투자를 했는지 등등 국정원과 세월호의 연관성은 여전히 의문부호로 남아 있다. 절망적인 것은 국가정보기관이 점검하는 등 관리에 직접 개입한 배가 이 지경으로 침몰했다는 점이다. 화물 과적은 묵인됐고 배의 복원성을 담당하는 평형수는 부족했다. 진짜 책임져야할, 명령을 내린 이들은 숨어있고 그 명령을 이행한 이들만 처벌받았다.

‘평범한 악’은 세월호 유가족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에도 있다. 참사 초기 많은 사람들은 가족의 슬픔에 공감하고 응원했다. 그러나 보상금과 인양 비용, 정부와 유가족의 갈등을 다루는 언론 보도가 쏟아져 나오면서, 단원고 기억교실 존치 논란이 이어지면서 유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세금도둑’ ‘감정적’ 등 부정적인 어휘가 포함되기 시작했다. 2년 전, 잊지 않겠다던 약속은 어디로 간 걸까.

▲ 참사 초기 세월호 관련 키워드. 4월16일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 세월호 1주기 무렵 세월호 관련 키워드. 부정적인 키워드가 생겨났다. 4월16일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 2016년 초 단원고 기억교실 존치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세월호 관련 키워드. 부정적인 키워드가 늘어나고 있다. 4월16일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