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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가습제살균제, 교통사고와 형평성 안 맞아”

새누리당 “가습제살균제, 교통사고와 형평성 안 맞아”

피해보상은 보류, 집단소송제 등 대거 국회 계류 중… 청문회는 검찰 수사 끝나고?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5년 만에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게 됐다. 정부여당이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 및 청문회는 물론 국정조사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해결할 법안이 국회에서 가로막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늑장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당정은 8일 검찰 수사 후 국회 차원의 청문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불충분할 경우 국정조사까지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진석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는 이날 가습기 살균제 및 미세먼지 대책 당정협의에서 “필요한 법 개정 준비도 서두르고 정부·여당은 비장한 각오로 사태 수습에 임하겠다. 국회는 진상조사에 착수하고 청문회도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관련법 개정 및 청문회 개최 의사를 밝힌 것은 야당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늑장대응에 대한 사과 요구가 나온다. 이재경 더민주 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늦었지만 새누리당이 국민과 우리당의 요구인 청문회와 관련법 개정을 수용한 것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것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오늘 정부여당의 당정협의에서 정부는 최소한의 반성도 없었다. 정부는 즉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책임회피와 늑장대응에 대해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여당이 뒤늦은 대응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관련 법안이 대거 국회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3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환경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환경성질환으로 인한 피해자 및 유족에게 치료비 등을 우선 지원할 수 있으며, 또한 지원에 들어간 비용을 해당 사업자에게 구상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 골자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4월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 “정부가 먼저 피해 보상을 해주고, 나중에 옥시 등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면 진즉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하 지만 해당 법안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환경부와 새누리당은 반대 입장을 취했다. 2014년 12월 2일 환노위 소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정연만 환경부 차관은 “보상 요청이 증가해 정부로서는 부담이 있다”며 반대했다.

소위원회 위원장인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 역시 “법 일반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환경성질환으로 인해 피해 입은 국민만 특별 보호해주고 교통사고 입은, 범죄행위로 인해서 상해 입은 국민들은 특별대우 안 해준다는 것은 법 원칙에 맞지 않는다. 형평성에 맞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법안도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홍영표 더민주 의원이 대표 발의해 2013년 6월 19일 환노위에 상정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률안’은 피해자 및 유족에게 요양급여, 요양생활수당, 장의비, 특별유족조위금 등의 구제급여를 지급하고 피해실태를 조사하고 피해자의 인정 여부를 심사하기 위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조사인정위원회를 둔다는 내용이다. 같은 날 환노위에는 장하나 더민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가습기살균제의 흡입독성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이 상정됐다. 마찬가지로 구제급여를 지급하고 피해대책위원회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이언주 더민주 의원이 대표발의한 ‘생활용품 안전관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화학물질 및 화학물질이 함유된 제품 등에 의한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도 2013년 6월 19일 환노위에 상정됐다. 이 두 법안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구제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피해자 구제법안은 환노위에서 멈춰섰다. 환노위 여당 위원들은 법 통과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정부와 보조를 맞춰야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2013 년 6월 19일 환노위 전체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현재 정부에서도 이와(가습기 살균제 피해대책) 관련해서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관계부처 조정회의도 수차례 했고 관련 대책을 다각적으로 수립하고 있는 과정에 부처 간 의견도 지금 일치되지 않고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우리 위원회만 일정 부분 상당히 속도를 밟고(밟는 것은) 피해자 유족들을 위해서 용감하게 잘했다 칭송받을지 모르지만 진짜 슬기로운 지혜를 보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책임 있는 정부의 준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 회에 계류 중인 또 다른 법안은 소비자집단소송법과 징벌적 손해배상 관련 법안이다. 2014년 2월 5일 서영교 더민주 의원이 발의한 집단소송법은 소비자가 기업의 제조, 광고, 판매 등의 행위로 손해를 입은 경우 일부 소송 승소로도 관련된 모든 소비자가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집단소송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 하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처럼 피해자가 광범위할 경우 피해를 보상받으려면 피해자 개개인이 모두 소송에 나서야한다.

'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성격을 띤 법안은 백재현 더민주 의원이 발의한 ’제조물 책임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알면서 결함에 대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결과로 피해를 입은 자가 발생하는 경우 그 손해액의 12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해당 피해자에 대하여 배상할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다. 해당 법안은 2013년 12월 6일 정무위원회에 상정된 이후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5월 8일 당정협의에서 김광림 새누리당 신임 정책위의장은 “이 사건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전부터 사회문제화됐는데 정부는 사태해결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의문이 든다”고 정부를 질타했다. 하지만 각종 피해자 구제법안 등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누리당도 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원내대표단회의에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9대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등 여러 상임위원회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을 간구하자고 제안했던 사안”이라며 “장하나 의원, 은수미 의원이 법안도 발의하고 상임위에서 수차례 걸쳐 호소했지만 새누리당이 외면했던 사항이다. 뒤늦게 청문회 등 국회차원의 대책을 간구하겠다고 나서신 것에 대해서 환영하지만, 왜 19대 국회에서는 그토록 방치했는가에 대해서 반성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라고 말했다.

더 욱이 새누리당은 ‘검찰 수사 후 국회 청문회’를 주장하고 있다. 2011년 발생한 가습시 살균제 문제가 뒤늦게 이슈화된 이유는 뒤늦은 검찰 수사 때문이다. 이미 2011년 8월 31일 역학조사 발표로 가습기살균제가 참사의 원인임이 입증됐지만 검찰수사는 무려 4년여가 지난 지난해 10월에야 시작됐다. 정부의 늑장 발표가 이뤄진 2014년 3월로부터도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늑 장 수사가 끝난 뒤에야 늑장 청문회를 하겠다는 주장에 피해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은 9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청문회를 실시해야할 이유가 없다. 검찰은 살인기업의 범죄를 밝히는 일에 주력하고 국회는 왜 정부가 유독물질 관리에 실패했는지 왜 피해자 구제에 손을 놨는지 진상조사 하면 될 일”이라며 “새누리당은 야당과 협력해 즉각 청문회를 실시해야 한다. 이제 피해자와 소비자 국민은 누군가를 믿고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밝혔다.