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9.03.07 08:54

* 스포일러는 거의 없도록 썼지만, 주의하시길....


<어벤져스4: 앤드게임> 전 마지막 마블 영화 <캡틴마블>을 보고 왔다. 어벤져스 배경 이전인 1980~90년대를 다루고 있기에 다른 마블 영화와의 연결고리들이 많다. 그래서 마블 팬이라면 이스터에그 찾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앤드게임을 보기 전에 꼭 봐야하는 건 아니다. 일종의 독립영화기 때문이다. (물론 쿠키영상 빼고)


개봉 전부터 페미니즘 논란이 있었는데, 오히려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에 가깝다. 배경이 1980년대고 주인공이 비행기 조종사라는 (당시에는 남성적이라고 여겨진)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그런 요소가 등장은 한다. 하지만 그런 요소는 시련을 이겨내야 히어로로 거듭난다는 클리셰적인 장치로 활용되는 차원일 뿐, 페미니즘 요소가 전면으로 다뤄지진 않는다.




오히려 눈에 들어온 건 마블이 힘, power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였다.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나 만화가 가장 다루기 힘든 주제가 힘이다. 관객이나 독자들은 히어로 영화를 보며 늘 더 업그레이드된 강함을 갈구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더욱 강해져야 하고, 빌런도 더욱 강해져야 한다. 조연들도 같이 강해져야 한다. 안 그러면 밸붕(밸런스붕괴)이 이루어져 주인공 싸우는 옆에서 방해만 되거나 해설자, 지략캐로 전락한다.


드래곤볼이 그랬다. 처음에 에네르기파만 쏘던 손오공은 나중에 초사이언이 된다. 적들은 사이어인에서 프리더, 셀, 마인부우, 비루스까지 점점 강해지고 손오공과 일당들도 점점 강해진다. 인플레가 벌어져서 나중엔 개나소나 다 행성을 파괴할 능력을 갖추고 처음에 막강했던 조연들은 쩌리가 되거나 전투력 측정기 취급을 당하는 신세가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야무치..야무치의 사망장면을 일컬어 "야무치의 웅크린 포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안습 신세다.)


마블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히어로의 정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힘만 세다고 히어로의 자격이 있는가?"


캡틴아메리카는 슈퍼솔져 혈청을 맞고 강해지기 전부터 히어로였다. 왜소한 몸집에 체력은 약했지만 거리낌없이 수류탄으로 몸을 던졌고, 얻어맞으면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힘이 세진 이후에도 그가 싸우는 적들은 힘만 센 적들이 아니다. 적만 없앨 수 있다면 자유를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가, 그리고 그에 동의하는 동료들, 그 사이에서 벌어진 분열 등등.


어벤져스 세계관에서 캡틴은 어느새 힘만으로는 약한 축에 속하지만 그가 없는 어벤져스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는 언제나 더 강한 적들에 맞서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슈퍼솔져 혈청 맞는다고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토니스타크는 군산복합체의 수장이었으나 자신이 만든 무기가 나쁜 목적에 사용된다는 점을 깨닫고 자신의 기술력을 이용해 아이언맨이라는 히어로가 되었다. 그는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늘 더 첨단의 기술을 이용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 과정에서 실수를 반복하고,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히어로로써 성장한다.


아이언맨3에서 아이언맨은 자신이 미친듯이 만든 아이언맨 슈트들을 모두 폭파시켜버린다. 아이언맨3 최고 명장면으로 꼽힌다. 힘에만 집착한다고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아이언맨이 깨달은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힘을 갖고 있던 히어로들은, 늘 영화 속에서 한 번은 힘을 빼앗긴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토르다. 토르는 토르1편에서 맘대로 힘을 남용하다 아버지 오딘에게 힘을 빼앗겼고 힘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다. 그 과정에서 다시 힘을 되찾는다. 힘이 없어도 사람을 구하려는 정신이 있어야 히어로의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인피니티워>에서 마블은 토르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동생은 죽었고, 자신이 지키려던 백성들은 타노스에게 전멸당한다. 이미 자신의 무기 묠니르는 박살났다. 모든 것을 빼앗긴 토르는 하지만 화려하게 돌아온다. 토르가 지구에 돌아오던 장면이 <인피니티워> 최고의 명장면인 이유는 그가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히어로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인피니티워 최고의 명장면..!)


<홈커밍>에서 아이언맨은 스파이더맨이 사고를 치자 슈트를 빼앗아간다. 스파이더맨이 "슈트없이 전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호소하자, 아이언맨이 말한다. "슈트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넌 더더욱 이걸 가져선 안 돼." 힘만 세다고 히어로가 아니라는 마블의 일관된 정신을 요약한 대사였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이 만든 허접한 슈트를 입고 적들을 상대하며, 히어로로 거듭 태어난다.


캡틴마블 이야기로 돌아가자. 캡틴아메리카에게 히어로의 자격이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며, 아이언맨에게 히어로의 자격이란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법을 깨닫는 것이다. 토르에게 히어로의 자격이란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절망하지 않는 강인함이다. 그렇다면 캡틴마블에게 히어로의 자격이란 무엇일까?


캐럴 댄버스(캡틴마블)는 자신이 힘을 얻게 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힘이 외계종족인 크리종족에게서 기원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늘 감정을 억누르고, 자신을 통제하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캐럴댄버스가 성장한 순간들은 세상이 가르친 것을 거부한 순간들이었다. (이 대목에 페미니즘의 요소가 들어가 있다.) 세상이 규정한 것을 거부하고 내가 누구인지 나 스스로 규정할 때 캡틴마블은 자신의 힘을 가장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었다. 그의 친구는 말한다. "넌 손에서 나오는 그 불광선이 없을 때부터 히어로였다"고.


여러 설정, 다소 오그라드는 전개 등등 빈틈은 있는 영화였다. 오락용 영화로 좋지만 놀랍도록 잘 만든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마블은 마블이란 걸 기억하자. <토르1>은 (내가 부제도 기억못할 정도로) 허접했다. 하지만 라그나로크와 인피니티워의 간지철철 토르가 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영화였다. 마블 영화는 한 편만 독립적으로 평가해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장르다.


(캐럴댄버스는 이때부터 히어로였다.)


일각에서는 갑자기 너무 쎈 히어로가 나와서 밸런스 붕괴를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캡틴마블이 타노스 걍 이겨버리면 어쩌지? 마블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기우라고 생각할 것이다. 마블의 가장 큰 장점이 히어로의 힘을 잘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마블이 디씨 영화보다 뛰어난 결정적인 이유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9.02.21 15:14

한 달 전쯤에 페북에 어벤져스4 결말에 대한 예상을 썰처럼 풀었던 적이 있다.

이전의 글이 캡틴아메리카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면, 이번에는 토니 스타크의 관점에서 접근해보려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마블 팬으로서 그냥 재미로 써보는 썰이기에 틀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토니스타크의 캐릭터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고자 강박증적으로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토니스타크는 시리즈를 반복할수록 성장하는 캐릭터이고, 다소 고지식한 모습을 보여주는 캡틴아메리카에 비해 친근하고 정이 가는 캐릭터이다. (이 점은 캡틴과 대비된다. 캡틴은 '수많은 시련과 고뇌에도 불구하고 강박증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인물'에 가깝다.)




아이언맨이 되기 전 토니스타크는 군수산업의 수장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개발한 무기가 테러단체에 넘어가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활용된다는 점을 깨닫고 난 뒤, 군수산업에 손을 뗀다. 대신 자신의 과오를 씻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아이언맨을 만든다. 그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강박증적으로 집착하는지는 <아이언맨3>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잠도 자지 않은 채 미친 듯이 아이언맨 슈트를 만들어댄다.


문제는 토니스타크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세상을 구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려다 세상을 위협에 빠뜨리는 모순이다. 토니스타크는 <어벤져스>에서 쉴드와 함께 우주에서 온 인피니티스톤 중 하나인 테서렉트를 연구하고, 이를 지구를 지킬 무기로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로키에게 이 테서렉트가 털리면서 로키가 치타우리 부대를 지구로 불러들인다. 게다가 이 무기로 인해 쉴드의 충실한 요원 중 하나가 사망하자 괴로워한다.


<어벤져스:에이지오브울트론>에서도 마찬가지다. 토니스타크는 누군가 지구를 침공할 것을 알고 있었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울트론을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울트론이 세상을 멸망으로 몰아넣었다.




캡틴아메리카는 이런 토니스타크에게 매우 정확한 팩폭을 했다. 캡틴은 토니를 향해 “너는 너 자신을 위해 싸울 뿐이야.”라고 말했다. 토니스타크가 세상을 구하려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너 자신의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싸우는 거 아니냐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또 캡틴은 토니가 울트론을 만들려고 할 때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을 이기려고 할 때마다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다”고 비판했다. 세상을 구하려는 토니가 반복해서 세상을 위협하는 모순을 정확히 지적한 말이다.


이 지점에서 토니가 겪고 있는 ‘지식의 저주’가 등장한다. <어벤져스:인피티니워> 후반부에 타노스와 아이언맨이 1대1로 맞붙은 장면이 있다. 타노스는 토니에게 “너만 지식의 저주에 걸린 게 아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거칠게 정리하면 지식의저주란, 자신이 아는 걸 남들도 안다고 생각해 남을 설득하지 못하고 혼자 답답해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타노스는 지식의저주에 걸려 있다. 타노스는 자원 분배, 인구조절에 실패한 탓에 자신의 고향 타이탄이 멸망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인구와 자원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남녀노소 빈부계급을 막론하고 절반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무도 타노스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타이탄은 멸망했다. 타노스는 그 이후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행성의 절반을 파괴하고 다니지만 당연히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급기야 인피니티스톤을 모두 모아 우주 절반을 먼지로 날려버리기에 이른다.


토니에게도 지식의 저주가 있다. <에이지오브울트론>에서 완다의 환영에 걸린 토니는 외계인에 의해 지구가,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이 모두 죽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뒤로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어벤져스>의 뉴욕 전투가 끝난 상황임에도 홀로 지구로 쳐들어올 위협에 대비해 미친 듯이 기술을 개발하고, 울트론까지 만들었다. 모두가 토니를 이해하지 못한 채 토니를 뜯어말렸다.


토니가 알고 있는 지식이란 ‘언젠가 외계인의 침공으로 세상이 멸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토니가 걸려버린 지식의저주는, 언젠가 세상이 멸망함에도 아무도 그걸 알지 못해 본인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우주가 멸망할 것이라는 점을 혼자 깨닫고. 본인 혼자 힘으로 우주의 균형을 맞추려 했던 타노스와 비슷하다.


토니가 걸린 저주는 한 가지 더 있다. 홀로 세상을 지키려 했던 토니가 반복해서 세상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노스도 이런 의도치 않은 비극을 겪는다. 타노스는 우주의균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일하게 사랑하는 딸 가모라를 희생시켜야 했다. 우주의 절반을 날려버린 뒤 환영 속에서 만난 가모라는 그에게 "목표를 이룬 대가가 무엇이었나?"라고 묻는다. 타노스는 "모두 다..."라고 답한다. 절반을 구하기 위해 자신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모순이다. 우주의 관점에서는 숫자로 계산해 절반을 날리는 게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어도 개개인에게는 그 한 명 한 명이 우주와 같다는, 타노스식 논리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토니는 이 저주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그가 매번 선택하는 방법은 또 자신이 혼자 책임지는 것이다. 자신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늘 스스로를 희생하는 방법을 택한다. <어벤져스>에서 그는 핵폭탄을 들고 홀로 우주로 날아간다. <인피니티워>에서는 타임스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 했다. 스파이더맨이 우주로 따라오자 불같이 화를 낸 이유도 그는 다른 사람의 희생을 눈앞에서 보는 것을 가장 괴로워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쉴드의 국장 닉퓨리는 언젠가(어느 영화인지 기억이;;) 토니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에게 있어 최악은 다 죽고 너만 안 죽는 거지.” 그리고 토니는 이미 완다의 환영에 걸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죽어가고, 세상이 멸망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끔찍하게도 환영 속에서 캡틴이 토니에게 “네가 우리를 구할 수 있었어.”라고 말한다.


정리하자면 토니는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세상을 구하려 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세상을 위협하고 나아가 자신만 살아남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인피니티워의 결말은 토니 입장에서 가장 끔찍한 결말이다. 타노스가 지구로 쳐들어올 거란 것을 토니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막으려 발버둥을 쳤으나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세상을 위협했고, 결국 함께 타이탄에서 함께 싸웠던 동료들이 모두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자신만 남았다. (타이탄 전투 멤버들 중 스파이더맨 등이 모두 사망하고, 토니가 가장 최근에 만나 가장 친분이 없는 네뷸라만 살아남았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네뷸라가 어벤져스4에서 토니를 살리고 죽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벤져스4에서 토니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어벤져스4에서 토니가 사망할 거란 예측은 주요한 가설 중 하나다. 하지만 난 토니가 희생하는 식으로 결말이 지어질 것 같지 않다. 그 방식은 앞선 영화에서 늘 실패해 왔기 때문이다. 마블이 그런 식상한 결말을 택할까? (물론 토니가 죽을 수도 있다. 다만 죽더라도 모든 걸 짊어지고 죽는 방식은 아닐 거란 뜻이다.)


토니의 가장 큰 패착은 늘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한다는 점이다. 지식의저주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나의 눈이 아니라 남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즉 다른 이들과 함께 힘을 합치는 것이다.


3시간에 달하는 인피니티워에서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하나 있다. 이 과제는 인피니티워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인피니티워에서 캡틴과 토니는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시빌워에서 갈라진 이후, 둘은 화해하지 못했다.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다, 결국 타노스에게 모두 패배했다.


어벤져스4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토니와 캡틴이 다시 만나는 장면이 될 것이다. 그리고 토니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구하려 했던 '지식의저주'에서도 벗어날 것이다. 그것이 홀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의 절반을 날려버린 타노스에 맞서, 이 게임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9.02.18 10:57

여성가족부에서 '성평등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 획일성이 심각하다며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내용이다. 


여가부 가이드라인의 효용성과 강제성, 실제 방송제작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판단은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저 가이드라인에 반대하는 이유는 아래 세 가지 전제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1. 음악방송 등 대중문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아이돌의 외모가 획일화 되었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나로선 아이돌 외모가 획일화 되었다는 것이 전혀 납득이 안 간다. 아이린이 다르고 하니가 다르고 쯔위가 다르다. 옹성우가 다르고 차은우가 다르고 유노윤호가 다르다. 춤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고 매력도 다르고 캐릭터도 다르고 의상도 다르고 심지어 화장톤도 다르다.


어떤 아이돌은 얼굴로 입덕시키기도 하고 어떤 아이돌은 노래로 입덕을, 어떤 아이돌은 귀여운 행동으로 어떤 아이돌은 팬을 아끼는 마음으로 어떤 아이돌은 외모는 잘생기지 않았지만 다른 매력으로 입덕을 시킨다.


다들 날씬하고 마른, 예쁘고 잘생긴 아이돌이니 외모의 획일화라고 말한다면...그렇게 따지면 아이돌 중에 뚱뚱하고 안 잘생기고 안 예쁜 아이돌이 어디 있을까. 또 얼마나 될까.


예쁘고 잘생겼으니까 아이돌인 거다. 따지고 싶으면 좀 다양한 외모를 뽑으라고 아이돌 기획사에 따지지, 왜 방송국에..? 근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웃긴다. 아이돌 뽑을 때 기획사에서 ‘안 예쁘고 안 날씬한’ 친구들을 할당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여러모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2. 미의 기준이 획일화된 게 문제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어느 사회나 시대나 선호받는 외모가 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목이 길어야 미인으로 인정받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목이 길어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걸 기준으로 삼고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게 획일화라면, 난 그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뚱뚱하다고 차별받아선 안되고 못 생겼다고 차별 받아서도 안 되는 건 맞다. 그치만 그렇다고 날씬해지려는 노력과 더 예뻐지고 잘생기고 싶어지는 노력이 비난받아야할 일인가? 소수의 취향이 차별받아선 안 되는 것과, 세상에 다수가 선호하고 선망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


3. 획일화된 미를 보여주는 대중매체를 접하면, 소비자들이 이를 그대로 수용할 것이란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대중매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일방향적이지 않다. 폭력적인 게임을 한다고 폭력적인 성향이 되는 게 아니고 동성애 다룬 드라마 본다고 동성애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즐비한 방송을 본다고 그런 미의 기준을 무작정 수용할 거라는 무시무시한 가정은 어디서 출발하는 건지 모르겠다. 시청자의 능동적 소비행태를 너무 고려하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맛있는 녀석들은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